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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경 12

by 혜명(해인)스님 2019. 2. 28.


-유마경 12-
    (원문) 이 몸은 정한 것이 없으니 늘 죽음으로 나가는 것이며 이 몸은 독사와 같고 원수, 도둑과 같으며 빈 촌락과 같으니 오음 십팔계 십이입으로 모여 되었니라. 여러분, 이 몸은 싫증나고 걱정거리라 마땅히 부처님 몸을 원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부처님 몸은 곧 법의 몸이니 한량없는 공덕과 지혜로 쫓아 생겼으며 계행과 선정 지혜와 해탈과 해탈지견으로 생겼으며 (해석) 이 말은 5분 법신을 말하는 것인데 조석으로 부처님 전에 예불할 때 계향, 정향, 해향 해탈향 해탈지견향 하면서 향 향공양을 올리는 것인데 향 하나를 사러 올리는데도 다 깊은 뜻이 있습니다. 다들 잘 알고 게시겠지만 모르시는 분을 위해서 다시 자세히 말씀 드립니다. 戒香 定香 慧香 解脫香 解脫知見香(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 이 말은 "지계의 향이, 선정의 향, 지혜의 향, 해탈의 향, 해탈지견의 향을 거룩하신 부처님께 사루어 올립니다." 라는 말인데 여기에 하나하나 뜻이 있습니다. 즉, 계향(戒香) 하는 것은 '계(戒)를 지킴으로 탐심(貪心)을 여의신 부처님께 우리도 그와 같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향을 피워 올립니다.'라는 뜻이 담겨 있고, 정향(定香)은 '마음의 안정(定)으로 진심(瞋心)을 여의신 부처님께 우리도 그와 같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향을 피워 올립니다.'라는 뜻이 담겨 있으며, 혜향(慧香)은 '참된 지혜(慧)로써 치심(痴心)을 여의신 부처님께 우리도 그와 같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향을 피워 올립니다.'라는 뜻이 담겨 있고, 해탈향(解脫香)은 '삼독번뇌의 속박을 벗어나(解脫) 자유자재하신 부처님께 우리도 그와 같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향을 피워 예배 올립니다.'라는 뜻이 담겨 있으며, 해탈지견향(解脫知見香)은 '삼독번뇌의 속박을 벗어나(解脫) 스스로 자유자재하심을 알고 계신(知見) 부처님께 우리도 그와 같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향을 피워 예배 올립니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위의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의 다섯 가지를 오분법신향(五分法身香) 또는 줄여서 오분향(五分香)이라고도 하고 오분향례라고도 합니다. 왜 끝에 "향"자를 붙었는가 하면요 요즘은 향이 흔해빠져서 아무 곳에서나 구할 수 있어서 비사지도 않지마는 옛날에는 귀해서 세상에서 가장 값진 물건 중에 향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궁극적으로는 향의 고귀함을 내 마음에 심는다는 그른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분향은 부처님을 위시해서 모든 깨달은 분들이 갖추고 있는 광대한 무량공덕을 가리킵니다. 공덕을 크게 말해서 만행(萬行), 만덕(萬德)이라고 합니다. 흔히 부처님께서는 팔만 사천 가지의 공덕을 갖추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을 줄이고 줄여서 다섯 가지로 말할 때 오분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분향 속에는 온갖 수행의 결과가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위와 같이 오분향(즉, 온갖 수행의 결과로 갖추게 된 온갖 공덕)을 지니신 몸인 오분법신(五分法身)께 향을 공양하고 예(禮)를 올리는 것을 오분향례(五分香禮)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분향의 첫째인 "계향(戒香)"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합시다. 삼학의 첫째인 "계"는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경계한다.'는 뜻인데, 여기에는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일을 잘 분별하여 궁극적으로는 해야 할 일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현실 속에서의 "계"의 의미는 인간이라면 지켜야 할 규칙이나 질서, 사회의 규범, 도덕성 등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계향"이라고 하는 것은 계율을 잘 지키면 혼탁하고 무질서한 사회가 밝고 명랑하고 깨끗한 사회가 되기 때문에 그 속에서 절로 향기가 풍겨난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의 "정향(定香)"은 계향이 잘 이루어지면 저절로 오는 것입니다. 개인의 안정은 물론 집안의 안정과 나아가 사회의 안정까지를 통틀어서 "정향"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 번째의 "혜향"은 '지혜의 향기'를 뜻합니다. 불교에서는 지혜를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 어떤 것이라도 지혜가 없다면 빛을 발할 수가 없는 것이며, 지혜와 함께 불교의 또 다른 이념인 자비 역시 지혜가 바탕이 되어야 올바른 자비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계, 정, 혜 삼학의 가르침을 흙탕물에 비유 할 수 있습니다. 바람이 불고 돌을 던져 흐리게 된 흙탕물에는 아무 것도 비치지 않습니다. 더욱이 그물은 마실 수도 없습니다. 그런 흙탕물을 맑게 하려면 우선 물이 움직이지 않고 고요해지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돌도 던지지 않고 바람도 불지 않아야 물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금지하는 일이 바로 "계"에 해당합니다. 