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불법과 동행을/💕불교자료실

유마경 33

by 혜명(해인)스님 2019. 2. 28.


-유마경 33-
    (원문) 저 병 있는 보살이 또 이러한 생각을 하되, 나의 이 병은 참된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므로 중생의 병도 참된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라 할 것이며, 이렇게 관찰할 적에 중생들에게 대하여 애견대비(愛見大悲)를 일으키게 되면 곧 버려야 하나니, (애견대비는 무엇을 보았을 때 사실은 별것도 아닌데 그것을 불쌍하게 생각해서 마음이 너무 애초 로와 져서 그기에 정신이 빼앗기는 것을 말합니다.) 왜냐 하면 보살은 객진(客塵)번뇌를 끊고서 대비심을 일으키는 것이리다. 애견대비는 나고 죽는데 염증이 있는 것이므로, 만일 애견대비를 여의면 고달픈 생각이 없으며, 나는 곳마다 애견대비의 얽힘이 되지 아니하며 나는 곳마다 얽힘이 없어야 중생에게 법문을 말하여 얽힌 것을 풀어 줄 수 있으니, 마치 부처님 말씀에 '스스로 얽힘이 있고는 남의 얽힌 것을 풀 수 없거니와 자기에게 얽힌 것이 없고서야 남의 얽힌 것을 풀어줄 수 있다.'하신 것과 같나이다. 어떤 것이 얽힘이며, 어떤 것이 풀림인가. 선의 맛에 집착하는 것은 보살의 얽힘이요, 방편으로 나는 것은 보살의 풀림이며, 또 방편이 없는 지혜는 얽힘이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중생 교화를 해야 하는데 지혜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자비의 생각이 모자라서 옳게 실천하지 않는가) 방편이 있는 지혜는 풀림이며, 지혜가 없는 방편은 얽힘이요, (구원해 주고자 노력하나 그기에 필요한 지혜가 모자라서 완전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것) 지혜가 있는 방편은 풀림입니다. 어찌하여 방편이 없는 지혜를 얽힘이라 하느냐? 보살이 애견하는 마음으로 불국토를 장엄하고 중생을 성취시키면서 공하고 모양이 없고 지음이 없는 법에서 스스로 극복하면, 이것이 방편이 없는 지혜를 얽힘이라는 것이다. 어찌하여 방편이 있는 지혜를 풀림이라 하느냐? 애견의 마음으로 불국토를 장엄하거나 중생을 성취시키지 아니하고, 공하고 모양이 없고, 지음이 없는 법에서 스스로 조복하여 싫어하지 아니하면, 이것이 방편이 있는 지혜의 풀림이라는 것이리다. 어찌하여 지혜가 없는 방편을 얽힘이라고 하는가? 보살이 탐욕, 성내는 것, 비뚤여진 소견에 머물러서 있으면 이것이 지혜 없는 방편의 얽힘이라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지혜가 있는 방편을 풀림이라 하는가? 탐욕, 성내는 것, 비뚠 소견 따위 모든 번뇌를 여의고, 여러 가지 공덕의 근본씨앗을 심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면 이것이 곧 지혜 있는 방편의 풀림이라는 것입니다. 문수사리여, 저 병 있는 보살이 이렇게 모든 법을 관할 것이다. 어찌하여 방편이 있는 지혜를 풀림이라 하느냐? 애견의 마음으로 불국토를 장엄하거나 중생을 성취시키지 아니하고, 공하고 모양이 없고, 지음이 없는 법에서 스스로 조복하여 싫어하지 아니하면, 이것이 방편이 있는 지혜의 풀림이라는 것이리다. 어찌하여 지혜가 없는 방편을 얽힘이라고 하는가? 보살이 탐욕, 성내는 것, 비뚤여진 소견에 머물러서 있으면 이것이 지혜 없는 방편의 얽힘이라는 것입니다. (해석) 속박과 해방과의 구별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중생은 탐욕과 애착 집착의 번뇌 속에 속박되어 살아갑니다. 이러한 중생을 위해 보살은 친소를 구별하고 애증을 분간하되 애견과 편견을 버리고 법을 설하여 속박을 풀어 주어야한다는 뜻입니다. 