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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이권 회향게-석가산대종사님의 화엄경 세계 최초 세 번째 사경

by 혜명(해인)스님 2019. 7. 8.

十二卷 廻向偈(십이권 회향게)

 

隨業衆生佛名現 (수업중생불명현)

法界因果亦如是 (법계인과역여시)

悉爲調伏衆生心 (실위조복중생심)

四聖諦法不可說 (사성체법불가설)

*부처님의 이름은 중생들의 업에 따라서 나타나고

*인과에 따라 법계의 이름도 또한 이와 같나니

(세상이 가지가지 이름으로 작명되는 것도 인과에 따라 지어지는 것이다)

*중생들의 마음을 조복 받기 위한

*말로 다할 수가 없는 사성제의 진리로다

 

[因果]

원인과 결과를 말함. 결과를 낳게 하는 것이 인(因)이고 그 인(因)에 의해 생기는 것이 과(果)이다. 시간적인 인과(因果)관계로 볼 때 인은 앞에 있고 과(果)는 뒤에 있으므로 인과이시(因果異時)라 한다. 그러나 묶은 갈대를 서로 의지해서 세우는 것은 넓은 의미의 인과관계이니 이와 같은 인과관계에서 보면 인과동시(因果同時)이다.

 

유식파(唯識派)에선 종자에서 종자가 생기는 관계는 인과이시(因果異時)이고 종자에서 현행(現行)이 생기고 현행에 의해 종자를 훈(熏)하는 관계는 인과동시(因果同時)라 한다.

육인(六因)ㆍ오과(五果) 중에서 이숙인(異熟因)과 이숙과(異熟果)와의 관계 및 동류인(同類因)ㆍ편행인(遍行因)과 등류과(等流果)와의 관계는 어느 것이나 인과이시(因果異時)로 구유인(俱有因)ㆍ상응인(相應因)과 사용과(士用果)와의 관계는 인과동시(因果同時)이다.

 

능작인(能作因)과 증상과(增上果)와의 관계는 양쪽에 다 통한다.

또 동류인(同類因)과 등류과(等流果)와의 관계는 전생(前生)의 자기가 인(因)이 되어 후세(後世)의 자기를 낳게 되는 관계임으로 이것을 자류인과(自類因果)라 한다.

 

[法界]

현상 세계의 근본이 되는 형상이 없는 진리의 세계. 본체계 또는 허공법계라고도 한다.

나무의 가지와 잎을 현상계라고 한다면 뿌리를 본체계라고 할 수 있다.

형상 있는 현상세계는 형상 없는 법계에 근원하여 존재하게 된다.

일체의 존재를 육근(六根)ㆍ육경(六境)ㆍ육식(六識)으로 나누었을 때, 의식의 대상이 되는 것 모두를 법계라 한다. 따라서 일체 법을 의미한다. 이 경우에는 현상세계로서의 법계와, 진리세계로서의 진여ㆍ법성(法性)의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법은 본래 인간의 행위를 보존한다는 뜻을 지닌 말이나 불교에서는 모든 사물의 근원을 뜻한다. 특히 대승불교에서는 종교적인 본원을 의미하며, 여기에 경계라는 의미의 ‘계’를 붙여 진리의 세계를 상징한다. 그래서 법계는 진여(眞如)와 동의어로 쓰이기도 한다. 진리 자체로서의 부처, 곧 법신불을 뜻하기도 하며, 화엄교학(華嚴敎學)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세계를 뜻하기도 한다.

 

[四聖諦]

사제(四諦)라고도 함. 고(苦)· 집(集)· 멸(滅)· 도(道)의 네 가지 진리로 구성되어 있다.

석가모니의 성도(成道) 후 자기 자신의 자내증(自內證)을 고찰하여 설한 것이 십이인연(十二因緣)이라면, 사제설은 이 인연설을 알기 쉽게 타인에게 알리기 위해 체계를 세운 법문이다. 십이연기설이 이론적인 것임에 대해 사제설은 이론적인 동시에 실천적인 것이며, 오히려 실천을 주로 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제의 첫째는 고제(苦諦)이다.

고제는 불완전하고 더러움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 현실을 바르게 보는 것이다.

이 고(苦)는 구체적으로 생·노·병·사(生老病死)의 4고(苦)와 원증회고(怨憎會苦)·애별리고(愛別離苦)·구부득고(求不得苦)·오온성고(五蘊盛苦)의 네 가지를 합한 8고로 하고 있다.

 

이 중 애별리고와 원증회고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거나 사별하는 것, 그리고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산다는 것을 말하며 이는 고뇌의 원인이 된다. 특히 자기중심적인 애증(愛憎)에 대한 집착이 강하면 강할수록 고뇌는 더욱 심해지는 것이다.

