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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경 10

by 혜명(해인)스님 2018. 7. 1.


-천수경 10-
    천수천안관자재보살 광대원만 무애대비심 대다라니 (계청) 경 이 긴 구절이 이 천수경의 본래 이름이고, 뒤에 계청은 다라니가 열리기를 읽어서 청합니다. 라는 말입니다. 이 다라니를 가질 수 있기를 청합니다. 이경을 읽고 깨우치기를 청한다. 금강경도 원래제목은 금강반야바라밀경 또 반야심경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법화경은 묘법연화경, 화엄경은 대방광불화엄경. 원래 경 이름이 기니까 짧게 줄여서 천수경 금강경 심경 이렇게 간단하게 부르는 겁니다. 관자재보살은 관세음보살을 다른 게 부른 것뿐이지 같은 분이고, 광대원만 무애대비심 넓고 커서 광대하지만 원만해서 걸림이 없는 큰 자비의 마음, 그런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걸림이 없는 마음입니다. 걸림 없이 자유자재로 큰 힘을 발휘하는 아주 큰 자비로운 마음. 바로 부처님의 마음입니다. 하늘에 있는 태양을 보세요. 태양은 어느 특정한 사람한테만 비추지지 않습니다. 잘났거나 못났거나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태양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그 빛을 비춥니다. 세계에 두루 원만해서 장벽이 없어요, 누구에게나 항상 장벽이 없이 베푸는 마음, 부처님은 진실로 광대원만하고 무애대비심입니다. 부처님은 끝없는 하늘이고 깊이를 모를 바다와 같이 무한한 존재입니다. 한계가 없어요, 불가사의한 존재입니다. 불가사의한 청정한 공덕을 햇살처럼 끊임없이 우리들에게 부어주시고 계십니다. 나의 마음에 나의 집안 우리사회에 구석구석 골고루 나누어 주고 계시기 때문에 태양과 같이 계시다고 비유를 하기도 합니다. 이제 분문으로 넘어갑니다. 계수관음대비주 (稽首觀音大悲主) 계수 머리를 숙인다. 누구에게 관음보살님에게 관세음보살님이 가지고 있는 대비주에 머리 숙여 절하옵니다. 대비주는 신묘장구 대다라니 천수경 중에서도 진짜 천수경 알 맹가 대비신주이다 계수문(稽首文) : 머리 숙여 예배하는 글 계수 머리를 숙인다. 조아린다. 이게 보통 의미가 아닙니다. 천수경 제목 천수천안관자재보살 광대원만 무애대비심 대다라니 경제목이 끝나자마자 제목 바로 밑에 본문의 시작이 계수부터 시작됩니다. 왜 머리를 숙인다는 것이 본경에서 제일 먼저 나올까 무엇을 배운다. 바란다 할 때는 머리 숙이지 않으면 안 돼요. 교만한 마음으로는 부처의 세계는 고사하고 중생들 세계에서도 환영을 못 받아요, 머리를 숙이는 것은 내 마음을 내가 다스리는 겁니다. 부처님 전에 와서 인사할 때 절할 때 누구를 막론하고 정중하게 공손히 절을 합니다. 마음을 차분히 하지 않고는 공손하게 되지 않겠지요, 머리를 숙이는 그 자체가 마음가짐 입니다. 불교의 수행 방법 중에 하나가 절하는 겁니다. 3배 108배 천배 3천배 이렇게 절하는 이유는 나를 최대한 내려 낮추고 마음을 비우는 마음의 표시입니다. 복을 받으려면 원하는 바를 성취하려면 근본적으로 마음을 열어야 하고 마음을 비워야 한다 말입니다. 겸손하지 않고 뻣뻣해 가지고는 내가 최고다 하는 이런 교만심으로 꽉 차 있으면 마음이 열리지 않고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비울 수 없어서 아무것도 담을 수가 없습니다. 하심 자는 지복이란 말이 있습니다. 마음을 낮출 줄 알아야 머리를 숙일 줄 알아야 복이 이런다. 복이 찾아온다 말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늘 하신말씀 잘 나간다고 복 짓기를 게을리 하지마라 하셨고 본인도 부처를 이루었지만 늘 상 복 짓기를 꾸준히 하셨습니다. 잘 될 때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않고 굴림 하다가 이다음 어려운 역경에 처했을 때 사람들이 뭐라 그러겠어요. 그것 봐라 잘 나간다고 큰소리치더니 꼴좋다, 너도 한번 당해봐라. 현제 역경에 처해있다고 비관하고 좌절할 것 하나도 없다. 인간지사 세웅지마라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 부처님 전에 자꾸 절 하다보며 순풍에 돛 단 듯하다, 말도 할 말이 있게 될 겁니다. 다음다음 하면서 시간적 여유를 기다리다가는, 그때는 늦으리오. 때는 늦으리. 하면 참말로 곤란해. 