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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과 동행을/💕대각교단세불법륜

四十七卷 廻向偈 (사십칠권 회향게)

by 혜명(해인)스님 2020. 6. 9.

四十七卷 廻向偈 (사십칠권 회향게)

無着法輪不思議 (무착법륜부사의)
諸佛法性無二法 (제불법성무이법)
一毛端中轉法輪 (일모단중전법륜)
稽首歸依魔軍衆 (계수귀의마군중)

*집착함이 없는 법륜은 생각으로도 헤아릴 수 없고
*모든 부처가 지닌 진리의 성품에는 두 개의 진리가 없음이라 (無二法)
*한 터럭 끝에서도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니
*마구니의 군대가 머리를 조아리며 귀의 하도다.

【法輪】
부처님의 가르침이 중생의 번뇌, 망상을 없애는 것이, 마치 전륜성왕의 윤보(輪寶)가 산과 바위를 부수는 것 같으므로 법륜이라 하며, 또 교법은 한 사람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고, 항상 굴러서 여러 사람에게 이르는 것이 마치 수레바퀴와 같이 굴러간다는 의미로 법륜이라 한다.

초기 불교의 교단에서는 부처의 설법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으나, 중국에서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분류하는 교상판석(敎相判釋:경전을 내용·시기 등에 따라 분류함.)에 많이 붙여 사용하였다.

대표적인 주창자로는 축도생(竺道生)·길장(吉藏)·진제(眞諦)·현장(玄奘) 등을 들 수 있다.

축도생은 부처의 일대교설(一代敎說:일생의 가르침)을 선정법륜(善淨法輪)·방편법륜(方便法輪)·진실법륜(眞實法輪)·무여법륜(無餘法輪)의 사법륜(四法輪)으로 분류하였다.

길장은 근본법륜(根本法輪)·지말법륜(枝末法輪)·섭말귀본법륜(攝末歸本法輪)의 삼법륜으로, 진제는 전법륜(轉法輪)·조법륜(照法輪)·지법륜(持法輪)의 삼법륜으로 분류하였다. 현장은 사제법륜(四諦法輪)·무상법륜(無相法輪)·요의법륜(了義法輪)의 셋으로 분류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이와 같은 법륜설(法輪說)을 널리 채택한 고승은 신라의 원효(元曉)이다. 원효는 그의 저서인 ≪열반종요 涅槃宗要≫·≪법화경종요 法華經宗要≫ 등에서 이를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길장의 삼종법륜에 대하여, 원효는 근본법륜이란 석가모니가 처음 성도(成道)하여 화엄회상(華嚴會上:화엄경을 설한 법회)에서 보살들을 위하여 일인일과(一因一果:동일한 원인에 의해 동일한 결과를 얻음.)의 법문을 말한 것이라고 하였다.

지말법륜은 복이 엷고 근기(根機:깨달을 수 있는 능력)가 둔한 무리들이 그 깊은 일인일과의 법문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일승(一乘)을 삼승(三乘)으로 나누어 설한 것이라고 하였다.

섭말귀본법륜은 석가모니가 40년 동안 삼승의 법문을 설하여 그들의 근기를 향상시킨 뒤에 다시 삼승을 일승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하여 설한 ≪법화경≫ 등의 가르침이라고 하였다.

진제의 삼법륜에 대해서는 그 명칭을 유상법륜(有相法輪)·무상법륜(無相法輪)·무상무상법륜(無相無上法輪)으로 바꾸어서 해설하였다.

유상법륜은 오직 성문승(聲聞乘:가르침을 듣고 배워 깨닫는 사람)을 지향하는 사람을 위한 것으로서 사제(四諦)를 근본으로 하여 법륜을 굴리는 교법이며, ≪아함경 阿含經≫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무상법륜은 보살승(菩薩乘)을 지향하는 사람을 위한 것으로서, 법의 공성(空性)을 근본으로 하여 법륜을 굴리는 교법이며, ≪반야경≫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무상무상법륜은 삼승을 모두 지향하는 이를 위한 것으로서, 법공(法空)과 무자성(無自性)을 근본으로 하여 법륜을 굴리되, 위가 없고 더 받아들일 것이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이름을 붙였으며, ≪해심밀경 解深密經≫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不思議】 불가사의(不可思議)와 같음. 불보살의 해탈·지혜·신통력이 헤아릴 수 없다는 말이다.

『대승기신론』에 의하면 일체법의 진실상은 말과 글로 도달할 수 없고[言語道斷], 생각의 자취마저 사라진[心行處滅] 부사의경계(不思議境界)여서 일체의 언어와 사유를 용납하지 않는다. 일체의 법은 말할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기 때문에 진여(眞如)라고도 이름한다.

【法性】
범어로는 dharmatā이다. 존재를 존재이게 하는 것 또는 존재의 진실로서 불변하는 본성을 가리키는 불교용어.
법성(法性)은 아비달마불교에서 불설(佛說)을 불설로서 인정하게 하는 기준의 하나였다. 석가모니가 남긴 유법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요구됨에 따라, 경과 율 외에 법성에 위배되지 않아야 불설로서 인정하였다. 이 때 법성은 성인의 가르침(진실)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때로는 법상(法相)이라고도 표현된다. 이런 의미에서 법성은 정리(正理, yukti: 올바른 도리)라는 의미로 일반화되고, 불설의 진위를 판단하는 가장 우선적 기준이 된다.