 

구부득고는 생각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앞의 것과 같이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에 생기는 고통들이다. 오온성고는 앞의 일곱 가지를 개괄한 것으로, 오온(五蘊 : 一切法)에 대한 자기중심적인 집착을 가진다면 모든 것이 고라는 것을 다시금 강조한 것이다.

 

둘째는 집제(集諦)이다.

집이란 집기(集起), 즉 사물이 모여 일어나기 위한 원인이므로 고의 원인이나 이유라는 뜻이 된다. 고의 원인으로서 ‘도처에서 열락(悅樂)을 추구하여 그치지 않는 갈애(渴愛)’를 뜻하는데, 십이연기설에서는 무명(無明)과 갈애를 고뇌의 원인으로 함께 보고 있다.

 

그러나 갈애는 무명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므로 그 속에 무명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갈애는 모든 번뇌를 대표하는 것이다. 이 갈애는 욕애(欲愛)와 유애(有愛)와 무유애(無有愛)의 삼애(三愛)가 있다. 욕애는 감각적 욕구인 오욕(五欲)에 대한 갈애로서, 현실에 있어서의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애욕을 말한다. 유애는 존재를 뜻하는 유(有)에 대한 갈애로서, 사후에 천국 등의 훌륭한 곳에 태어나고 싶다는 욕구이다.

 

이것도 자기중심적인 욕구이며, 천국 등도 윤회계(輪廻界)에 속하는 것이므로 이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무유애의 무유는 비존재, 즉 허무를 말한다. 어떠한 존재도 절대 확실한 안온세계(安穩世界)가 아니기 때문에 꿈과 같이 아무것도 없는 허무계(虛無界)를 안주(安住)의 땅으로 삼는 것을 무유애라 하는데, 무유애 또한 자기중심적인 것이므로 이상으로 삼는 것을 금하고 있다.

 

무아(無我)나 현세적 입장에서 볼 때 이 갈애는 번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또한 괴로울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고통의 원인을 탐(貪)·진(瞋)·치(癡)의 삼독(三毒)으로 풀이하는 경우도 많다. 자기에게 맞으므로 탐욕을 일으키고, 맞지 않기 때문에 분노하며, 그것이 다시 갖가지 어리석음을 불러 일으킴으로써 괴로움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셋째는 멸제(滅諦)이다.

멸제는 깨달음의 목표, 곧 이상향인 열반(涅槃)의 세계를 가리킨다. 즉 모든 번뇌를 대표하는 갈애를 남김없이 멸함으로써 청정무구(淸淨無垢)한 해탈을 얻음을 말한다.

 

넷째는 도제(道諦)이다.

도는 이상향인 열반에 도달하는 원인으로서의 수행방법이며, 구체적으로 팔정도(八正道)라는 여덟가지 수행법을 제시하고 있다. 팔정도는 바르게 보고[正見], 바르게 생각하고[正思惟], 바르게 말하고[正語], 바르게 행동하고[正業], 바른 수단으로 목숨을 유지하고[正命], 바르게 노력하고[正精進], 바른 신념을 가지며[正念], 바르게 마음을 안정시키는[正定] 수행법이다.

 

이는 또 유(有)에도 무(無)에도 집착하지 않는 중도(中道)의 수행법으로서 원시불교의 근본교의를 이루고 있다. 사제 중의 고는 생사과(生死果)이고, 집은 생사인(生死因)이며, 멸은 열반과(涅槃果)이다. 이는 다시 유전연기(流轉緣起)와 환멸열기(還滅緣起)의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두 가지는 생사유전의 고통과 그 원인을 말하고 멸과 도의 두 가지는 유전을 벗어나 무고안온(無故安穩)의 열반과에 도달할 수 있는 환멸의 수행법을 말한다.

 

그러나 후기의 학자들은 성문(聲聞)이 고집하는 사제의 견해를 파(破)하기 위하여 일체의 제법(諸法)이 공적(空寂)하다는 입장에서 볼 때는 고·집·멸·도가 없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집착을 깨뜨려서 사제의 진의를 살리기 위함이었다.

 

또한 선가(禪家)에서는 사제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을 가하고 있다.

그들에 의하면 고제는 한 생각 물든 마음이 생기는 것을 뜻하고, 집제는 그 생각이 거듭 이어지는 것을 뜻하며, 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멸제라 하고, 멸이 멸하지 않음을 철저히 아는 것을 도제라고 하였다. 즉 사제를 모두 한 생각에 둔 것이다.

 

世尊應化 三千四十六年

己亥 二月 十日

牧牛閑人 釋迦山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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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二卷 發願文 (십이권 발원문)

 

聽如來法 (청여래법)

卽得妙諦 (즉득묘체)

*여래의 진리를 듣고

*곧 바로 묘한 진리를 얻기를 발원합니다.

 

世尊應化 三千四十六年

己亥 二月 十日

牧牛閑人 釋迦山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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