허리는 굽고 다리에 힘은 빠져 절하기도 힘들고 눈은 어두워서 경도 못 봐 가래는 끓고 기침은 나오고 침도 말라서 염불도 잘 안 되고, 한숨이 절로 나오겠지요. 어릴 적부터 불심에 젖도록 해야 합니다, 불심에 젖은 사람은 그의 가 다 효심이 지극합니다. 여러분들의 자녀들을 일찌감치 관세음보살님의 대자 대비한 대비신주에 머리를 숙이는 자세를 습관화 시켜놓으면 효자효녀 안되려야 안 될 수가 없어요. 내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불교를 지극히 믿는 불자라면 기도를 하더라도 마장 장애 없이 쉽게 기도가 더욱 잘되어서 성취하기가 쉬울 것 아닙니까. 절하는 것도 처음에 절에 왔을 때는 머뭇머뭇 어색하지만은 옆에 분들이 열심히 절하는 것을 보노라면 자기도 따라서 그렇게 하게 되고 몇 번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잘하게 되는 겁니다. 절을 자꾸 하므로 해서 부처님을 더욱 공경하게 되고 신심이 무르익게 되는 겁니다. 계수관음대비주 (稽首觀音大悲主) 관음보살님의 대비주에 머리 숙여 절하옵니다. 원력홍심상호신 (願力弘深相好身) 넓고 깊은 큰 원력으로 거룩한 상호와 몸을 갖추시고, 자비라는 말은 없지만은 자비원력으로 넓고 깊은 좋은 상호를 갖추시고 여기 상호 신이란 말은 부처님의 32상과 80종 호를 말하는데 부처님 얼굴 보면 원만한 얼굴이잖아요 아주 잘생긴 미남입니다. 부처님을 보고는 잘 생겼다 하지 않고 원만하다 거룩하다 합니다. 부처님의 거룩한 상호 관세음보살의 평온한 자비의 상호는 넓고 깊은 큰 원력 따라서 구축된 것입니다. 마음 따라 얼굴이 달라진다. 라 는 말이 있습니다. 애간장이 타면 살이 빠지면서 얼굴이 까매지잔 아요, 몸에 병도 없는데 얼굴이 까무잡잡해지고 걱정근심에 쌓인 얼굴을 가진 보살님은 100일 기도 몇 번하고 나면 얼굴이 훤해져요. 관세음보살님께 항상 기도 하는 보살님에 집에는 아모래 화장품 장사가 왔다가 울고 간다고요, 마음이 편해지면 살이 오르고 얼굴이 보름달같이 방긋방긋 웃는 얼굴이 되는데 그 위에 무얼 또 포장할 필요가 있겠어요. 관세음보살님의 얼굴은 언제 어디서 누가 보아도 원만한 상호로 보일 겁니다. 천비장엄보호지 (千臂莊嚴普護持) 일천 팔로 장엄하여 중생보호 하여 거두시며 일천천자 팔뚝비자 천개의 팔로 장엄했다는 말은, 몸에 천개의 팔이 달려 있다는 말인고. 보호지란 말은 끝에 지(持)자 는 오래 지속한다. 유지한다는 뜻이니까, 잠깐 동안만 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완전히 어려움이 해결될 때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부 언제까지나 오래도록 보호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천안광명변관조 (千眼光明邊觀照) 일천 눈에 광명을 놓아서 속속들이 비추어 살펴보시고, 천개의 눈이란 무한한 통찰력을 의미합니다. 변관조 할 때 변자는 두루 변자, 관세음보살님께서 천개의 눈으로 광명을 놓아서 우주 법계의 모든 중생들을 두루 낱낱이 빠짐없이 비쳐 보신다. 이렇게 관세음보살님께서 우리들을 무한히 자애로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고 믿어야 천수경을 공부해 나갈 수 있습니다. 정구업진언에서 입을 조심하라고 했는데 눈도 조심해 야해요 무엇을 보던지 부드러운 눈길로 봐야하는데, 그런데요 우리 중생들 중에는 실눈으로 째려보는 눈이 있어요. 그것도 모자라 눈에 쌍심지가 돋쳤다는 말이 있지요 눈에 그냥 독기가 서러있어 독이 있고 도끼가 들어있다. 그래서 눈에 생기를 잃고 하는데 기도 많이 하면요 눈이 정기를 되찾고 살아서 움직이게 되요. 진실어중선밀어 (眞實語中宣密語) 진실한 말씀 그 가운데 비밀 한뜻 설하신다. 참된 진리의 말씀, 참된 말이 아니면 결과를 기대 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진언은 아주 어마 어마한 비밀스런 뜻을 담고 있는데 그 뜻을 베풀어 주신다. 어릴 때요 국민 학교 때 소풍갈 때 아주 기대되는 놀이가 하나있지요 보물찾기 비밀암호를 써넣은 종이쪽지를 미리 나무 밑이나 바위틈 같은 비밀스런 곳에다 감추어놓고는 보물찾기를 하는데 찾아서 종이를 펴보아도 암호를 써나서 무슨 뜻인지 무슨 일이 생길지를 몰라요, 무슨 상을 받게 되지 벌을 받게 될지. 보물찾기 끝나면 모두 모여서 찾은 종이를 하나씩 내어 선생님께 내밀면 선생님의 노트에 적힌 암호풀이하고 대조를 해서 노래를 부르라든지 궁둥이로 이름을 쓰라든지 누구를 업고 한 바퀴 돌아라. 