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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十九卷 廻向偈 (육십구권 회향게)

by 혜명(해인)스님 2021. 2. 8.

六十九卷 廻向偈 (육십구권 회향게)

發心出家正道路 (발심출가정도로)
不動不退精進力 (부동불퇴정진력)
不着五欲得法樂 (불착오욕득법락)
能明一切生死夜 (능명일체생사야)
*바른 도의 길이란 발심 출가하여
*움직이지도 물러가지도 않는 정진력으로
*오욕에 집착하지 않고 진리[法]의 즐거움을 얻어
*능히 생사의 모든 밤을 밝히는 것이니라.

【發心】 마음을 일으킨다는 뜻. 불교적 의미로는 발보리심(發菩提心)의 줄임말로, 발무상보리심(發無上菩提心)이라 하며, ‘위없는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의미로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는 불문(佛門)에 들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킴의 의미로도 쓴다.

이외에도 결정발심(決定發心)과 부정발심(不定發心)의 두 가지가 있다. 결정발심은 한번 일으킨 발심이 중도에 변하거나 퇴전하지 않는 발심이다. 이런 발심을 ‘초발심이 곧 바른 깨달음을 얻는다[初發心是便正覺]’라고 하는 것이다. 부정발심은 한번 일으킨 발심이 경계 따라 변하거나 중도에 퇴전하는 발심이다. 이런 발심은 쉽사리 도를 이루기 어렵다. 대개의 사람들은 부정발심이기 때문에 성불하기가 어렵다. 때문에 수행인은 결정발심을 일으켜야 한다.

《금강경(金剛經)》에서 수행을 결심한 보살이 무상보리심을 일으켜야 함을 증명하고 있다. 그 깨달음의 마음[無上菩提心]을 수행하고자 처음 진리에 마음을 낸 보살을 ‘초발심보살(初發心菩薩)’ 곧, 새로 진리에 뜻을 낸 보살을 ‘신발의보살(新發意菩薩)’이라 부른다.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는 ‘만일 처음 발심할 때 마땅히 성불하리라고 서원하면 이미 세간을 뛰어넘은 것이니 응당 세간의 공양을 받을 만하다’고 했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서는 신성취발심(信成就發心), 해행발심(解行發心), 증발심(證發心) 등 세 발심(三種發心)을 설하고 있다.

신성취발심은 결정심을 발하는 것이며, 해행발심은 이해와 실천으로 앞으로 나아려는 발심이고, 증발심은 참마음[眞心]을 드러내는 발심이다. 신성취발심은 다시 직심(直心)·심심(深心), 일체 중생 고통을 건지려는 대비심(大悲心)으로 나뉘고, 해행발심에서는 육바라밀의 실천과 회향심을 발할 것, 증발심에서는 법신을 증득하여 진심[佛心]을 드러낼 것을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대승불교의 상징처럼 통용되는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도 발심의 전부임을 말해주고 있다. 보살은 위없는 깨달음을 성취하려는 목적이 중생제도 원력이라서 지혜와 자비를 겸비한 정발심(正發心)이 성취되는 것이다. 이처럼 발보리심은 ‘위없는 깨달음을 얻는 지혜’이며, 동시에 ‘일체 중생을 제도하려는 자비’를 말한다.

《무량수경종요(無量壽經宗要》에서는 수사발심(隨事發心)과 순리발심(順理發心)의 두 가지를 말한다. 수사발심은 ‘번뇌가 무수하지만 모두 끊기를 원하고, 선법(善法)이 무량하지만 모두 닦기를 원하고, 중생이 무변하지만 모두 제도하기를 원하는 것’이라 했으며, 실천행을 강조한 이는 중생 제도하기를 발원하는 사홍서원의 내용이기도 하다.

천태지자는 <차제법문>을 통해 “보살이 발심하는 상(相)이 바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며 보리심에 대해 “중도정관(中道正觀)으로서 제법 실상을 보고 일체 중생을 가련히 여기는 대비심을 일으켜서 사홍서원을 세우는 것”이라 말했다.

다음으로 순리발심은 연기공성(緣起空性) 및 무자성(無自性)과 연결된다. 즉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니어서 말을 떠나고 생각이 끊어진 경계’인 중도실상(中道實相)의 법을 믿고 이해하여 광대한 마음을 일으킨 바 없이 일으키는 것이 곧 순리발심인 것이다.

