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와 사리의 분배-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너희들 가운데 일부는 ‘스승의 말씀은 끝났다. 이제 우리에게 더 이상 스승은 없다’라는 생각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아난다여! 그러나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내가 떠나면 너희들을 위해 내가 설하고 가르쳤던 법(法)과 율(律)을 스승으로 삼아라. 아난다여! 지금까지는 비구들이 서로 ‘벗이여!’라고 부르지만, 내가 떠나면 그렇게 불러서는 안 된다. 선배 비구는 후배 비구를 이름이나 성, 혹은 ‘벗이여!’라고 불러도 좋지만, 후배 비구는 선배 비구를 ‘존자시여!’ 혹은 ‘구수자(具壽者)여!’라고 불러야 한다. 아난다여! 내가 떠난 뒤 만일 승단이 원하면 사소한 계[小小戒]는 버려도 상관없다. 아난다여! 내가 떠나면 찬나(Channa) 비구에게는 브라흐마-단다(brahma- danda, 梵壇罰)을 부가하라. 세존이시여! 그러나 브라흐마-단다란 무엇입니까? 아난다여! 찬나가 생각한 바를 말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다른 비구들은 그에게 말하거나 훈계하거나 충고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브라흐마-단다이니라.” 위에서 인용한 경전의 말씀은 붓다께서 입멸 직전 아난다 존자에게 직접 지시한 내용입니다. 먼저 붓다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입멸한 뒤에는 법과 율이 스승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불멸후에는 오직 법과 율이 불교교단을 지탱하는 유일한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붓다는 상가 내부의 선배와 후배간의 호칭을 개선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여기서 ‘벗이여!’는 팔리어 ‘아부소(āvuso)’를, ‘존자시여!’는 ‘반떼(bhante)’를, ‘구수자(具壽者)여!’는 ‘아야스마(āyasmā)를 번역한 것입니다. 지금도 남방 상좌부 불교에서는 이러한 전통이 그대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또한 붓다는 자신이 입멸한 후 승단이 원한다면 사소한 계[小小戒]는 파기해도 좋다고 허락하였습니다. 이것은 불교교단의 계율과 관련된 아주 중요한 대목입니다. 그러나 아난다는 그때 사소한 계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붓다께 여쭈어보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붓다 입멸 후 아난다는 장로들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중요한 문제를 왜 그때 좀 더 분명하게 붓다의 의향을 여쭈어보지 않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승단에서는 붓다 입멸 직후 이 안건에 대해 심사숙고했는데, 붓다의 의향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계의 항목은 하나도 없애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이어서 붓다는 찬나 비구에게 브라흐마-단다(brahma-danda, 梵壇罰)을 부가하라고 아난다 존자에게 지시했습니다. ‘브라흐마-단다’는 어떤 한 사람에게 전체의 다수가 일체 말하거나 권고하거나 지시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벌칙 가운데 가장 무거운 중벌(重罰)에 해당됩니다. 찬나 비구는 고따마(Gotama)와 같은 날 태어난 친구로서 고따마의 마부였습니다, 그는 출가 후에도 단체정신이 결핍하여 이따금 승단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고 합니다. 그는 고집 센 외고집의 사람으로 묘사되었습니다. 그래서 붓다는 마지막 훈육상의 법령인 브라흐마-단다를 찬나 비구에게 부가하였던 것입니다. 팔리어 『율장』「소품」에 의하면, 나중에 아난다 존자는 이 사실을 승단에 보고하였으며, 승단에서는 그 집행을 아난다 존자에게 위임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난다 존자는 꼬삼비(Kosambī)의 고시따라마(Ghositārāma)에 머물고 있던 찬나 비구를 찾아가서, 붓다의 지시에 따라 승단에서 브라흐마-단다를 부가한다고 통고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찬나 비구는 그 자리에서 기절해 버렸다고 합니다. 찬나 비구에게 이러한 사회적 형벌이 정식으로 부가되었기 때문에 그는 대중과 떨어져 혼자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겸손해졌으며, 더욱 정진하여 궁극의 목표인 아라한과를 증득했다고 합니다. 다시 붓다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부처이건 법이건 교단이건 도(道)이건 수행 방법이건, 의문이 있는 사람은 서슴지 말로 물어라. 뒷날에 가서, 여래가 세상에 있을 때 물어보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고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물어라.” 