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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과 동행을/💕법문의도량

어떤 연하장

by 혜명(해인)스님 2018. 7. 9.

    일본에서는 새해가 되면 스님들이 신도 집을 찾아가는 풍습이 있습니다. 새해 첫 손님으로 존경하는 스님이 찾아오면 액운이 사라지고 복이 찾아온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일본 무로마찌(室町)시대 임제종의 고승인 잇큐(일(一休:1394-1481)화상도 어느 해 설날 신도 집을 찾아 갔습니다. 큰스님이 새해 첫날 자기 집을 찾아온다는 말을 들은 신도는 너무나 반갑고 황송했습니다. 그는 온 집안을 구석구석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식구들과 함께 정중하게 큰스님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잇큐화상을 맞이한 그 신도는 스님을 보자마자 그만 깜짝 놀라 뒤로 자빠질 뻔했습니다. 잇큐화상이 지팡이 끝에 해골을 하나 달고 찾아왔던 것입니다. "큰스님! 오늘 같이 좋은 날 망측스럽게 어찌 해골을 가지고 찾아오셨습니까?" 그러자 잇큐화상은 오히려 근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이 무엇이 좋은 날이냐? 설이 자꾸 지나가면 마침내 모두 해골이 될 터인데 죽는 것이 그렇게도 좋으냐? 사람들은 오랜만에 만나면 '살아가는 재미가 어떠하냐?'하고 묻는다. 그러나 인생이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 순간부터 죽어 가는 것이다. '살아가는 재미'란 사실은 '죽어 가는 재미'에 불과하다. 이를 생각하면 새해를 맞이했다는 것이 오히려 두려운 일이다." 입을 다물지 못하는 신도님에게 스님은 다음과 같은 법문을 하시고 돌아섰습니다. "이처럼 해가 바뀌어 해골이 눈앞이니 어찌 급하지 않은가? 복을 적게 지으면 지옥 보를 받을 것이요, 할 일을 게을리 하면 성취하기 전에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 상근정진(常勤精進)해야 할 것이니라." 잇큐선사의 법문은 아무래도 새해 첫날 듣기에는 섬뜩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법문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입니다. 이를 깨달은 신도는 스님의 말씀대로 그해 한해를 정말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덕분에 연말이 될 때쯤에는 어느 해보다 많은 성취와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잇큐선사가 설날 아침에 보여준 해골은 다른 어떤 인사보다 소중한 뜻이 담긴 연하장(年賀狀)입니다. 해골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올 한 해 동안 우리는 새로운 각오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 <불교신문에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오늘 하루를 보낸 것은 하루만치 죽음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습니다. 설사 있다 하더라도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지 않았다면 그 내일은 우리에겐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겠지요. 오늘 하루를 소중히 생각하는 하루였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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