결국 순리발심과 수사발심은 이사원융(理事圓融)의 대승보살 실천행인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밝힌 것이다. 중도실상의 법을 깨닫기를 강조한 순리발심은 상구보리의 영역에 속하며, 삼신(三身)의 지혜를 깨닫기 위한 보살 실천행인 수사발심은 하화중생의 영역이다.

보살은 응당히 세간의 법이 공(空)함을 깨달아 늘 그 깨달음을 중생에게 회향하여 중생과 세간을 요익되게 하려는 서원과 자비의 실천 주체이다. 여기서 나타나는 정발심(正發心)을 성취해야 한다.

《화엄경(華嚴經)》 「초발심공덕품(初發心功德品)」에서는 “초발심 공덕은 설하기 어렵고, 알기 어렵고, 분별하기 어렵고, 믿고 이해하기 어렵고, 증득하기 어렵고, 행하기 어렵고, 통달하기 어렵고, 생각하기 어렵고, 헤아리기 어렵고, 들어가기 어려우니라.”면서 “닦을 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는” 중도(中道)실천행으로 승화된 진발심(眞發心)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보살의 중도실천행을 강조한 남종의 신회선사는 “유위를 다함도 없고(不盡有爲), 무위에도 머물지 않는다(無住無爲)”라고 표현하면서 <열반경>을 인용해 “발심과 깨달음은 둘이 아니다. 이 둘 중 발심하기가 더욱 어렵다. 내가 아직 도를 이루지 못했다 하더라도, 먼저 다른 이를 제도하라.

그러므로 초발심에 경례하는 것이다. 초발심은 이미 인천(人天)의 스승이라 성문과 연각을 뛰어 넘는다”고 했다. 조사어록에서 반복 언급되듯이 “내가 아직 도를 이루지 못했다 하더라도, 먼저 다른 이를 제도”하는 것이 진정한 보살의 보리심이다. 더구나 처음 발심한 그 자리가 깨달음의 자리임을 확신하는 발심이기에 <화엄경>에서는 ‘초발심이 바로 바른 깨달음이다[初發心是便正覺]’이라 했다.

연명연수선사는 <화엄경>을 읽다가 “만일 보살이 큰 원력을 내지 않으면 그것은 보살의 마장이다”라는 구절에 이르러 감동하여 <대승비지원문(大乘悲智願文)>을 지어 중생들을 대신해 두루 발원했다.

《화엄경》은 피안에 이르고자 하는 수행자가 보리심을 내야 하는 까닭을 이렇게 노래한다. “보리심은 곧 큰 길이니 능히 모든 지혜의 성에 들어갈 수 있는 까닭이니라. 보리심은 곧 맑은 눈이니, 삿되고 바른 이치를 모두 보는 까닭이니라. 보리심은 곧 밝은 달이니, 모든 거룩하고 청정한 법을 원만케 하는 까닭이니라.” 라고

보리심은 안과 밖이 없기에 중도의 ‘큰 길’이다. 일체 중생이 함께 발심하는 순간 이미 구경각의 문 안에 들어간다. 그런 보리심은 중도의 정안(正眼)이기에 ‘맑은 눈’이며,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님을 보고,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님을 본다.

또 보리심은 실상 반야를 사무쳤기에 ‘밝은 달’이고 불이중도(不二中道)의 법을 두루 비추어 원만케 한다. 또한 보리심은 명경지수(明鏡之水)의 샘물이기에 ‘맑은 물’이라서 번뇌가 본래 없음(本來無一物)을 통달해 위없는 깨달음을 증득한다.

마지막으로 보리심은 중생의 복전이기에 ‘좋은 밭’이다. 가지가지 보리수가 자라나 보리의 열매가 가득한 중생의 어머니이기에 ‘부처의 씨앗’이다. 이로부터 제불이 출세해 정토를 장엄한다.

그런 보리심이란 중도정관(中道正觀)으로서 제법의 실상을 깨달아 일체 중생에 대한 대비심을 일으켜 사홍서원을 세우고, 사홍서원으로 선정을 닦아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보리심을 낸 발심수행자가 마땅히 행해야 할 의무이다. 이렇게 수행하여 위없는 깨달음을 얻고서 일체 중생을 법으로 섬길 때 보리심은 완성되는 것이다.