이렇게 말하고 두 번, 세 번 질문이 없는가 하고 반복해서 물었지만 비구들은 어느 누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붓다는 다시 “여래를 존경한 나머지, 걱정하여 묻지 않아서는 안 된다. 벗이 벗에게 묻는 것과 같은 기분으로 질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 사람도 질문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붓다는 모두 의심 없음을 확인하고, 이들은 모두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붓다께서는 비구들에게 최후의 말씀을 남겼습니다. “비구들이여! 이제 너희들에게 말하노라. ‘모든 현상(諸行)은 소멸해 가는 것이다.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 이것이 여래의 마지막 말이다.” 붓다께서 이 세상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들려준 말씀은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짧은 말씀 속에 제자들을 향한 붓다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져 있습니다. 2) 붓다의 입멸 이처럼 붓다께서는 제자들에게 마지막 유훈을 남기고, 곧바로 선정(禪定)에 들어갔습니다. 처음에는 초선정(初禪定)에 들고, 초선정에서 일어나 제2선정에 들고, 다시 제3선정를 거쳐 제4선정으로 명상을 높여 갔습니다. 그리고 제4선정에서 일어나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으로, 공무변처정에서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으로, 식무변처정에서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으로, 무소유처정에서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으로, 비상비비상처정에서 상수멸정(想受滅定)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이때 아난다 존자는 아누룻다(Anuruddha, 阿那律) 존자에게 붓다께서 벌써 입멸하셨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누룻다 존자는 붓다께서 입멸하신 것이 아니라 상수멸정에 드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붓다께서는 반대로 상수멸정에 잠시 머문 다음, 비상비비상처정에 들고, 무소유처정, 식무변처정, 공무변처정, 제4선정, 제3선정, 제2선정, 초선정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다시 초선정에서 제2선정으로, 제2선정에서 제3선정으로, 제3선정에서 제4선정으로 들어갔습니다. 제4선정에서 나오자 곧 입멸하셨습니다. 붓다께서 입멸하시자 대지는 크게 진동하고 천둥이 울렸습니다. 그 모습은 매우 두려워 털끝이 곤두설 정도였습니다. 그때 범천 사함빠띠(Brahma Sahampati)가 시를 읊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마침내 육신을 버리게 되리라. 마치 세상에서 비할 바가 없는 사람, 이와 같은 스승, 힘을 갖춘 수행실천자, 정각(正覺)을 얻은 그 분이 사라지듯이. 또한 신들의 왕인 삭까(Sakka, 帝釋天)도 시를 읊었습니다. 아아! 모든 현상은 무상하다. 생멸의 성질로 이루어진 것은 생하고 멸한다. 이것들의 진정이 평온이다. 아누룻다 존자와 아난다 존자도, 신들에게 화답하여 각각 게송을 읊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한 비구들은 스승이 너무나도 빨리 세상을 떠난 것을 보고 슬퍼하며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탐욕을 떠난 비구들은 정념(正念), 정지(正智)하고 슬픔을 견디며 모든 것은 무상하다. 어떻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3) 붓다의 유해 화장 그날 밤 아누룻다 존자는 아난다 존자에게 꾸시나라로 가서 말라족에게 붓다의 입멸 사실을 알리라고 말했습니다. 아난다 존자는 한 사람을 데리고 집회 중인 말라족의 의사당으로 가서 붓다의 반열반 소식을 전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스승이 너무나도 빨리 세상을 떠난 것을 한탄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여 머리를 풀어 헤치고 울고, 팔을 벌리고 울고, 바위처럼 엎어져 울고, 데굴데굴 굴러서 울며 소리 질렀습니다. 그들은 “스승은 너무나도 빨리 세상을 떠나셨다”라고 말했습니다. 꾸시나라의 말라족은 모든 향과 꽃장식, 악기를 모아 공양하였습니다. 말라족의 공양은 7일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7일째 되던 날 꾸시나라의 남쪽 교외에서 다비를 하기로 하고 말라족의 족장 8명이 목욕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붓다의 유해를 옮기려고 했지만,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 이유를 아누룻다 존자에게 여쭈었습니다. 