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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과 동행을/💕법문의도량

도라는 것이 어디에 있을까

by 혜명(해인)스님 2018. 7. 10.

    우리의 삶에는 끝이 있으되, 앎에는 끝이 없습니다. 한정이 있는 것으로 한정이 없는 것을 뒤쫓자니 위태로울 뿐입니다. 한 백정이 문혜왕을 위하여 소를 잡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의 손이 닿는 곳이나. 어깨를 기댄 곳, 발로 밟은 곳, 무릎으로 짓누른 곳은 슥 삭 하는 소리와 함께 칼이 움직이는 대로 살이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났는데. 음률에 맞지 않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의 동작은 상림의 춤과 같았고, 그 절도는 경수의 음절에도 맞았습니다. 그것을 본 문혜왕이 말하기를, "오 훌륭하도다. 그 기술이 어떻게 그와 같은 경지에 이를 수 있느뇨?" 백정은 칼을 놓고 대답하였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道)로써 재주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때에는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소였으나, 3년이 지나매 이미 소의 모습은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저는 정신으로 소를 대하지 눈으로는 보지 않습니다. 눈의 작용이 멎게 되니 정신의 자연스러운 작용만 있게 되어. 저는 천리를 따라 큰 틈새와 빈 곳에 따라 칼을 놀리고 움직여 소의 본래의 구조 그대로를 따라갈 뿐 입니다. 그 기술의 미묘함에 아직 한 번도 힘줄이나 질긴 근육을 건드린 일이 없사온데, 하물며 큰 뼈야 다 말할게 없습니다. 솜씨 좋은 백정은 1년에 한번 칼을 바꾸는데, 그것은 살을 가르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백정들은 달마다 칼을 바꾸는 데, 뼈를 자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 칼은 19년이 되었으며, 수천마리의 소를 잡았으되, 칼날은 방금 숫돌에 간 것 같습니다, 소의 뼈마디에는 틈이 있는데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가 없는 것을 틈이 있는 곳에 넣기 때문에 칼을 휘휘 놀려도 항상 여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9년이 지났어도 칼날은 새로 숫돌에 갈아 놓은 것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뼈와 살이 엉킨 곳에 이르게 되면, 저도 어려움을 느껴 조심조심 경계하며 눈길을 거기에 모으고 천천히 손을 움직여서 칼의 움직임을 아주 미묘하게 합니다. 그러면 살이 뼈에서 발려져 흙이 땅 위에 쌓이듯 쌓입니다. 그리고 나면 칼을 들고 서서 사방을 둘러보며 만족스러운 기분에 잠깁니다. 그러다가 칼을 닦아 챙겨 넣습니다." 문혜왕이 말했습니다. "훌륭하구나. 나는 백정의 말을 듣고 양생(養生)의 도를 터득했도다." 비록 우리가 가장 천시하는 백정이지만 그들에게도 그들 나름의 도가 있는 것입니다. 문혜왕은 그 도를 배운 것이겠지요. 우리는 도가 먼 산속에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라는 것은 바로 우리 옆에 아니 내가 지금 가는 곳에 펼쳐져 있습니다. 지금 나는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이 글을 보시면 꼭 천 마디의 염불을 하시라는 부탁의 말씀드립니다. 관세음보살이건 지장보살이건 석가모니불이건 불자님들 입에서 쉽게 나올 수 있는 것을 택해서 하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불교는 앎의 종교가 아닌 지혜의 종교입니다. 기도 잘 하고 계시죠? 예, 라고 하시는 분들이 그립습니다. 나무 구고구난 관세음보살 오늘도 좋은날 만드소서. 성불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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