그 다음에는 흙이 가라앉도록 조용히 기다리면 안정이 찾아오는데 그것이 바로 "정"의 상태입니다. 수면이 안정되어 고요해지면 그 물 위에는 우리가 원하는 바를 모두 비춰 볼 수 있고, 맑아진 물은 마실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을 "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유에서와 같이 지혜는 계와 정이 마련되면 저절로 얻어지는 삼학 중의 맨 마지막에 놓이는 덕목인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살이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무질서하고 혼탁해져서 엉망진창이 된 삶이 있다면 우선 질서를 바로잡아 안정을 되찾는 일을 먼저 해야 합니다. 안정을 되찾는 일은 해야 할 일은 열심히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안정 위에 우리가 기대하는 발전된 삶을 꿈꿀 수 있는 것입니다. 계, 정, 혜 삼학의 실천은 개인의 인생살이나 가정생활에서는 물론 이웃과 사회에까지 그 어디에도 해당이 안 되는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불교의 배움을 세 가지로 요약해서 삼학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삼학은 팔만대장경의 축소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의 "해탈향"에서 "해탈"은 모든 장애, 고통, 어려움, 문제에서부터 벗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생로병사를 위시해서 집착 때문에 일어나는 개인적인 모든 문제를 고통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런 문제들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로운 상태가 되는 것을 해탈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부처님처럼 훌륭한 인격자가 되려면 현재의 상태에서 부단히 벗어나야합니다. 현재의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는 것. 즉, 늘 새로운 모습으로 현재의 상태에서 변화 발전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일상생활 속에서의 해탈의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어떤 고정된 관념 속에서 보지 말고 항상 새로운 각도로 바라보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이와 같이 생활 속에서의 해탈이란 우리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좀 더 미래지향적이고 발전적이며, 새로운 삶을 꿈꾸고, 창조하고, 구상하며, 그것을 몸소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할 것입니다. 늘 새로운 삶을 꿈꾸며, 창조적인 태도로 매 순간을 사는 것이 해탈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그런 삶에는 향기가 안 날래야 안 날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삶을 긍정적이고 새롭고 밝고 맑은 마음으로 성장시키려는 것이 진정한 해탈인 것입니다. 인간의 일생은 한번 밖에 없는 예술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평생을 통해 자신의 예술품을 다듬고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매 순간을 보다 아름답게 자신의 작품을 장식할 수 있도록 해탈의 의미를 되새기며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생사해탈이 목적이라 하더라도 작은 해탈부터 실천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오분향의 마지막으로 "해탈지견향"은 해탈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지견"은 지혜가 끊어지지 않도록 이어간다 말입니다. "해탈지견"은 다른 모든 사람들을 해탈의 경지로 이끄는 중생제도를 뜻하는 것이지요. 불교는 자신의 해탈과 함께 다른 사람의 해탈을 동일시하기 때문에 전법을 통한 중생제도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탈에 대한 바른 이해, 즉 "해탈지견향"이란 나와 더불어 모든 사람들의 해탈을 함께 성취하려는 교화활동을 뜻합니다. 해탈에 대한 바른 견해가 섰다면 자기 자신도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바로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그래야 올바른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제대로 알게 되면 자연적으로 실천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이 둘이 아닌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앞의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의 각각 항목이 참으로 자기 것이 되어서 하나가 된 상태가 바로 "해탈지견향"인 것입니다. 이렇게 살펴본 바와 같이 오분향(五分香)에는 부처님의 모든 법문이 함축되어 있으며, 부처님과 모든 수행자들이 갖춘 무량한 공덕이므로 우리도 그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오분향을 통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궁극적으로 어떤 것인가를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님들께서는 평생을 통해서 예불문의 구절을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것들을 완벽하게 다 게시다고 오분법신이라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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