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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과 동행을/💕대각교단세불법륜

三十九卷 廻向偈 (삼십구권 회향게)

by 혜명(해인)스님 2020. 6. 8.

三十九卷 廻向偈 (삼십구권 회향게)

能受攝持法雲地 (능수섭지법운지)
超出人天正法路 (초출인천정법로)
頭陀正行明淨法 (두타정행명정법)
寂滅無碍恒調順 (적멸무애항조순)

*능히 거두어 들이고 다스리고 지키는 법운지는
*인천(사람의 세계와 하늘의 세계)을 뛰어 나오는 바른 진리의 길이로다.
*두타의 바른 행은 밝고 깨끗한 법이라
*적멸하고 무애하여 항상 조화롭고 순조롭도다.

【法雲地】
보살의 수행단계 중 십지(十地)의 하나이다.

십지란 보살이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자리가 확고부동해지는 위치 열 가지를 이르는 말이다. 십지를 나열하면
(1) 환희지(歡喜等),
(2) 이구지(離垢地),
(3) 발광지(發光地),
(4) 염혜지(焰慧地),
(5) 난승지(難勝地),
(6) 현전지(現前地),
(7) 원행지(遠行地),
(8) 부동지(不動地),
(9) 선혜지(善慧地),
(10) 법운지(法雲地)이다.

또한 십지는 《십지경》과 《화엄경》 〈십지품〉에 나오는 것으로, 보살이 수도하는 52계위 중 제41위에서 제50위까지가 이에 해당한다. 법운지는 이 중 마지막으로, 보살이 이 계위를 성취하면 완전한 불도를 이루게 된다.
곧 부처와 같은 지위에 오르게 되는 경지이다.
법운지라는 명칭은 하늘의 구름이 단비를 뿌리듯 지혜의 구름이 단비를 내리게 하는 경지라는 뜻이다.

이 계위에 드는 보살은 십바라밀 중에서 지바라밀다(智波羅密多)를 원만히 수행하여 무량백천삼매를 얻고, 욕계· 색계· 무색계· 중생계· 허공계· 열반계 등을 모두 알며, 불가사의해탈(不可思議解脫), 무장애해탈(無障碍解脫), 여래장해탈(如來藏解脫), 법계장해탈(法界藏解脫), 통달삼세해탈(通達三世解脫) 등의 지혜를 모두 통달한다.

또한 넓고 깊은 바다가 지닌 10가지 덕, 즉 십덕(十德)을 갖추는데,
십덕은
① 점점 깊어지는 덕,
② 죽은 것은 받아들이지 않음,
③ 어떤 물도 바다에 들어오면 본래의 이름을 잃어버림,
④ 모두 한 가지 맛임,
⑤ 보배가 많음,
⑥ 지극히 깊어 누구나 쉽게 들어갈 수 없음,
⑦ 넓고 크기가 한량없음,
⑧ 몸이 큰 중생이 많음.
⑨ 들어오고 나가는 물이 때를 어기지 않음,
⑩ 비가 아무리 내려도 넘치는 일이 없음을 말한다.

【頭陀行】 불교의 승려가 닦는 수행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범어 ‘dhu·ta’를 음역한 것으로 ‘버린다· 떨어버린다· 씻는다· 닦는다’ 등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출가수행자가 세속의 모든 욕심이나 속성을 떨쳐버리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닦으며, 참기 어려운 고행을 능히 참고 행하는 것을 두타 또는 고행자(苦行者)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두타행 또는 두타행자라고 하였다.

두타행의 세부조목으로는 12두타행·1 3두타행· 16두타행· 25두타행법이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12두타행법을 많이 채택하고 있다.
12두타행은 석가모니 당시부터 행하여졌던 것으로,
① 고요한 곳에 머무르면서 세속을 멀리한다(在阿蘭若處).
② 언제나 걸식하여 신도나 국왕 등의 공양을 따로 받지 않는다(常行乞食).
③ 걸식할 때는 마을의 일곱 집을 차례로 찾아가서 빈부를 따지지 않고 걸식하며,
일곱 집에서 밥을 얻지 못하면 그날은 먹지 않는다(次第乞食).
④ 하루에 한 차례를 한자리에서 먹고 거듭 먹지 않는다(受一食法).
⑤ 항상 배고프지 않을 정도로만 먹고 발우 안에 든 음식만으로 만족한다(節量食).
⑥ 정오가 지나면 과일즙·석밀(石蜜:사탕) 따위도 마시지 않는다(中後不得飮漿).
⑦ 좋은 옷을 입지 않고 헌옷을 빨아 기워서 입는다(著弊衲衣).
⑧ 내의(內衣)·상의(上衣)·중의(重衣) 등 세 가지 옷만을 가진다(但三衣).
⑨ 무덤 곁에 머물면서 무상관(無常觀)을 닦는다(塚間住).
⑩ 쉴 때에는 정자나 집을 택하지 않고 나무 밑에서 쉰다(樹下止).
⑪ 나무 아래에서 자면 습기·독충·새똥 등의 피해를 입을 수 있으므로 한데에 앉는다(露止坐).
⑫ 앉기만 하고 눕지 않는다(但坐不臥) 등 12가지 행을 닦는 것이다.

