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불법과 동행을/💕대각교단세불법륜

五十五卷 廻向偈 (오십오권 회향게)

by 혜명(해인)스님 2020. 12. 18.

五十五卷 廻向偈 (오십오권 회향게)

取着佛身有爲法 (취착불신유위법)
不着佛身無爲法 (불착불신무위법)
有爲無爲不可得 (유위무위불가득)
發願功德是爲佛 (발원공덕시위불)
*부처의 몸에 집착하는 것은 유위법이요
*부처의 몸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무위법이라

*유위법이나 무위법으로는 얻을 수가 없고
(집착하거나 집착하지 않거나에 참다운 부처를 볼 수가 없느니라)
*발원과 공덕이 부처가 되느니라.

【有爲法】
유위(有爲, 산스크리트어: saṃskrta, 팔리어: savkhata, 영어: created, formed, conditioned)에서 위(爲)는 위작(爲作)·조작(造作: 만들다)의 뜻으로, 유위는 만들어진 것, 조작된 것, 다수의 요소가 함께 작용된 것, 여러 인연이 함께 모여서 지은 것, 인연으로 말미암아 조작되는 모든 현상을 가리킨다.

또는 이렇게 하여 드러난 생성과 소멸의 세계, 즉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의 세계를 뜻한다. 유위법(有爲法, 산스크리트어: sajskrta-dharma, 영어: Karmic existence, conditioned existence)은 유위(有爲)의 세계, 즉, 여러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생성과 소멸의 현상세계의 모든 개별 존재(법·法)를 통칭한다. 또는 그러한 개별 존재(법·法)를 가리킨다.

【無爲法】
무위(無爲, 산스크리트어: asaṃskrta, 팔리어: asavkhata, 영어: uncreated, unformed, unconditioned)는 조작(造作: 만들다)의 뜻이 없는 것으로 유위의 대(對)가 되며, 조작되지 않은 세계, 즉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세계, 즉 생멸변화를 떠난 절대적이며 항상 존재하는 진리 또는 진리의 세계를 뜻한다.

무위법(無爲法, 산스크리트어: asaṃskrta-dharma, 영어: non-Karmic existence, unconditioned existence)은 무위의 세계, 즉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진리의 세계의 모든 개별 존재(법·法)를 통칭한다. 또는 그러한 개별 존재(법·法)를 가리킨다.

원래 무위 혹은 무위법은 열반(涅槃)의 다른 명칭이었는데, 후대의 아비달마불교와 대승불교에 의해 삼무위(三無爲), 육무위(六無爲), 구무위(九無爲) 등의 설이 생겼다.

【發願】
발원의 원(願)은 서원(誓願)이라고도 하며, 하나의 목적을 세우고 그 목적을 기어코 달성하겠다고 하는 서약적인 결의를 말한다.

발원은 어리석고 나쁜 마음을 모두 버리고 부처님처럼 크고 넓고 맑은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다짐하는 불자의 바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불자에게는 누구나 원이 있다. 원은 우리의 삶에 목표를 두고 중심을 이루며, 지혜와 용기가 나오는 것이다.

먼저 불자가 갖는 대표적인 근본 원이 4가지 있다.

첫째, 가엾은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둘째, 끝없는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셋째, 한없는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넷째, 위없는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라고 하는 사홍서원(四弘誓願)이 그것이다.

불자들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언제나 이 원을 여의지 말아야 하겠다. 우리는 온갖 어리석음 속에서 한없이 어려운 괴로움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올바른 깨달음의 길로 이끌어 맑고 밝은 삶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이 서원력으로 인하여 모든 불자는 번뇌에서 벗어나며 악도를 벗어나고 중생을 제도하며 불국 정토를 성취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서원은 자신의 이익만을 얻으려는 욕심이 아니라, 남도 이롭게 하려는 생활 태도다.

원(願)은 곧 희망(希望)이며 이상이다. 사람이란 참된 희망과 영원한 이상을 지님으로써 전진이 있고 향상이 있게 된다. 참된 보리 열반의 불과(佛果)를 성취하려는 불자로서 어찌 넓고 큰 희망과 이상을 지니지 않겠는가. 그 이상과 희망이 크면 클수록 그 활동과 노력도 큰 것이요, 그 노력이 클수록 그 결과도 클 것이니 불자로서 넓고 큰 서원을 세워 굳게 그 원을 닦아 나간다는 것은 참으로 거룩한 행이라고 하겠다.

