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마지막 여로(3)-
붓다께서 벨루와(Beluva) 마을에서 우기(雨期)의 안거(安居)를 보내고 있을 때, 심한 병에 걸려 격심한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붓다께서는 정진을 통해 자신의 병을 잘 극복하였습니다. 우기가 끝나고 붓다는 다시 베살리(Vesālī)로 돌아왔습니다. 붓다께서 베살리에서 탁발을 마치고, 짜빨라 쩨띠야(Cāpāla cetiya)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곳에서 붓다는 아난다에게 우데나(Udena), 고따마까(Gotamaka), 삿땀바까(Sattambaka), 바후뿟따(Bahuputta), 사란다다(Sārandada), 짜빨라(Cāpāla) 등의 쩨띠야(cetiya, 制多, 支提)가 훌륭하다고 칭찬하였습니다. 쩨띠야(cetiya, Skt. caitya)는 원래 ‘성스러운 나무 혹은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나중에는 ‘영묘(靈廟)’ 혹은 ‘사당(祠堂)’을 뜻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붓다 당시의 제띠야는 ‘노천의 신성한 곳’이라는 뜻이었다고 합니다. 이기영(李箕永)은 쩨띠야를 흔히 ‘묘(廟)’ 또는 ‘예당(禮堂)’이라고 한역되지만, ‘신성한 나무’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석조(石造) 혹은 벽돌로 된 것들은 대개 마우리야 왕조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그 이전에는 석조 또는 벽돌로 된 탑파(塔婆) 모양의 것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붓다 당시에 있었던 가장 원시적인 것은 죽은 사람의 유골 위에 만들어진 토총(土塚) 또는 그 위에 세상을 떠난 성자의 유골이나 유품 위에 총(塚)을 만들게 되면서부터 쩨띠야는 스투파(Stūpa, 塔婆)와 같은 뜻으로 이해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쩨띠야를 영어로는 ‘tumulus’(古墳), ‘sepulchral monument’(무덤의 기념물), ‘cairn’(돌무더기) 등으로 번역하는데, 우리말로는 ‘영묘(靈廟)’ 혹은 ‘사당(祠堂)’이라고 번역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러나 쩨띠야를 불교의 사찰로 이해하면 잘못된 것입니다. 붓다는 이곳 짜빨라 쩨띠야에서 아난다에게 수행이 진전되어 네 가지 초자연적인 능력[四神足]을 획득한 사람은 그가 원한다면 일겁(一劫)이나 그 이상도 이 세상에 머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붓다는 아난다에게 ‘여래는 이미 신족(神足)을 닦은 자이다’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이것은 붓다께서 원하기만 하면 그 생명을 연장할 수 있음을 아난다에게 암시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난다는 악마에 의해 마음이 덮여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해,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해, 세간의 자애를 위해, 인천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일겁 동안 머물러 달라고 간청하지 않았습니다. 붓다께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이처럼 세 번씩이나 암시했는데도 아난다는 이미 악마에게 홀려 있었기 때문에 세존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붓다는 아난다에게 물러가라고 말했습니다. 아난다가 물러난 뒤, 악마가 세존 가까이로 다가와 다음과 같이 사뢰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지금 바로 세존께서는 열반에 드시옵소서. 선서(善逝)께서는 열반에 드시옵소서. 세존께서는 이제 열반에 드셔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그런데 세존이시여! 제가 세존께 열반에 드시도록 권했을 때, 세존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지 않았사옵니까?” “‘악마여! 나에게 비구제자들이 있고, 또 그들이 총명하여 가르침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가르침을 받들어 지니고, 가르침을 바르게 행하고자 하며, 바른 방향으로 행동하며, 스승의 말씀을 잘 파악하여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설명하고 표현하며, 알리고 납득시키며, 이해시키고 분별하게 하며, 명백하게 하고, 또 외도의 삿된 설이 나타날 때는 그 삿된 설을 진리로 제지할 수 있고, 기적을 일으키는 가르침을 설할 수 있는 그러한 상태가 되지 않는 한 결코 열반에 들지 않는다’라고.” “그러나 세존이시여! 지금 이러한 바람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지금이야말로 세존께서는 열반에 드시옵소서. 세존께서는 열반에 드실 때가 온 것이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를 열거하면서 열반에 들도록 유혹받으신 세존께서는 마침내 악마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악마여! 