석가모니의 제자 중에서는 대가섭(大迦葉)이 두타행을 가장 충실하게 닦았다고 한다.
결국 두타행은 애욕과 의식주에 대한 탐착을 떠나서 심신을 깨끗하게 한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석가모니 이후 많은 승려들이 두타행을 닦았으며, 그 전통은 우리나라에도 이어져서 대부분의 고승들이 이 행을 닦았다.

신라의 원효(元曉)는 ≪발심수행장 發心修行章≫에서 욕심을 버리고 산속에 숨어 고행하라는 것을 권고하였고, 문무왕에게서 전장(田莊)과 재물·노비 등을 시주받은 의상(義湘)은 두타행에 입각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여 시주를 사양하였다.

“우리 법은 평등하여 귀천이 균등합니다.
≪열반경≫에 여덟 가지 부정재(不淨財)를 가지지 말라고 하였으니 어찌 전장과 노비를 가지리까. 빈도는 법계(法界)로써 집을 삼고 하나의 바리때로 만족합니다. 법신혜명(法身慧明)을 이것에 의지하여 밝힐 뿐입니다.”

그리고 고려 중기의 보조국사(普照國師)는 ≪정혜결사문 定慧結社文≫에서 “한가롭고 고요한 곳이라야 선관(禪觀)을 이루기가 쉽고, 욕심이 적은 두타라야 능히 성도(聖道)에 들어간다.”고 하였다.
또한 그는 정혜사(定慧社)의 청규(淸規)를 ≪백장청규 百丈淸規≫와 안거두타(安居頭陀)의 계율에 의지하였다.

특히 불교가 억압을 받았던 조선시대에는 많은 수행승들이 두타행을 닦으면서 도심을 길렀는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고한(孤閑)을 들 수 있다.

고한은 두타행을 하다가 유생과 아이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기 직전에 이르렀으면서도 끊임없이 ‘성불(成佛)·성불’이라 하였고, 평생 동안 이름과 몸을 숨기면서 수행하였다고 한다.

【寂滅】
죽음·입적·열반과 같은 뜻. 생멸(生滅)이 함께 없어져 무위적정(無爲寂靜)하게 되는 것. 번뇌 망상의 세계를 떠난 열반의 경지를 말한다.

열반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반열반(般涅槃)’이라고도 하며, ‘멸(滅)·적멸(寂滅)·이계(離繫)·해탈(解脫)·원적(圓寂)’의 의미를 가진다.

이 열반에 관한 사상은 우리나라에서 열반종(涅槃宗)의 창종 이래 널리 연구, 전승되었다. 원래 열반은 불을 입으로 불어 끄는 것, 불어서 꺼진 상태 등을 나타내며, 타오르는 번뇌의 불을 없애서 깨달음의 지혜인 보리(菩提)를 완성한 경지를 말한다.

이는 곧 생사를 넘어선 각(覺)의 세계로서, 불교의 궁극적인 실천목표이다.
인간이 망집 때문에 괴로워하고 업을 짓게 되는 것은 결국 자아를 고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만일 고(苦)와 무상(無常)과 비아(非我)의 이치를 바르게 깨달아서 바른 지혜를 완성한다면, 생사윤회의 근본인 망집을 끊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까닭은 이러한 인식을 긍정하게 될 때, 이미 그 무엇을 자아 또는 나의 것이라고 집착하여 추구하는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경지를 실현하고 진리에 대한 인식을 터득하기 위하여서는 수행에 힘쓰고 계율을 지켜 선정(禪定)을 닦아야 한다.
그러한 수행의 결과로 진리를 터득하고 망집을 단절한다면 인간은 일체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해탈의 경지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불사(不死)·안락(安樂)·적정·열반이라고 한다.
열반은 마치 바람이 활활 타오르는 불을 끄는 것과 같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의 바람으로 불어 꺼서 모든 고뇌가 사라진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열반은 탐욕과 괴로움과 근심을 추월한 경지이기 때문에 인간의 유한한 경험 안에서는 그 어떠한 말로써도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다. 다만 체득한 자만이 이를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실천적인 문제에 있어서 불교는 세속적인 평범한 생활로는 결코 참다운 열반에 도달할 수 없음을 가르친다.
세속에는 극단적인 두 가지 생활방식이 있다.
하나는 감각적인 쾌락에 탐닉하는 생활이며,
다른 하나는 많은 수행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몸을 채찍질하는 고행의 실천이다.
이 환락과 고행이라는 양극단을 피한 불고불락(不苦不樂)의 중도에 의하여 진실에 대한 바른 인식, 바른 깨달음을 얻음으로써 비로소 열반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열반에는 여덟 종의 법미(法味)가 있다. 열반은 생멸변화가 없이 항상 머물러 있는 상주미(常住味)가 있고, 다시는 미혹된 생사가 계속하지 않는 적멸미(寂滅味)가 있으며, 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