항상 부처님은 평등대해를 생각하고 스스로 사사로운 정에 치우치지 않도록 깊은 마음을 써야 한다는 뜻에 잘 부합하는 말들입니다. (원문) 또 이 몸이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나라고 할 것이 없다고 관하는 것은 지혜요, 몸은 비록 병이 났으나 항상 생사 중에 있어서 일체 중생을 이익께 하면서 게으른 생각을 내지 않는 것은 방편이며, 또 이 몸이 병을 여위지 못하고, 병은 몸을 여위지 못하여, 병과 몸이 새것도 아니고 낡은 것도 아닌 줄을 관하는 것은 지혜요, 설사 이 몸에 병이 있더라도 영원히 열반에 들려 하지 않는 것은 방편이니 문수사리여, 병 있는 보살이 이렇게 마음을 조복할 것이다. 생사에 있으면서도 (세상 사람들과 함께 섞여서 살면서 차차 그들을 감화시켜서 불도에 들어오도록 한다는 뜻) 나쁜 행을 하지 않고, 열반에 머물면서도 멸도하지 않는 것이 보살행이며, 범부의 행도 아니요 성현의 행도 아닌 것이 보살행이며, 더러운 행도 아니요 깨끗한 행도 아닌 것이 보살행이며, 비록 마군보다 지나치는 행을 하면서도 마군을 항복받는 것이 보살행이며, 일체 지혜를 구하면서도 때 아닌 적에 구함이 없는 것이 보살행이며, 모든 법이 나지 않는 줄을 관하면서도 정위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보살행이며, 십이인연을 관하면서도 삿된 소견에 들어가는 것이 보살행이며, 일체 중생을 포섭하면서도 애착하지 않는 것이 보살행이며, 멀리 여의 기를 좋아하면서도 몸과 마음이 다함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 보살행이며, 삼계에 다니면서도 법의 성품을 망가치지 않는 것이 보살행이니라. 공한 것을 행하면서도 공덕의 씨앗을 심는 것이 보살행이며, 모양 없는 것을 행하면서도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보살행이며, (자기신분을 밝히지 않고 돈을 기부하는 사람 있잖아요. 남모르게 봉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염이 없는 것을 행하면서도 몸을 받는 것이 보살행이며, 일어남이 없는 것을 행하면서도 일체의 착한 행을 일으키는 것이 보살행이며, 육바라밀을 행하면서도 중생의 마음과 마음의 작용을 두루 아는 것이 보살행이며, 육신통(신족(神足) 천의(天耳) 천안(天眼) 타심(他心) 숙명(宿命) 누진(漏盡)통을 행하면서도 번뇌를 다하지 않는 것이 보살행이며, 사무량심을(자비희사(慈悲喜捨) 행하면서도 범천에 나는 것을 탐내지 않는 것이 보살행이며, 선정과 해탈과 삼매를 행하면서도 선정을 따라서 나지 않는 것이 보살행이며, 사념처(신념처身念處, 수념처受, 심념처心, 법념처法= 37조도품중에 하나)를 행하면서도 몸과 느낌과 마음과 법을 끝까지 여의지 않는 것이 보살행이며, (우리들의 몸과 우리들의 주위의 사물이 다 무상하여 믿을 것이 못 된다는 것을 바르게 아는 것) 사정근(사의단이라고도 함=율단의=아직 나타나지 않은 악은 끊고, 단단 =이미 생긴 악을 끊고. 수호단=아직 나타나지 않은 선을 생기도록 하고. 수단=이미 생긴 선을 더욱 증대되도록 힘쓰는 것)을 행하면서도 몸과 마음으로 정진함을 버리지 않는 것이 보살행이며, 사여의족(37조도품중에 3번째 수행법으로 1 욕여의족 2 정진여의족 3 심여의족 4 사유여의족 사신족 이라고도 함= 지혜와 선정이 다 갖추어져서 마음이 자유자재한 경지에 이르도록 수행하는 것)을 행하면서도 자재한 신통을 얻는 것이 보살행이며, 오근(안의비설신)을 행하면서도 중생의 여러 근기가 영리하고 노둔함을 분별하는 것이 보살행이며, 오력(신(信)근(勤) 념(念) 정(定) 혜(慧)의 5력과 불교의 설법은 언설력, 방편력, 법문력, 대비력, 수의력,이 있다고 하는 것) 을 행하면서도 부처님의 십력(심심(深心) 방편(方便) 지력(智力)원력(願力) 행력(行力) 승력(乘力) 신변(神變) 보리력(菩提力) 전법륜 (轉法輪)을 구하는 것이 보살행이며, 칠각지(불도를 수행하는데 지혜로써 참되고 거짓되고 선하고 악한 것을 구별하고 살펴서 선별하는 것= 진정한 깨달음을 얻으려면 중정의 도에 의해야 한다는 생각의 수행방법)를 행하면서도 부처님의 지혜를 분별하는 것이 보살행이며 팔정도를 행하면서도 부처님의 한량없는 부처님 도를 좋아하는 것이 보살행이며, 지(止)와 관으로 도를 돕는 법(止觀助導=처음 마음을 내어 인연에 머무름을 지(止)라 하고 지의 상응함을 관이라 한다. 