나는 나의 입멸(入滅)에 대해 더 이상 마음 괴로워하지 않느니라. 여래는 머지않아 열반에 들 것이니라. 지금으로부터 3개월 후, 여래는 열반에 들 것이니라.” 2) 지진이 일어난 까닭 이리하여 세존께서는 짜빨라 쩨띠야에서 바르게 사념하시고 바르게 의식을 보전하셨던 지금까지의 유수행(留壽行, 생명을 연장하는 행위)을 중지하셨던 것입니다. 세존께서 유수행을 버렸을 때,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너무 무서워서 온 몸에 털이 곤두설 정도였습니다. 그와 동시에 하늘의 큰 북이 찢어질 정도로 울려 퍼졌습니다. 한편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아난다 존자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벗이여! 실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벗이여! 참으로 희유한 일이다. 참으로 이 지진은 대단하다. 이 지진은 매우 격심하고 무서워 몸의 털이 곤두섰다. 또 하늘의 큰 북도 갈갈이 찢어질 정도로 울려 퍼졌다. 도대체 어떤 직접적 원인(因), 어떤 간접적 원인(緣)이 있기에 큰 지진이 일어난 것일까?’ 그리고서 아난다 존자는 그 이유를 묻고자 세존의 처소로 갔습니다. 세존의 처소에 가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아 세존께 다음과 같이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실로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희유한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큰 지진이 오늘 있었사옵니다. 이 지진은 매우 격심하고 두려워 몸의 털이 곤두설 정도였사옵니다. 또 하늘의 큰 북이 찢어질 정도로 울려 퍼졌사옵니다. 세존이시여! 도대체 어떤 직접적 원인, 어떤 간접적 원인이 있기에 이런 큰 지진이 일어난 것이옵니까?”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난다여! 대지진이 일어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여덟 가지의 직접적 원인과 여덟 가지의 간접적 원인 가운데 어떤 것이 있는 경우이니라. 그 여덟 가지란 무엇인가? 우선 첫째로 아난다여! 이 대지는 수계(水界) 위에 있고, 수계는 풍계(風界) 위에, 또 풍계는 허공(虛空) 중에 있다. 그런데, 아난다여! 풍계에 어떤 원인으로 큰 바람이 불면, 그 큰 바람은 수계를 진동하게 한다. 수계가 진동하면 대지도 진동한다. 이것이 대지진이 일어나는 제1의 직접적 원인, 간접적 원인이니라. 다음으로 아난다여! 이곳에 한 사람의 사문 혹은 바라문이 있다고 하자, 그에게는 초자연적인 능력(神通力)이 있어 모든 것을 뜻대로 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하자. 혹은 대단한 초능력(大神通力), 대단한 역량을 가진 영적인 존재가 있다고 하자. 아난다여! 그가 대지의 관상(觀想)을 행하고, 혹은 한없이 수(水)의 관상을 행할 때, 그것은 이 대지를 대단히 그리고 격심하게 진동하게 하고, 격렬하게 진동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대지진이 일어나는 제2의 직접적 원인, 간접적 원인이니라.” 그리고 붓다는 이어서 나머지 여섯 가지의 직접적인 원인과 간접적인 원인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셋째는 보살이 도솔천(兜率天)에서 내려와 바르게 사념하고 바르게 의식을 지닌 채 어머니가 되는 사람의 태 안에 들 때입니다. 넷째는 이 보살이 바르게 사념하고 바르게 의식을 지닌 채로 어머니의 태에서 나올 때입니다. 다섯째는 여래가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될 때입니다. 여섯째는 여래가 위없는 가르침의 바퀴[法輪]를 처음으로 굴리셨을 때입니다. 일곱째는 여래께서 바르게 사념하고 바르게 의식을 지닌 채 유수행을 버리셨을 때입니다. 여덟째는 여래께서 남김없이 완전한 안락함의 세계(無餘依涅槃)에 드실 때, 이 대지는 크게 진동하고 대단히 진동하며, 격심하게 진동하고 격렬하게 진동합니다. 이상의 여덟 가지의 직접적 원인과 여덟 가지의 간접적 원인이 있을 때 대지진이 일어난다고 붓다는 아난다에게 일러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붓다는 아난다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입멸을 예고했습니다. 그때서야 아난다는 붓다께서 입멸하시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알고, 열반에 드시지 말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때 붓다는 아난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난다여! 이제는 너의 청을 받아들일 수 없느니라. 허나 어쨌든 아난다여! 나는 너희들에게 늘 말하지 않았더냐? 아무리 사랑하고 마음에 맞는 것이라고 곧 이별의 상태, 변화의 상태가 찾아오는 것이라고. 그것을 어찌 피하겠느냐? 태어나고 살고 무너져 가는 것, 그 무너져 가는 것에 대해 ‘무너지지 말라’고 막더라도, 그것은 이치에 부합되지 않느니라. 이러한 것을 아난다여! 여래는 이미 내던지고 배제하며 방출하고 버렸으며 벗어났다. 그리고 유수행도 나는 버렸다. 이리하여 여래는 결정적인 말을 했느니라. ‘머지않아 여래는 열반에 들 것이니라. 