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불법과 동행을/💕불교자료실

천수경 30

by 혜명(해인)스님 2018. 7. 1.


-천수경 30-
    발사홍서원 (發四弘誓願) 그리고 또 4가지 큰 서원을 세웁니다. 중생무변서원도 ( 衆生無邊誓願度 ) 번뇌무진서원단 ( 煩惱無盡誓願斷 ) 법문무량서원학 ( 法門無量誓願學 ) 불도무상서원성 ( 佛道無上誓願成 ) 중생무변서원도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가없는 모든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 그들 모두에게 나의 형편 닿는 대로 부처님 전에 공양하듯 베풀어 주고, 공부한 것 한마디씩이라도 그들에게 전해 주어 끝없는 중생들 모두를 제도하기를 서원한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노력하고 노력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한 가지라도 배워 가지고 다른 사람한테 부처님 말씀을 전하면 그것을 보시는 부처님 마음은 얼마나 좋으실까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우리는 본래 부처님의 아들딸들입니다. 본래 부처입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깨닫고 있지 못한 탓에 중생이라 부릅니다. 중생과 부처의 차이는 이와 같이 깨닫고 못 깨닫고의 한 생각 차이라 하셨습니다. 한 생각 깨달으면 그 자리가 부처요, 한 생각 어리석으면 그 자리가 중생이라' 하셨습니다. 중생을 제도한다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어리석음을 깨치는 것입니다. 본래 부처임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본래 무한능력자임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한 생각 깨달으면 부처입니다. 무량한 부처님들께서 깨달음의 길을 통해 부처의 길을 가셨고, 위대한 성자, 현자들은 모두 이 길을 통해 영원의 길을 가셨습니다. 이 길을 가르쳐야 합니다. 깨달음의 길을 열어줘야 합니다. 이 길을 모르는 자들은 영원히 암흑 속을 헤맬 수밖에 없고 영원히 중생일 수밖에 없습니다. 깨달음은 광명이요, 등불입니다. 이 땅을 가득 채운 중생들은 모두 자기 자신이 부처임을 모릅니다. 그러기에 마구잡이로 함부로 살아갑니다. 자기 자신이 풍요로운 존재임을 모릅니다. 그러기에 천박한 생활을 능사로 알고 인생을 헛되게 살아갑니다. 그들에게 스스로가 부처의 분신임을 일깨워 줘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중생무변서원도'입니다. 그들은 맹세코 제도하기를 서원해야만 합니다. 번뇌무진서원단 끝이 없는 모든 번뇌를 맹세하고 끊으리다. 번뇌가 끝이 없지만 모두 끊겠다는 서원하는 겁니다.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고 어지럽히고 미혹시켜 퇴락하게 하는 정신작용의 모두를 번뇌라 부릅니다. 중생은 번뇌에 의해 업을 일으키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아 생사의 세계를 헤맵니다. 불교는 번뇌를 끊고 열반의 깨달음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삼습니다. 열반경 에는 `번뇌 즉 보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번뇌 그대로가 보리라(깨달음)이라는 의미입니다. 중생의 어리석은 경지에서 보면, 미망(迷妄)의 주체인 번뇌와 깨달음의 주체인 보리는 전혀 다른 차원 같습니다. 그러나 깨달은 눈으로 보면 그 두 가지가 그대로 하나이어서 차별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알기 쉽게 설명한다면, 번뇌는 마음의 때와 같은 것으로 흡사 거울에 때가 묻었기에 닦으려는 마음이 나고, 거울의 때를 닦기 때문에 저절로 맑아지게 되어, 마음의 때가 깨달음을 이루는데 중요한 측면이 된다는 가르침 입니다. 번뇌 즉 보리'라는 의미는 이렇게 우리들에게 큰 의미를 지닙니다. 번뇌를 괴로워할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그 번뇌를 녹여 내려야 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성불의 길이 열립니다. 번뇌가 다 하게 되면 그 자리가 바로 부처님의 자리인 것입니다. 