①『화엄경』에서는 ‘존재를 존재이게 하는 것’ 이라는 의미뿐 아니라, ‘존재의 진실로서 불변하는 본성’의 의미로 사용된다. 『십지경론』에서는 ‘법체(法體)’라는 용어로 한역되기도 한다.

② 『중론』에서의 dharmatāsbavhāva로서 ‘존재의 자성(自性)’을 의미한다. 쿠마라지바가 『소품반야경』을 번역할 때는 sarva-dharmāṇāṃ prakṛtiḥ를 법성으로 한역했으며 이 역시 존재의 자성을 의미한다.

③『유마경』에서는 진여(眞如)와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④『중변분별론』에서는 ‘존재의 보편적인 양상’의 의미를 지닌다.

⑤『보성론』에서는 법계(法界, dharma-dhātu)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이와 같이 법성은 대승불교에 들어와서 철학적 의미를 담지(膽智)하는 개념이 되면서 다양화된다.

【歸依】
귀의는 불(佛, Buddha)·법(法, Dharma)·승(僧, Saṃgha)의 삼보(三寶)에 귀투(歸投, 곧 돌아가 의탁함)하여 믿음에 몸을 맡기고 신앙함을 말한다. 이를 삼귀의(三歸依)라고 하며, 불교신앙의 전부를 나타낸다. 그리고 귀명(歸命)은 범어 나마스(namas)의 역어로 머리를 숙여 경의를 표하는 것인데, 그 음을 따서 나무(南無)라 하고, 이는 귀의한 마음을 말로 나타낸 것이다.

삼보(三寶)에 대해서 귀의하는 맹서의 말은 일반적으로 삼귀의문(三歸依文)이라고 불리는데, "나무귀의불(南無歸依佛), 나무귀의법(南無歸依法), 나무귀의승(南無歸依僧)"이라는 문구이다.

무엇 때문에 삼보에 귀의하는가 하는 이유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귀의불무상존(歸依佛無上尊): 부처는 최상무상(最上無上)의 인격 완성자이기 때문에 귀의한다.
귀의법이욕존(歸依法離欲尊): 불법은 탐욕을 떠나게 하는 존귀한 가르침이기 때문에 귀의한다.
귀의승화합존(歸依僧和合尊): 불교 교단은 평등화합의 이상사회이기 때문에 귀의한다는 말이다.

삼귀의의 형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취하고 있는 것은 ‘귀의불양족존(歸依佛兩足尊)·귀의법이욕존(歸依法離欲尊)·귀의승중중존(歸依僧衆中尊)’이며, 한 구절을 외울 때마다 예경(禮敬)을 하게 된다.

귀의불양족존이란 부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높으며, 대원(大願)과 수행, 복덕(福德)과 지혜를 함께 갖추었으므로 돌아가 의지한다는 뜻이다.

귀의법이욕존은 불법(佛法)이 일체의 허망됨과 욕심을 떠난 청정한 법이므로 돌아가 의지한다는 뜻이다.
귀의승중중존은 승(僧)이 일체의 대중 가운데서 가장 존귀한 존재이므로 돌아가 의지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사찰에서 아침저녁으로 행하여지고 있는 <오분향예불문 五分香禮佛文> 또한 이 삼귀의를 보다 구체적으로 의식화시킨 것이다.
이 예불문은 시방삼세(十方三世)의 삼보를 함께 취하는 한편, 귀의승에다 신앙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대표적인 보살(菩薩)의 명칭과 석가모니 당시의 대표적인 제자 집단, 그 밖의 인도·중국·우리나라의 성현들을 함께 수용하여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신라의 원효(元曉)는 그의 ≪대승기신론소 大乘起信論疏≫에서 삼귀의를 더욱 강조하여 ‘귀명삼보(歸命三寶)’로 이름을 붙이고 이를 상세히 설명하였다.
또, 고려 말기의 나옹(懶翁)은 자심삼보(自心三寶)에 귀의할 것을 강조하였다.
나옹은 귀의를 ‘허망을 버리고 진실을 가지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자심삼보란, 항상 분명히 깨달아서 허명영묘(虛明靈妙)하고 천연(天然) 그 자체로서 조그마한 조작도 없는 것을 ‘자심불보(自心佛寶)’, 탐애를 아주 떠나서 잡념이 생기지 않고 마음의 광명이 시방세계를 비추는 것을 ‘자심법보(自心法寶)’,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고 한 생각도 생기지 않으며 과거와 미래가 끊어지고 홀로 드러나 당당한 것을 ‘자심승보(自心僧寶)’라고 정의하였다.

삼귀의례가 귀의의 대상을 외부에다 둔 타력신앙(他力信仰)의 성격을 가진 것인 데 대하여, 나옹의 자심삼보는 자기의 마음을 삼보로 삼아 스스로를 깨우쳐 간다는 자력신앙에 근거를 두고 있다.

世尊應化 三千四十七年
陰 閏 四月 八日
於頭陀山 救生宗刹 牧牛閑室
世界佛敎 初代 敎皇 釋迦山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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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十七卷 發願文 (사십칠권 발원문)

在在處處 (재재처처)
法輪常轉 (법륜상전)

*있는 곳 곳 마다에서
*항상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기를 발원합니다.

世尊應化 三千四十七年
陰 閏 四月 八日
於頭陀山 救生宗刹 牧牛閑室
世界佛敎 初代 敎皇 釋迦山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