우리 불자들은 이 땅에 태어난 다행스러움과 부처님 법문을 만난 경사스러움에 큰 감사와 용기를 일으켜 발원을 하고 그것을 실천할 것을 굳게 맹세하여야겠다. 원을 세우기는 쉽지만 지속하기는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십년, 이십 년은 자기가 세운 원대로 행할 수 있는 각오가 서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세운 원을 지속적으로 실천할 때 그 원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功德】
산스크리트 구나(Guna)를 번역한 말로, 연기(緣起)와 윤회를 근본으로 하는불교에서 가장 중시하는 행위의 하나이다.

공덕의 종류는 냇물에 징검다리를 놓아 다른 사람들이 쉽게 건널 수 있게 하는 월천공덕(越川功德), 가난한 사람에게 옷과 음식을 나누어주는 구난공덕(救難功德)·걸립공덕(乞粒功德), 병든 사람에게 약을 나누어주는 활인공덕(活人功德) 등 매우 많으며, 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가 모두 공덕이 된다.

무엇보다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해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런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이다. “공작새가 여러 가지 색깔로 몸을 장식하였을지라도 이것은 기러기가 멀리 날아 갈 수 있는 것만 못한 것이고, 흰옷이 부귀의 힘은 있을지라도 출가하여 얻는 공덕의 수승함만 못하다”고 『대지도론』 권4에 말씀하신다.

또한 “사람들은 탐욕이 매우 커서 자기 몸에 붙은 한 덩어리 살점은 떼어 줄지언정 돈은 한 푼도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는다. 그러나 돈이란 죽으면 지니고 갈 수 없으므로 살아 있을 때만 그 공용을 발휘한다. 부처님의 형상을 씻어 드리는 관불(灌佛)의식을 거행하면 공덕이 살아서나 죽어서나 끊이지 않는다.”며 『관세불형상경』에서 부처님께 귀의하는 공덕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을 하거나 ‘부처님께 귀의’하는 공덕은 끝이 없어, 수천 사람이 저마다 홰를 가지고 횃불의 불을 붙여도 원래 횃불은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절과 탑을 세우고, 경전을 옮기며, 불상을 모시는 행위가 모두 공덕을 쌓는 것이고, 명절이나 절기·재일에 남을 돕고 액막이를 하며 방생하는 풍속도 불교의 공덕관에서 파생됐다. 당연한 말이지만 공덕은 ‘결과보다 쌓고 닦아 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그러면 하필 왜 부처님만이 공덕을 구족하게 - 혹은 공덕법보(功德法寶)를 가지게 - 됐을까. 『대지도론』 권50에 보이는 “아라한과 벽지불 같은 이는 자신의 이익은 중히 여기면서도 다른 이의 이익을 가벼이 여기기 때문에 두루 공덕을 갖춘다고 하지 못하며, 모든 하늘과 작은 보살은 비록 다른 이를 이익 되게 한다손 치더라도 자기 자신이 아직 번뇌를 제거하지 못했기에 역시 공덕을 두루 갖추지 못했다”는 말씀에서, 왜 부처님이 공덕을 구족(具足)하게 됐는지 알 수 있다. ‘부처님은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함이 깊고 크기에 일체 공덕을 원만하게 갖춘 것’이다.

『대승아미달마잡집론』 권1에도 비슷한 설명이 있다. “보기 드문 한량없고 훌륭한 공덕은 상응의 뜻을 나타낸다. 곧 심사(尋思)의 수량을 넘어 끝없는 여러 힘든 수행과 고행으로부터 나온 최고의 대비력(大悲力)과 두려움 없는 경지 등은 공덕법보와 상응하기 때문이다.” 무수한 수행과 고행 속에서 다져진 중생에 대한 끝없는 자비심이 바로 부처님 공덕의 원천인 셈이다.

世尊應化 三千四十七年
陰 七月 二日
於頭陀山 救生宗刹 牧牛閑室
世界佛敎 初代敎皇 釋迦山漏
--------------------------
五十五卷 發願文 (오십오권 발원문)

成經典結集 (성경전결집)
設立敎皇廳 (설립교황청)
*경전결집을 성취하기를
*교황청 설립을 발원합니다.

世尊應化 三千四十七年
陰 七月 二日
於頭陀山 救生宗刹 牧牛閑室
世界佛敎 初代敎皇 釋迦山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