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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과 동행을/💕대각교단세불법륜

六十一卷 廻向偈 (육십일권 회향게)

by 혜명(해인)스님 2020. 12. 18.

六十一卷 廻向偈 (육십일권 회향게)

一毛孔中入法界 (일모공중입법계)
一法相入一切法 (일법상입일체법)
因陀羅網攝法界 (인타라망섭법계)
普賢修行諸大願 (보현수행제대원)
*한 터럭 구멍가운데 법계가 들어가고
*하나의 진리에 일체의 모든 진리가 서로서로 들어가
*인타라망이 법계를 거둠은
*모두가 보현보살이 수행한 대원이니라.

【法界】
산스크리트어 다르마다투(Dharmadhatu)의 역어이다.
부파불교에서 법계는 의식의 대상이 되는 모든 사물을 가리킨다. 반면, 일반적으로 대승불교에서는 법(法)을 모든 존재 또는 현상으로 해석하여 모든 존재를 포함한 세계, 온갖 현상의 집합으로서의 우주를 뜻하며, 또한 모든 현상의 본질적인 양상, 즉 진여(眞如)까지도 뜻한다.

대승불교 가운데에서도 특히 화엄종에서는 법계를 연기의 세계라 하여 법계연기에 대해 설하며, 밀교(密敎)에서는 법계를 영원의 이법(理法)과 동일시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논하면, 화엄종에서는,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 권18에, ①성법(聖法)을 낳는 인(因), ②제법의 진실한 체성(體性), ③제법은 각각의 분제(分薺)를 보유해서 그 형상은 구별된다는 이상의 세 뜻을 들어 진가(眞加) 또는 일체제법을 말하고 있다.

또 보현(普賢)의 행원(行願)에 의해서 들어가는 법계에 유위법계(有爲法界)ㆍ무위법계(無爲法界)ㆍ역유위역무위법계(亦有爲亦無爲法界)ㆍ비유위비무위법계(非有爲非無爲法界)ㆍ무장애법계(無障碍法界) 등의 오문(五門)의 뜻이 있다 한다.

또 법법계(法法界)ㆍ인법계(人法界)ㆍ인법구융법계(人法俱融法界)ㆍ인법구민법계(人法俱泯法界)ㆍ무장애법계(無障攝法界)의 오중(五重)의 구별을 주장한다. 그러나 법계의 종류가 아무리 많아도 모두 일진법계(一眞法界)에 함섭(含攝)되며 그것은 또 제불중생(諸佛衆生)의 본원(本源)인 청정심(淸淨心)이라고 하고, 일심법계(一心法界)ㆍ일진애융법계라고도 한다.

그리고 앞에 있는 법계의 당상(當相)에 대해 일체법이 서로 일체화(一體化, 相卽)이고 그 기능이 서로 화입(和入)하여(相入), 사사무애(事事無礙)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연기(緣起)라고 설하는 것을 법계연기(法界緣起)라 하며, 이러한 법계(法界)의 구조(構造)를 관하는 것을 법계관(法界觀)이라 한다. 또한 밀교(密敎)에서는 육대를 법계의 체성이라 하여 이것을 대일여래(大日如來)의 삼마나신(三摩那身)이라 하고 그 궁전을 법계궁(法界宮), 그 정립을 법계정, 인을 법계인, 가특력(加特力)을 법계가특(法界加特)라고 이름하고, 또 오지오불(五智五佛)을 설해서, 대일가래(大日加來)는 법계체성지(法界體性智)를 나타낸다고 한다.

또 만법(萬法)은 모두 다 갖추어져 있는 것을 다법계(多法界), 차별적인 만법도 이평등(理平等)의 입장에서 보면 무상전일(無相全一)로 계합(契合)되는 것을 일법계라 하며 합해서 일다법계(一多法界)라 한다. 이를 양부(兩部)에 배치하면 김강계(金剛界)는 지차별(智差別)의 다법계(多法界), 태장계(胎藏戒)는 이평등의 일법계이다.

수행으로 보면 수행을 해서 깨달음에 이르는 상전문(上轉門)은 다법계, 깨달음의 극과(極果)를 가지고 중생을 교화하여 인도하는 기능을 나타내는 하전문(下轉門)은 일법계라고 한다.

양부의 대경(大經, 대일경(大日經)과 금강정경(金剛頂經))은 본래 상하 양전(兩轉)을 갖추고 있어 일다법계를 겸하고 있지만 금강정경계(金剛頂經系)의 금강지는 다법계(多法界)를 표방하고, 대일경계(大日經系)의 선무외(善無畏)는 일법계를 표방했다고 한다. 양부는 용지를 사사(師事)하여 같은 일다법계(一多法界)를 전승(傳承)하였으므로 내증(內證)은 같다고 한다.

