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불법과 동행을/💕불교자료실

유마경 29

by 혜명(해인)스님 2019. 2. 28.


-유마경 29-
    부처님께서 장자의 아들 선덕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에게 가서 병을 위문하여라. 선덕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사람에게 가서 병을 위문 할 수 없나이다. 그 까닭은 예전에 아버님 계신 집에서, (大施會 =많은 음식으로 많은 사람에게 보시하는 것) 큰 시회를 베풀고 오는 스님 네와 바라문들과 모든 외도와 가난한 이, 미천한 이, 고아들, 거지들을 이레동한(7일간) 공양하노라니, (해석) 나의 재물과 좋은 일을 남에게 나누어 주는 것을 보라하고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즐겁게 나누어주는 것) 나를 고달프게 하여(노력해서 =몸으로 봉사 활동) 남에게 베풀어주는 것을 시라 한다. 돈과 먹을거리를 가지고 가서 나누어주고 청소라든가 어떤 일을 해주면 보와 시를 동시에 한 것 만일 함께 참여할 수 없을 때 돈을 희사하는 것은 보가되고, 빈곤하여 나누어 줄 재물이 없을 때 남이 보시하는 것을 수희(隨喜)하는 마음을 일어키어 몸으로 동참하면 시가 되어서 복의 과보(福報)는 같다. (원문) 그때에 유마힐이 회중에 들어와서 내게 말하기를, 여보시오 선덕님, 대 시회는 그대가 베푸는 것 같이 그렇게 해서는 아니 됩니다. 마땅히 법으로 하는 보시 회를 베풀 것이거늘, 어찌 하여 재물로 보시하는 일을 하리까? 유마힐은 재물로 보시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는 것처럼 애기를 하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백유경에 있는 글이다. 어떤 사람이 손님을 초청했을 때 대접하기위해 우유를 준비하려고 하는데 한꺼번에 많은 우유를 짜려고 어미 소와 송아지를 따로 두었다가 한 달쯤 지난 뒤에 손님이 와서 젖을 짰지마는 젖이 말라붙어 우유가 나오지 않았다는 비유를 하면서 사람들은 부유해진 뒤에 크게 보시하리라 하고 미루지만 막상 보시해야 할 때가 되어도 홍수 화재 등 베풀 수 없는 형편이 되는 것이 우유의 비유로 했다. 사람의 욕만은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많은 줄을 모르고 만족치 않아 더 가지려고 애쓰는 것이 보통인지라 많이 가진 뒤에도 베풀기가 쉽지 않다. 정말 베풀 마음이 있는 사람은 생계의 여유가 있기를 기다리지 않고 평소 씀씀이를 절약해서 항상 베풀어준다. 유마힐도 평소 재시로 빈곤한 사람들에게 베풀고 있음이 앞의 방편품에 쓰여 있었다. 그러나 유마힐은 재시를 행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위해 법시가 중요하다는 법문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법시를 하지 않고 재시만 해서는 진정한 중생 구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이 욕망을 억제하고 물질적 만족 이상의 고상한 만족을 구하지 않으면 세상은 절대로 평화롭지 않는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철저히 가르쳐 주려고 법시를 설명하는 것이다. (아마 여기에 나오는 선덕거사가 아주 인색하여 부유하면서도 재시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유마는 그에게 재시를 권했을 것이다. 그러나 선덕은 이미 재시를 충분히 했으므로 법시를 일러주는 것이리라.) 선덕이 대 시회를 베풀어 바라문과 외도 (바라문에서 바라문외의 가르침을 외도라 하듯이 불교에서 불교와 바라문교외는 외도라 했다) 그리고 가난한 많은 사람들에게 재시를 하였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그 당시 인도의 바라문 풍속입니다. 