【出家】 세속의 집을 떠나 불문에 드는 것을 일컫는 불교용어.
석가모니 생존 시에는 그 절차가 간단하여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으면 되었으나 불교의 교세가 커지고 출가를 원하는 사람도 많아지면서 절차가 복잡해졌다. 나이에 제한을 두었고, 부모의 승인과 신분을 따지는 절차를 거친 뒤에야 허락되었다. 출가가 허락된 뒤에도 계율을 배우고 일정한 수행기간을 거쳐야 비구 또는 비구니가 될 수 있다.

머리를 깎고 묵염 등 괴색으로 물들인 옷을 걸치는 상태가 되므로 삭발염의(削髮染衣)라고 하며, 특히 왕후 귀족의 출가를 낙식(落飾)이라고 하였는데 출가한 자가 재가속인의 생활로 되돌아가는 것을 환속, 복식(復飾)이라고 한다.

【精進力】 오력(五力)의 하나로서, 비록 법을 못 보아도 한 마음으로 도리를 구하여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여 머물지 아니하는 것을 정진력이라 한다.

오력은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pañca balāni 역(力)은 활동을 뜻함.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다섯 가지 활동을 말 하는데 아래와 같다.

(1) 신력(信力). 부처의 교법을 믿고 의심하지 않으며, 장애를 없애는 역용(力用)이 있으므로 신력이라 한다.
(2) 정진력(精進力). 비록 법을 못 보아도 한 마음으로 도리를 구하여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여 머물지 아니하는 것을 정진력이라 한다.

(3) 염력(念力). 부처의 가르침을 명심하여 마음챙김을 염력이라 한다.
(4) 정력(定力). 마음을 한곳에 모아 흐트러지지 않게 함을 정력이라 한다.
(5) 혜력(慧力). 부처의 가르침을 꿰뚫어 보는 것을 혜력이라 한다.

【五欲】 불교에서 오관(五官)의 욕망 및 그 열락(悅樂)을 가리키는 다섯 가지의 욕망.
눈·귀·코·혀·몸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 즉 오근(五根)이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의 다섯 가지 감각대상, 즉 오경(五境)에 집착하여 야기되는 다섯 가지의 욕망이다. 또한 오경을 향락하는 것을 말한다.

대체로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전반을 뜻한다. 그것이 인간의 다섯 가지 감각대상 그 자체는 욕망이 아니지만 욕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므로 오경도 오욕이라고 부른다. 또 재욕(財欲)·성욕(性欲)·식욕(食欲)·명예욕(名譽欲)·수면욕(睡眠欲)의 다섯 가지도 오욕이라고 말한다.

【生死】 삶과 죽음을 함께 이르는 말. 모든 생물이 과거의 업(業)의 결과로 개체를 이루었다가 다시 해체되는 일. 생로병사의 시작과 끝을 아우르는 말.

불교 우주론의 삼계를 뜻하는 다른 말. 중생의 업력(業力)에 의해서 삼계 육도(三界 六道)의 미혹한 세계를, 태어나고 죽음을 되풀이하며 윤회하는 일. 생사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생사대사(生死大事)라고 한다.

인생의 모든 문제는 결국 생사로 귀결된다. 철학이나 종교는 궁극적으로 생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상이고 실천체계라고 할 수 있다. 우주 대자연은 성주괴공으로 변화하고, 인생과 만물은 생로병사로 변화한다. 이러한 이치를 따라 사람은 누구나 한 번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이치를 깨달아서 영원히 살려고 한다거나 형상 있는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 해탈(解脫)이다.

世尊應化 三千四十七年
陰 十二月 十三日
於頭陀山 牧牛閑室
世界佛敎 初代敎皇 釋迦山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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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十九卷 發願文 (육십구권 발원문)

發心童眞出家 (발심동진출가)
成就無上佛道 (성취무상불도)

*어린 나이에 발심 출가하여
*위없는 불도를 성취하기를 발원합니다.

世尊應化 三千四十七年
陰 十二月 十三日
於頭陀山 牧牛閑室
世界佛敎 初代敎皇 釋迦山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