아누룻다 존자는 신들에게 다른 의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신들은 마꾸따-반다나(Makuta-bandhana)라는 말라족의 영묘(靈廟, cetiya)에서 다비(茶毘, jhāpeti)할 것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신들의 뜻을 따르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난다 존자는 말라족 사람들에게 전륜성왕의 장례법에 따라 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이때 마하깟싸빠(Mahā-kassapa, 大迦葉) 존자는 오백 명의 대비구와 함께 빠바(Pāva)에서 꾸시나라로 오고 있었습니다. 큰 길을 따라 오는 도중에 만다라 꽃을 손에 들고 오는 어떤 아지바까(ājivaka, 邪命外道) 교도를 만났습니다. 마하깟싸빠 존자가 그에게 붓다의 소식을 물었습니다. 그는 붓다가 7일 전에 입멸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만다라 꽃은 그곳에서 가지고 온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탐욕을 떠나지 못한 비구들은 울며 소리 지르고, 탐욕을 떠난 비구들은 무상의 이치를 되새기며 참았습니다. 이때 수밧다(Subhadda)라는 늙은 비구가 이제 대사문이 떠났기 때문에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다는 망발을 늘어놓았습니다. 이 때문에 마하깟싸빠는 불멸후 곧바로 제1결집을 개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말라족의 네 명의 족장은 장작에 불을 붙이려고 했지만 도저히 붙여지지 않았습니다. 아누룻다 존자는 “이것은 신들의 뜻이다. 마하깟싸빠 존자가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다. 마하깟싸빠 존자가 붓다의 발에 정례하지 않는 한 불붙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마하깟싸빠 존자와 비구 무리가 도착했을 때 비로소 화장이 시작되었습니다. 꾸시나라의 말라족 사람들은 다비를 마친 세존의 유해[사리]를 자기네 공회당에 안치하고, 7일 동안 세존의 사리에 정중히 예배 공양하였습니다. 4) 사리의 분배 마가다(Magadha)의 아자따삿뚜(Ajātasattu) 왕은 붓다의 입멸 소식을 듣고 사자(使者)를 보냈습니다. 아자따삿뚜 왕은 “세존은 무사계급이고, 나 또한 무사계급이다. 그러니 나는 세존의 사리 일부를 받아서 그 분을 기리는 축제를 열 자격이 있다”라는 전갈을 보냈습니다. 또한 베살리(Vesāli)의 릿짜비(Liccavi)족, 까삘라왓투(Kāpilavatthu)의 석가(Sakya)족, 앗라깟빠(Allakappa)의 부리(Buli)족, 라마가마(Rāmagāma)의 꼴리(Koli)족, 베타디빠(Vethadīpa)의 바라문도, 빠바(Pāva)의 말라(Malla)족도 똑같은 이유로 사리의 분배를 요구했습니다. 꾸시나라의 말라족은 세존께서 우리 마을에서 입멸하셨기 때문에 사리를 나누어 줄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래서 도나(Dona) 바라문이 중재에 나서, 사리를 평등하게 8등분하여 각 종족에게 배분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리를 담았던 항아리는 도나 바라문이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삡팔리와나(Pipphalivana)의 모리야(Moriya)족도 붓다의 입멸 소식을 듣고 뒤늦게 사자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미 분배를 끝낸 뒤였기 때문에 그들은 재를 가지고 돌아갔습니다. 이와 같이 붓다의 유골[사리]는 8등분 하여 각 종족에게 나누어졌으며, 또한 유골을 담았던 항아리와 재를 가지고 가서 여러 곳에 사리탑을 세웠습니다. 이렇게 하여 8개의 사리탑(舍利塔)과 병탑(甁塔), 회탑(灰塔) 등 모두 10개의 탑(塔, stūpa)이 각지에 건립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은 팔리어 『대반열반경』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한역의 여러 자료를 대조해보면, 사소한 점에서는 전승의 다름이 있지만, 큰 줄거리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팔리문 『대반열반경』에는 최후에 시가 실려 있습니다. 1898년 프랑스의 고고학자 펩페(W.C. Peppé)가 까삘라왓투 옛터 근처 삐프라와(Piprāhwa)에서 납석(蠟石)으로 된 완전한 한 개의 항아리를 발견했습니다. 그 사리호(舍利壺) 뚜껑에 새긴 명문(銘文)에는 붓다의 유골을 모셨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붓다의 유골을 수습한 뼈항아리[骨壺]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또한 1957년 알테카르(A.S. Altekar)가 베살리의 옛터에서 사리호를 발견했는데, 명문은 없지만 붓다의 유골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볼 때 『대반열반경』에서 설한 사리팔분(舍利八分)의 기사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고 대부분의 학자들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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