그들의 풍속에 많은 음식으로 이레 동안 범천에 제사 지내고 그 음식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게 함으로써 다음 생에 천상에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그 갚음을 바라고 보시하는 것은 부정시(不淨施)라 하여 배척하고 다만 보시하는 것은 마음으로 기뻐하고 어떠한 갚음도 바라지 않아야 진정한 선근(善根)이 된다고 했다. 유마거사나 선덕거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서 다 같이 보살행에 힘쓰고 있는 것이므로 유마는 선덕의 재시를 책망하면서 사실은 말법중생인 지금의 우리들에게 법시의 중요함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원문)거사님, 어떻게 하는 것이 법으로 보시하는 것입니까? 법으로 보시하는 것은 먼저도 없고 나중도 없어서 한꺼번에 일체중생에게 공양하는 것이 법시로 보시하는 것이외다. (해석) 앞도 없고 뒤도 없다는 것은 재물보시는 많고 적음의 차이 물건이 같지 않음의 차이, 처음 사람과 나중 사람의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마련이지만. 법시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이익을 줄 수 있다 재시와 법시를 완전하게 행해지기만 한다면 세상에 고뇌에 빠진 사람은 없게 될 것이다. (원문) 어떻게 하는 말씀입니까? (여기서부터 아래는 유마힐이 불법을 세상에 폄에 있어서 어떻게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를 설하고 있다) 보리로써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앞장에서 자비희사의 사심이 보살도를 근본임을 설명했고 여기에서는 사심을 어떻게 길러 나갈 것인가를 설명한다, 보리란 곧 깨달음이니 깨달음이란 인생의 진정한 의의를 깨닫는 것이니 인생의 의의를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먼저 깨달음을 얻어야 하므로 보리로써 자심을 일으키라는 말이다)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불쌍히 여기는 큰마음(대비심)을 일으키며, (중생의 괴로움을 나의 괴로움으로 알고 그 원인을 하나하나 구명할 길을 강구하는 것) 정법을 가짐으로써 기뻐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잘못이 전혀 없으므로 정법이라 했고 그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기쁨이 크다는 것) 지혜를 섭수함으로써 평등한 마음을 일으키며, (부처님의 지혜를 내 것으로 만든다고 섭수라 한다, 사심(捨心)을 가지면 모든 중생이 평등하게 보인다) 정법을 가짐으로써 기뻐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아끼고 탐하는 이를 포섭하므로 보시 바라밀을 일으키고 (탐욕이 고의 원인이 되므로 탐욕이 많은 사람을 타일러서 베풀도록 인도하는 것) 계율을 범한 이를 교화하기 위하여 지계바라밀을 일으키며, 내가 없는 법으로써 인욕바라밀을 일으키고 (욕됨을 참고 견디는 행을 하는 것, 즉 나에 집착하는 생각이 아주 없어지면 성내는 일이 없을 것이고 교만하지 않아서 그로인해 괴로움을 받지 아니하고 마음이 평화롭고 편안하다. 무아로써 인욕을 행하면 복이 생긴다. 라고 했음) 몸과 마음을 여윔으로써 정진 바라밀을 일으키며, 보시를 위하여 선정 바라밀을 일으키고, 일체지를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일으키며, (보살은 부처님의 지혜를 갖추게 되기를 이상으로 삼고 지혜를 연마하는 것 부처님께서 갖추고 계신 지혜를 일체지라 한다. 즉 모든 사물의 진실한 상을 다 아는 것) 중생을 교화하면서 한 마음을 지니고 세간 법을 버리지 아니 하면서 실 상법을 여의지 아니하여, 일부러 몸을 받으면서 세속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정법을 보호하므로 방편을 잘 활용하며, (세속생활을 하면서도 마음으로는 무상을 관찰하고 부처님의 정법을 세상에 널리 펴서 ) 중생을 제도함으로써 사섭법을 일으키고, (자기도 세상의 대중과 다를 바가 없다는 태도로 그들로 하여금 친근함을 느끼게 하여 차차 감화시키고 정법에 끌어들이는 것) 계속해서 보시에 대한 근본적인 정신을 설명하고 있다. 