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
아버님께서는 남 부럽지 않게 칠십 평생을 살아오셨다고는 하나, 이제 병환으로 벌써 여러 해 동안 병원 신세를 지고 계십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얽힌 금전적인 문제 등 이런저런 일로 편안하게 계시질 못합니다. 빚쟁이들한테 시달리기도 하고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경찰서에 법원에 불려 다니기도 하십니다.
이제 다른 자식들은 다 외면하고. 그런 아버지께선 저만 의지하고 계신 실정입니다.
정신 차리고 있을 땐 보살심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열심히 보살펴 드려야지' 하다가도 이리저리 시달리고 지칠 때는, '어쩌다가 내가 이 인연에 얽혀 이렇게 하루하루 진흙탕을 굴러야 하나.' 하는 원망으로 괴롭습니다. 경찰서로 법원으로 각종 서류를 준비해서 쫓아다녀야 하고, 내 일도 아닌데 빚쟁이들한테 대신 빌기도 하고 하다 보면. 너무너무 힘듭니다. 어찌해야 할까요?
▒ 답
정말 힘드시겠습니다.
내가 생각해봐도 참으로 힘드시겠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게 나한테 주어진 일인데….
그런데 아버지하고 나하고 누가 더 힘들겠나 생각해 보세요.
병원에 누워있으면서 빚쟁이한테 시달리고 관청 일로 시달리는 게 힘들겠나, 아니면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힘들겠나? 물론 도와주는 게 힘들 거 같죠?
제가 아는 분 중에 이런 분이 계셨어요.
남편이 풍을 맞아서 거동을 잘 못 하고 대소변도 받아내고 그렇게 몇 년간 누워있는데 아내가 나가서 돈도 벌어야 하고, 남편 병수발도 하고 그래야 했습니다.
정말 힘들어 죽겠는데. 거기다 대놓고 남편은 걸핏하면 화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조금만 늦게 들어오면 늦게 들어온다고 짜증 내고 신경질 내고, 뭘 집어 던지고. 그러니까 못 살겠다는 거죠.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
그래서 제가 물어봤어요.
정말 힘듭니까? (네.)
남편이 당신한테 짜증을 낸다고 하는데. 당신이 생각할 때, 남편하고 당신 중에 누가 더 힘들 거 같아요? 자기가 변을 누어놓고 그걸 못 치워 가지고 뭉개고 누워있는 사람이 힘들겠어요,
그걸 치우는 사람이 힘들겠어요?
자기가 오줌을 누어놓고 그 기저귀를 못 가는 사람이 힘들겠어요,
그 기저귀 갈아주는 사람이 힘들겠어요?
변을 깔아뭉개고 하루종일 누워서 그거 치워줄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이 힘들겠어요,
밖에 나가 일하는 사람이 힘들겠어요?
누가 힘들겠어요? (남편이 더 힘들겠습니다.)
힘든 사람이 짜증 내겠어요, 덜 힘든 사람이 짜증 내겠어요? (힘든 사람이요.)
그러니까 내가 생각할 때는, '남편이 왜 짜증을 내느냐? 내가 다 돈 벌어오고 병 수발하는데, 짜증을 내도 내가 내야지. 가만히 누워있으면서 자기가 왜 큰소리치냐?'
하지만 잘 살펴보면 그 보살핌을 받는 남편이 더 힘들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짜증 내는 게 진리다. 당연하다 이 말입니다.
만약에 그게 싫으면, 입장을 바꿔 한번 해 본다면 어느 게 낫겠어요?
여러분들 자리에 누워 대소변 깔아뭉개고 누워있는 게 낫겠어요,
그거 치워주는 사람이 되는 게 낫겠어요?
그래서 항상 우리가 자기만 생각하면 늘 괴롭고 불만이 태산 같지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면, 자기가 처한 조건이 얼마나 좋은 건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 도망가고도 싶겠지만, 얼마 뒤에 당신 남편이 죽었다 하면 후회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후회되겠지요.)
당신 아이들 보기에 민망하겠어요, 아니겠어요? (민망하죠.)
일가친척 가족들 보기엔 어떻겠어요?
'지 혼자 살려고 도망갔다.' 그럴 거 아니겠습니까?
지금 잠시 내 눈앞에 보이는 이 어려움을 피하려고 하다가는, 평생 무거운 짐을 지고 살게 됩니다.