또 이렇게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먼지가 허공에 많이 떠 있으면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먼지가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더럽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먼지가 없으면 우리들은 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먼지 입자들에 수증기가 묻어 비가 되는 근본적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우리가 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가 내리면 더러운 먼지도 씻어 내리고 해서 온 세상은 맑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번뇌무진서원단 문자 그대로 한없는 무진번뇌가 있더라도, 맹세코 끊어 내겠다는 서원 속에 불자의 수행생활을 열어가야 할 것입니다. 법문무량서원학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마음속의 모든 법문 맹세코 다 배우리라. 우리는 성불의 대도(大道)를 걷기 위해 안내자가 필요합니다. 안내자란 다름 아닌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경(經)이라 부릅니다. 경이란 말은 길이란 의미인데, 부처님께서 그 길을 가 보시고는 그 길로 가서 성불 했으니까, 이리로 오면 된다 하고 알려 주시는 말씀이 경입니다. 그러한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가르침을 배우고)나도 그 길을 가겠다고 내가 갈 길을 내가 만드는 작업을 불도(佛道)를 닦는다 하는데, 우리는 진실로 불도를 닦아가기 위해 무량한 법문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들은 부처님 법을 통해서만이 새롭게 태어날 수 있습니다. 불법이 있음으로 해서 중생의 희망도, 국토의 평화도 가능한 것입니다. 중생들이 거짓과 다툼과 고통의 수레바퀴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중생들이 불법을 모르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진실로 불법은 중생과 세계를 찬연히 밝혀나갈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지혜이며 법입니다. 우리 모든 불자들은 부처님 법을 항상 듣고 공부하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법문이 어렵고 한도 끝도 없더라도 공부하기를 서원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독경을 하고 법문을 듣고, 기도를 하면서 염불을 하는 겁니다. 불도무상서원성 ( 佛道無上誓願成 )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마음속에 있는 불도를 맹세하고 이루리라. 불도가 드높아서 어렵고 힘들고 잘 안되지만 기어코 모두 다 이루겠다는 서원입니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도(道)가 있습니다. 많고 많은 종교와 가르침들이 저마다의 도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많고 많은 도가 이 땅에 존재함은 많은 사람들을 어지럽게 만듭니다. 물론 목적지로 가는 길이 한길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많고 많은 길[道]가운데 불도(佛道)를 위없는 도(道)다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불도란 바로 부처님과 하나 되는 도이고 진리와 하나 되는 도이며 절대 그 자체로 승화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많은 도들은 하나를 얘기하지 않습니다. 창조주가 있고 피조물이 따로 있는 상대성의 도입니다. 그들에 따르면 절대자에 의한 구원이 아니고서는 우리들의 구원이 불가능 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불도는 그 같은 주장을 낮은 차원의 도라고 부릅니다. 우리들은 피조물이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무한한 창조주가 있음을 얘기합니다. 우리가 그대로 창조주임을 선언합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 스스로 창조주임을 깨닫고 창조주답게 살아가기를 가르칩니다. 우리 스스로 무한한 창조주임을 선언한 도는 불도 이외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 부처님이 항상 함께 계시고, 우리가 곧 부처님이라는 가르침은 참으로 장엄한 가르침이요, 위없는 가르침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불도 가운데 부처님과 하나 되고 영원과 하나 됩니다. 광대무변한 우주는 불도를 통해 우리의 마음 가운데 안겨옵니다. 우리는 진정 위없는 불도를 성취할 것을 서원 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 가득한 번뇌 망상 등을 제거하기만 하면 우리는 무한의 존재와 하나가 됩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 갖가지 물질을 바탕으로 한 독심과 악심들의 번뇌가 우리로 하여금 영원과 하나 됨을 방해합니다. 