온갖 높은 이를 공경하여 섬기므로 교만한 마음 없애는 법을 일으키며, 몸과 목숨과 재물에 세 가지 견고한 법을 일으키고, 여섯 가지 생각하는 가운데서 생각하는 법을 일으키며, 여섯 가지 화합하여 공경하는 데서 질박하고 곧은 마음을 일으키고, 올바르게 행하는 착한 법으로 깨끗하게 사는 법을 일으키며, 마음이 깨끗하여 즐거워함으로 성현에게 가까이 함을 일으키고, 나쁜 사람을 미워하지 아니하므로 조복하는 마음을 일으키며, 출가하는 법으로 깊은 마음을 일으키고, 말한 것과 같이 행하므로 많이 듣는 마음을 일으키며, 다투지 아니하는 법으로 공한(空閑)한 곳을 가리는 마음을 일으키고, 부처님 지혜에 나아가므로 좌선하는 마음을 일으키며 중생의 얽힌 번뇌를 풀어 주기 위하여 보살행 닦을 마음을 일으키고, 상호를 구족하고 불국토를 정화하기 위하여 복덕 업을 일으키며 중생들이 마음을 알고 적당하게 법문을 말하므로 슬기로운 업을 일으키고, 일체 법이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는 둘을 알아 한실상의 문에 들어가므로 지혜 업을 일으키며, 일체 번뇌와 일체 장애와 일체 나쁜 법을 끊으므로 일체 착한 업을 일으키고, 일체 지혜와 일체 착한 법을 얻기 위하므로 일체 조도법(助道法)을 일으킬지니 좋은 남자여, 이렇게 하는 것이 법으로 보시하는 법회며, 만일 보살이 이러한 법보시 하는 법회에 머물러 있는 이는 대시주가 되며, 일체 세간의 큰 복전이 되나이다. (진정한 보시는 자비정신에서 나온다는 보시에 대한 근본적인 정신을 설명하면서 재시와 법시가 다 큰 복이 될 수 있지마는 법시가 더욱 소중함을 일깨우며 중생을 교화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편이 필요하지만은 부처님의 정법을 호지하는 것이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임을 강조하는 내용) 세존이시여, 유마힐이 이런 법문을 말할 적에 바라문 가운데 2백 사람이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사오며, 저는 마음이 청정하여 처음 보는 즐거움을 얻고 머리를 조아려 유마힐의 발에 절하고, 수없이 값비싼 영락을 벗어 드렸더니, 유마힐이 받지 아니 하므로 거사님, 바라 건데 이것을 받아서 주고 싶은 이에게 주십시오. 하였더니, 유마힐이 그제야 영락을 받아 두 몫을 내어 한 몫은 그 회중에 있는 가장 못난 걸인에게 주고, 한 몫은 난승여래께 바치니, (난승여래= 덕이 아주 높아서 그를 당할 수 없으므로 그렇게 불렸음, 거지에게나 부처에게 같은 불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한사람도 가벼이 여기지 않는 보시의 평등함을 나타낸 것) 여러 회중들이 광명세계에 계시는 난승여래를 뵈오며, 그 진주영락이 저 부처님 위에서 변화하여 네 기둥으로 된 보배 좌대가 되었는데 사면에 장엄을 드리웠으나 서로서로 가리지 아니함을 보았나이다. 그때에 유마힐이 이러한 신통변화를 나타내고 다시 말하되, 시주가 만일 평등한 마음으로 가장 못난 거지 한 사람에게 보시하되, 만일 부처님께 보시하는 것과 같이 여기어 분별을 내지 아니하고, 대비심이 평등하여 과보를 구하지 아니하면 이것을 일러 구족한 법보시라 하나니라. 하더이다. 그때에 성중에 있던 가장 못난 걸인도 그의 신통력을 보며 그의 법문을 듣고, 역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기에, 나는 그이에게 가서 병을 위문 할 수 없나이다. 이렇게 여러 보살들이 제각기 부처님을 향하여 지나간 인연과 유마힐이 말하던 것을 여쭈옵고, 모두 그이에게 가서 병을 위문 할 수 없노라고 사양 하였다.

    '🙏불법과 동행을 > 💕불교자료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마경 31  (0) 2019.02.28
    유마경 30  (0) 2019.02.28
    유마경 28  (0) 2019.02.28
    유마경 27  (0) 2019.02.28
    유마경 26  (0) 2019.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