그러니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누워있는 사람이 더 힘들다는 생각을 해서 짜증을 내더라도, '아이고 제가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그 대소변을 깔아뭉개고 있어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이렇게 오히려 사과를 하면서 병수발을 하십시오. 그렇게 해서.. 명이 다하면 그때 당신은 자유로워집니다.
애들 보기에도 그렇고. 재혼을 해도 떳떳합니다.
스님이 돼도 떳떳하고 혼자 살아도 떳떳하고. 일가친척 누구도 나에게 할 말이 없을 겁니다. 그러니 기도를 이렇게 하십시오. '누워있는 당신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이렇게만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그분이 마음을 딱 바꿔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렇게나 신세타령만 하던 분이 밖에 나가 일을 하면서도 즐겁게 하고, 가급적 일찍 들어가고, 일 때문에 늦으면 가서 사과부터 하고. 누워있는 사람은 왜 늦게 들어왔는지 알 수 있어요, 몰라요? 모르죠. 누워있는 사람은 몇 시까지 들어올 거다 이 생각만 하지, 놀다 왔는지 일하다 왔는지 이유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래서 그분은 그 이후에 자유로워지셨습니다.
제가 왜 이런 얘기를 하는가 하면. 아버지 병수발이 힘들다고 지금 외면했다가 몇 년 뒤에 아버님 돌아가시면 마음에 걸리겠어요, 안 걸리겠어요? 걸리겠죠.
그래서 부모님 돌아가시면 불효자식이 더 많이 우는 겁니다.
그래 그걸 감당을 못하니까 묘를 크게 쓴다든지, 재를 크게 지낸다든지. 이런 식으로 문제를 풀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죽은 뒤에 진수성찬을 차리는 것보다, 살아계실 때 물 한 그릇이라도 제대로 떠다 드리는 게 효도다. 이겁니다. 그러니 살아계실 때 할 수 있는 만큼하고. 돌아가신 뒤엔 무덤에 안 찾아가도 좋고, 제사 안 지내도 좋고. 그러니까 그런 건 지금 외면한 자식들한테 맡기고. 너무 힘들다고만 생각지 말고. 아버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거고. 아무리 힘들면 아버지보다 힘들겠습니까?
또, 자식이 빚쟁이들한테 시달리면 부모가 자식 대신으로 빌어줍니까, 안 빌어줍니까?
빌어주죠. 경찰서 다니고, 법원에 다니고. 수발하고. 그러죠. 부모는 자식한테 빚진 게 없어도 그렇게 잘하는데, 자식은 어쨌든 부모한테 빚진 게 있잖아요?
그러니까 다른 형제들이 수발하느냐 안 하느냐 따질 필요가 없어요.
안 하는 건 그들의 문제고. 이걸 나누려고 하면 안 돼요.
부모가 유산을 '너만 준다.' 이러면, '아닙니다. 나눠주세요' 이럴 사람 있어요?
그러면서도 빚은 '너만 준다.' 하면 '아닙니다, 다 나눠야 합니다' 이러죠. 빚을 복이라 생각하고, '저에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고 하는 데까지 하세요. 어차피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빚쟁이한테 빌면 됩니다. 그 사람들은 답답하겠어요, 안 답답하겠어요? 답답하겠죠.
그래서 본인한테 안 되니까. 자식들한테까지도 성을 내야 할 거 아닙니까? 화풀이 좀 해야 할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저에게 화풀이 좀 하십시오.' 하는 마음으로 빌기도 하고 하는데 까지 하십시오.
그러나 '내가 다 한다'고는 생각하지 마세요.
내가 원하는 게 다 이뤄지지 않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이 바란다고 내가 다 해줄 수도 없습니다.
내가 하는 만큼 하면 됩니다.
다 할려고 하니까 힘에 부치고 괴로운 겁니다.
하는 만큼 하고, 못할 때는 '내가 어떻게 다하느냐' 이러지 말고, '죄송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하면 그리 오래 하지 않고도 해탈하는 길이 열립니다. 정말 마음으로 자유로워집니다.
그러니 이렇게 기도하세요.
'아버님 감사합니다. 저를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님께서 저를 낳아주지 않으셨다면 제가 어떻게 이 밝은 천지를 보고 살 수 있겠습니까? 정말 고맙습니다.'
이렇게만 기도하세요.
하겠다 말겠다 그런 생각은 말고. 그러면 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