지금으로부터 3개월 후, 여래는 열반에 들 것이니라’라고. 이제 와서 생명을 영원토록 하겠다고 하여 그 말을 취소한다는 것은 존재의 도리(道理)에 위배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법문을 아난다에게 설하신 다음, 붓다는 아난다에게 마하와나(Mahāvana, 大林)의 꾸따가라(Kūtāgāra, 重閣講堂)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곳에 도착하신 붓다는 아난다 존자에게 베살리 주변에 있는 비구들을 모두 이곳으로 모이라고 당부했습니다. 비구들이 모이자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리에 대해 깨닫고 설했던 여러 가지 진리를, 잘 알아 지녀 배우고 수행하며 많이 닦아야만 하느니라. 그리고 이 청정한 행이 이 세상에 오래오래 존재하며, 그 결과 그것이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안락의 바탕이 되고, 세상 사람들을 연민하여 신들과 인간의 복리가 되고, 이익과 안락이 되도록 하여라. 그러면 비구들이여! 내가 진리에 대해 깨닫고 설했던 여러 가지 이익과 안락한 진리란 도대체 어떤 것이겠는가? 그것은 예컨대 네 가지 바르게 사념하는 경지(四念處), 네 가지 바르게 노력해야만 하는 것(四正勤), 네 가지 초자연적인 능력(四神足), 다섯 가지 선한 과보의 뿌리(五根), 다섯 가지 힘(五力), 일곱 가지 깨달음의 지분(七覺支), 여덟 가지의 성스러운 길(八聖道) 등이라고 할 수 있느니라. 비구들이여! 이것이 내가 진리에 대해 깨닫고 설했던 여러 가지 진리이니라.” 이상과 같은 가르침을 설하신 다음,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비구들이여! 지금이야말로 나는 너희들에게 마음을 기울여 알려야만 하리라. 명심해서 들음이 좋으리라. 비구들이여! 만들어진 것(有爲)은 결국 멸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게으름 피우지 말고 정진하여 수행을 완성하여라. 여래는 머지않아 열반에 들리라. 여래는 이제부터 3개월 후, 열반에 들 것이니라.”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원만한 이 큰 스승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 다시 다음과 같은 시를 노래하셨습니다. 이 몸에도 늙음은 닥쳐오고 생명의 불꽃 가냘퍼지니, 자,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을 귀의처로 하여, 끝없이... 비구들이여! 게으름 피우지 말고 바르게 사념하여 선계(善戒)를 지키고 사유를 다스리며 자신이 마음을 지켜라 내가 설시한 법(法), 율(律)을 결코 게을리 말고 정진하면, 세세생생 윤회를 끝내고 괴로움의 끝은 다하리. 이상에서 살펴본 경전의 내용을 요약하면, 우기의 안거가 끝나자 붓다께서 베살리로 탁발을 나갔습니다. 그때 아난다에게 여래는 만약 원하기만 한다면 일겁(一劫) 혹은 그 이상으로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난다는 악마에게 마음이 사로잡혔기 때문에 붓다께 일겁 동안 머물러 달라고 간청하지 않았습니다. 그 뒤 악마의 권유를 받아들여 3개월 후 입멸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다른 역본(譯本)에서도 전승되고 있습니다. 이 경전에 의하면 붓다께서 빨리 입멸하게 된 까닭은 아난다가 붓다께 요청하지 않은 과실 때문이라고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에드워드 제이 토마스(Edward J. Thomas)는 “이러한 질책의 가혹함은 붓다에 의한 것이 아님이 거의 확실하지만, 이러한 전설이 창작된 후, 교단에서 일으킨 느낌일 것이다. 이것은 또한 제1결집의 이야기에서도 나타나는데, 이것에 의하면 아난다는 승단에서보다 먼저 자신의 과실을 시인했다고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일본의 학자들도 이 내용의 의미를 각자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기도 합니다. 와다나베 쇼오꼬(渡邊照宏)에 의하면, 짜빨라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대반열반경] 중에서도 하나의 절정을 이룹니다. 붓다의 죽음이라는 사실은 신자들에게도 있을 수 없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일이었습니다. 그 밑바닥에는 인간의 자연사(自然死)라는 것을 믿기 어려워하는 원시적 심리가 깔려 있었습니다. 죽음이 일어나는 데에는 무엇인가 ‘부자연스러운’ 원인이 있을 것이라는 견해는 매우 널리 퍼져 있습니다. 하물며 붓다와 같은 비범한 존재의 입멸이라고 생각할 때, 특별한 원인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짜빨라 사당에서의 ‘생명력의 포기’는 붓다의 입멸에 있어서 필요한 선행 조건입니다. 여기서 부수하여, 시자(侍者) 아난다의 허물과 악마의 유혹이 곁들여집니다. 붓다의 입멸 후 아난다는 다른 제자들로부터 몇 가지 허물을 문책 당하게 되는데, 짜빨라 사당의 사건이 가장 큰 것이었다. 아난다는 그러니까 죄를 뒤집어쓰는 사람이며, 이것도 민속학에 많은 사례가 있는 일반적 현상의 하나라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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