【因陀羅網】
불교의 신적 존재 가운데 하나인 인다라(Indra), 즉 제석천의 궁전을 장엄하는 그물을 가리키는 불교용어이다.
범어로는 indrajāla이다. 불교의 욕계(欲界)에 속한 천신(天神)들의 왕인 인드라, 즉 제석천이 머무는 궁전 위에 끝없이 펼쳐진 그물이다. 사방으로 끝없는 이 그물의 그물코에는 보배구슬이 달려 있고 어느 한 구슬은 다른 모든 구슬을 비추고 그 구슬은 동시에 다른 모든 구슬에 비춰지고, 나아가 그 구슬에 비춰진 다른 모든 구슬의 영상이 다시 다른 모든 구슬에 거듭 비춰지며 이러한 관계가 끝없이 중중무진으로 펼쳐진다.

이처럼 인드라망의 구슬들이 서로서로 비추어 끝이 없는 것처럼 법계의 일체 현상도 중중무진하게 관계를 맺으며 연기한 것이어서 서로 간에 아무런 장애가 없다고 화엄교학에서는 이 세계의 실상을 설명한다.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에는 여러 곳에서 인다라망의 비유가 등장하는데 모두 이 세계, 즉 법계(法界)가 인다라망의 보배구슬들과 같이 중중무진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내용을 나타내기 위한 비유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십행품(十行品)」에서는 십행 중 열 번째인 진실행(眞實行)에서 보살이 모든 부처님의 진실한 말을 성취하고는 여러 공덕을 얻게 되는데 그 가운데 여래의 십력(十力)을 얻고서 인다라망과 같은 법계에 들어간다고 한다.

중국 화엄종의 제2조로 불리는 지엄(智儼: 602~668)은 『대방광불화엄경수현분제통지방궤(大方廣佛華嚴經搜玄分齊通智方軌)』(권1 상)에서 법계를 열 가지 문, 즉 십현문(十玄門)으로 설명하는데, 이 가운데 두 번째 문이 인다라망경계문(因陀羅網境界門)이다. 인다라망경계문은 법계를 나타내는 일체 현상이 인다라망의 보배구슬들과 같이 상호간에 중중무진의 관계를 맺으면서 연기한 것이기 때문에 상즉상입(相卽相入)하여 서로 아무런 장애가 없다는 것이다.

지엄의 제자인 신라 의상(義湘: 625~702)은 자신의 저술인 『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에서 지엄의 십현문을 약간 변용하여 받아들이면서 이를 일승과 삼승을 구별하는데 사용하기도 한다. 의상의 법손들은 의상의 설을 이어받아서 인다라망의 비유를 중시하였는데, 특히 균여(均如)는 인다라망경계가 상즉과 상입 중에서도 상즉의 입장, 덕용자재(德用自在)의 측면을 더욱 잘 보여준다는 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의상과 동문수학한 법장(法藏: 643~712)도 스승 지엄의 십현문을 받아들여서 법계연기(法界緣起)를 설명하는 방편으로 적극 활용한다. 법장은 『화엄일승교의분제장(華嚴一乘敎義分齊章)』에서 십현문을 이용해 법계의 실상을 밝히면서 인다라망경계문에서는 『화엄경』에 설해지는 하나의 티끌에 한량없는 부처님과 부처님 세계, 중생들이 나타난다는 게송을 인용하여 이를 증명한다.

또한 작은 티끌에 큰 세계가 들어가는 등의 상즉상입의 인다라망경계는 실제로 그러한 것이지 큰 세계가 작게 변화해서 티끌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 경계는 법성가(法性家)의 참다운 덕(德)이며 본래 법이 그러하기 때문으로 일반 범부들이 알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후의 화엄교가들은 법계의 실상을 밝히는 방편으로서 십현문을 중요하게 사용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인다라망의 비유는 법계의 일체 현상간의 상즉상입을 통한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를 드러내는 가장 대표적인 비유라고 할 수 있다.

世尊應化 三千四十七年
陰 九月 二十五日
於頭陀山 救生宗刹 牧牛閑室
世界佛敎 初代敎皇 釋迦山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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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十一卷 發願文 (육십일권 발원문)

修行無疲厭 (수행무피염)
成就普賢願 (성취보현원)
*피로하게 여기거나 싫어함이 없이 수행하여
*보현보살의 대원을 성취하기를 발원합니다.

世尊應化 三千四十七年
陰 九月 二十五日
於頭陀山 救生宗刹 牧牛閑室
世界佛敎 初代敎皇 釋迦山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