불도를 성취하기 위해 나아갈 길에 도움) 을 행하면서도 끝끝내 적멸한데 떨어지지 않는 것 (어떠한 경우에도 중생을 구원하겠다는 생각을 잊지 않고 멈추지 않는 것) 이 보살행이며, 성문과 벽지불의 위의를 나타내면서도 부처님 법을 버리지 않는 것이 보살행이며, (배울 것 다 배웠다 하고 배움을 멈추는 것, 신심이 멈추는 것) 온갖 법이 끝내 깨끗한 것을 따르면서도 마땅한 대로 몸을 나타내는 것이 보살행이며, 부처입네 국토가 고요하기 허공과 같음을 관하면서도 여러 가지 청정한 세계를 나타내는 것이 보살행이며, 부처님 도를 성취하여 법륜을 굴리고 열반에 들어가면서도 보살의 도를 버리지 않는 것이 보살의 행입니다. 이런 말을 연설할 때 문수보살이 데리고 온 대중 가운데서 팔천 천인이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였다. (해석) 지금까지 보살행의 여러 방면을 말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귀착은 중도를 얻는 것입니다. 중도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만 진(眞)과 정(正) 그리고 애착이나 집착의 지나침이 끊어진 중화(中和)를 뜻하기도 합니다. 범부가 그 욕망에 끌리어서 행하는 것은 다 중정의 도리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천태학에서 실상은 곧 중도라고 설하는데 중도는 법계이고 법계는 곧 지관(止觀)이라고 했습니다. 한 가지 빛깔도 한 가지 향내도 중도를 보이지 않는 것이 없다 이렇게 관하는 것이 지관입니다. 지(止)란 바르게 진리에 일치하여 동요하지 않는 것이고 관(關)이란 그 지력으로써 만물의 진상을 바르게 관하는 것입니다. 지의 본체는 정(精)이고 관의 본체는 명(明)이 다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중도를 체득한 사람은 활동에 거리낌이 없을 것입니다. 대승을 배우는 사람은 다 이렇게 되기를 기약해야 합니다. 중도를 얻었다는 것은 유교에서도 특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인데 정자(程子)는 중(中)은 천하의 정도(正道)요 용(庸)은 천하의 정리(定理)다 라고 하였고. 주자(朱子)는 이것을 놓으면 욕합에 미치고 이것을 거두면 곧 물러나서 은밀히 갖추어진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중용(中庸)에는 중(中)이란 천하의 큰 근본이고 화(和)란 천하의 통달하는 도이다. 중화를 이루면 천지가 옳은 이치에 있고 만물이 자란다. 라고 했습니다. 진실로 지극한 덕이 아니면 지극한 도가 이루어 지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덕성(德性)을 존중하고 학문에 따른다. 유마거사가 조목조목 나누어 한말들은 중도를 존중할 것을 말한 것으로 이러한 이치에 잘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요컨대 가지가지 폐단은 중도를 얻지 못하는데서 발생하는 것이므로 중도에 깊이 마음을 써야 할 것으로써 우리들에게 아주 적절한 말들입니다. 이상으로 문수와 유마의 대화는 일단 종결되었습니다. 이다음 부사의 품에서는 아주 간결하면서도 확연히 들어나는 대화로 이어집니다.

    '🙏불법과 동행을 > 💕불교자료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마경 35  (0) 2019.02.28
    유마경 34  (0) 2019.02.28
    유마경 32  (0) 2019.02.28
    유마경 31  (0) 2019.02.28
    유마경 30  (0) 2019.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