불도를 닦는다는 것, 불도를 이룬다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이 번뇌를 녹여 내리고 부처와 하나 되는 작업입니다. 참으로 성스럽고 지고(至高)한 값어치를 지닌 숭고한 작업입니다. 우리가 흔히 도로를 내는 작업을 생각해 보면 좀 더 이해를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잡초를 제거하고 길을 닦으면 그 길을 따라 쉽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길은 영원의 길이요, 진리의 길이기에 우리 모두 위없는 불도를 성취 하겠노라는 굳세고 굳센 서원을 다짐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원아불퇴보리심'하면서 물러나지 않겠다고 서원을 하는 겁니다. 자성중생서원도(自性衆生誓願度) 자성번뇌서원단(自性煩惱誓願斷) 자성법문서원학(自性法門誓願學) 자성불도서원성(自性佛道誓願成) 자성중생서원도 내 마음속에 있는 중생을 맹세코 제도하기 원하옵니다. 자성번뇌서원단 내 마음속에 번뇌를 맹세코 끊기를 원하옵니다. 자성법문서원학 내 마음속에 법문을 맹세코 배우기를 원하옵니다. 자성불도서원성 내 마음속에 불도를 맹세코 이루기를 원하옵니다. 우선 나부터 먼저 제도해야 하겠다, 내 마음의 번뇌부터 끊어가면서, 열심히 법문을 공부하고 내가 먼저 불도를 이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서원입니다. 네가 빠르냐. 내가 빠르냐. 경쟁하자는 것이 아니고 누구든지 자기입장에서 보면 자기가 제일 급하니까, 그래서 내 마음 부터라고 자성, 자성 하는 겁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번뇌는 내가 아니면 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중생 바로 나를 제도하기 위해서 법문을 배워야 하고 나를 제도 하고 나면 불도는 이루게 되더라. 이 천수경이 간단히 읽어버리고 넘어가면 별 재미가 없지만 이렇게 뜻을 음미해 가면서 읽으면 참기름 보다 더 꾄 맛이 들어있습니다. 이게 다 부처님 말씀이기 때문에 맛이 있는 겁니다. 발원이 귀명례삼보 發願已 歸命禮三寶 나무상주시방불(南無常住十方佛) 나무상주시방법(南無常住十方法) 나무상주시방승(南無常住十方僧) (3번) 발원이(發願已), 발원을 마치고. 위에 설명한 이러한 발원을 하고나서 마지막으로 귀명례삼보라. 삼보님께 이 목숨 다 바쳐 예배드리옵니다. 우리의 발원은 이제 마쳐졌습니다. 우리의 발원은 삼귀의로 귀착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심귀명례'하듯이, 우리들은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부처님과 가르침과 스님들께 귀의하는 마음으로만이 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발원은 참으로 고귀하고 장엄한 것이기에 그 길은 삼보님의 위신력과 더블어함께 하는 길입니다. 우리들은 원력의 달성을 위해 항상 삼보님과 하나 됨을 선언하고, 한없는 예경의 마음을 지녀야만 합니다. 불, 법, 승, 삼보에 귀의하는 마음은 부처님과 하나 되는 마음이고, 우리들은 `지심귀명례'를 통해 그를 확인합니다. 나무(南無)의 뜻은 바로 지심귀명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상주(常住)의 뜻은 항상 함께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시방(十方)의 뜻은 사방팔방 상하 언제 어디에서나 입니다. 부처님은 언제 어디에서건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부처이고, 너의 마음 나의 마음이 부처이듯, 이 세상 모두를 부처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곧바로 부처님 마음입니다. 우주를, 만상을, 그리고 우리 주변의 모두를 부처님으로 섬긴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진실로 우리는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삼보님 전에 귀의해야만 합니다. `나무상주시방불, 나무상주시방법, 나무상주시방승'의 뜻은 ` 항상 함께 계시는 부처님, 항상 함께 계시는 가르침, 항상 함께 계시는 스님들께 몸과 마음을 다 바쳐 귀의합니다.' 라는 말입니다. 그럼 우리다 함께 합장하고 큰소리로 해봅시다. 나무상주시방불, 나무상주시방법, 나무상주시방승 (3) 모두 성불하십시오!

     

    '🙏불법과 동행을 > 💕불교자료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수경 28   (0) 2018.07.01
    천수경 29   (0) 2018.07.01
    열반경 (1)  (0) 2018.07.01
    열반경 (2)  (0) 2018.07.01
    열반경 (3)  (0) 2018.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