어째라 그리고는 공책한권 연필 두 자루 상으로도 주고 할 때 선생님의 노트처럼 진언 다라니 주문 같은 것은 범부중생의 안목으로는 몰라, 뜻이 통하지를 안 해요, 신묘장구 대다라니 대비신주는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로 뜻이 전달되고 통하기 때문에 다라니 앞뒤에 계수 문이니 발원문이니 참회문이니 해서 관세음보살한테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관세음보살한테 부탁을 하면 보살은 어떻게 하느냐 무위심내기비심 (無爲心內起悲心) 함이 없는 마음 중에 자비심 내어 무위심이라는 것은 그대로 해석하면 함이 없는 마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마음, 그른 마음속에서 자비심을 낸다. 우리는 잠이 들었을 때나 생각이 없지, 깨어있을 때는 무슨 생각이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대 하는 것이 없다 이해가 잘 안가지요, 무위심의 반대가 유위심 입니다. 유위심은 하는 것이 있는 마음, 한 가지 착한 일을 하였다고 합시다, 그 착한 일을 하고 나서 내가 누구에게 무얼 했다 하고 생각하면 유위심 입니다. 내가 이만큼 도와주었으면 지도 양심이 있을 터인데 설마 모른 척이야 하겠나. 이러면 유위심이라, 조그만 선행도 크게 자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아주 큰 좋은 일도 남몰래 하는 사람 있어요, 착한 일을 하고 나서도 선행에 대한 대가나 기대를 바라지 않아야 무위심입니다. 도와준 뒤에 그 사람이 잘되기만 바라지, 은혜나 보답은 같은 것은 전혀 생각 않는 것이 무의심입니다. 관세음보살은 바로 이러한 기대나 보답을 기대하지 않고 중생을 보호하고 무한한 사랑으로만 마음을 일으키기 때문에 무한한 공덕이 되는 대비신주를 베풀어 주고도 주었다는 생각이 없고, 중생을 구제하고도 구제하였다는 생각조차 없는 무조건적인 자비를 베푸는 겁니다. 그래서 속령만족제희구 (速令滿足諸希求) 라, 속히 나로 하여금 원하는바 모든 소원을 만족하게 이뤄주십시오. 하고 마음 놓고 부탁을 드릴수가 있는 겁니다. 무슨 소원을 바라는데 부담이 되어서는 마음 놓고 바랄수가 없잖아요, 하지만요 꼭 이루어져야할 소원도 성취시키려고 하는 의지력이 가미되지 않으면 이룰 수가 없어요. 가만히 앉아서 마음속으로만 내가 이러한 소원이 있는데 부처님이시여 꼭 좀 이루게 해주십시오. 마음으로만 원해서는 이룰 수가 없다. 또 급하다고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서 쓸 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회와 기도의 노력 없이는 이룰 수가 없다. 이말 입니다.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 소구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 많은 소원을 부처님은 관세음보살님은 속히 다 이루어지도록 해주시려고 하지만은. 그냥은 안 돼 조건이 있어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무위심이라 했는데 무슨 조건이 필요하냐.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느냐 영사멸제제죄업 (永使滅除諸罪業) 모든 죄업 영원히 소멸해 지이다. 영원히 나로 하여금 다겁생 례로 쌓아온 모든 죄업을 깨끗하게 씻어지리다. 이게 참회입니다. 참회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릇된 재료로는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없듯이, 섞은 나무를 가지고는 훌륭한 집을 지을 수가 없듯이 살아오면서 쌓아온 죄업을 씻어버리고 깨끗한 그릇을 준비해야 불보살님의 가호지 묘역을 담을 수 있다. 이말 입니다. 탁한 물에는 달이 비치지 않듯이, 내 마음에 죄업으로 더러워져 있으면 부처님의 위신력이 크고 광명이 찬란하더라도 비치지를 안 해, 죄라는 것은 쓰레기와 같은 겁니다. 쓰레기는 애당초 처음부터 있는 게 아닙니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세월이 지나다보니 나도 모르게 생기는 겁니다. 치우지 않으니까 쌓이는 거죠, 무슨 물건이던지 처음에는 깨끗한 새것이지만 쓰다보면 때가 묻고 더러워지듯이, 우리들의 몸도 마음도 처음에는 깨끗했는데 시끄럽고 더러운 세상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자연히 때가 묻고 업이 쌓이기 마련이라, 쓰레기 치우듯이 쓸고 닦아서 업장 소멸을 해야 하는데, 마음에 업장소멸은 참회의 기도로 하는 겁니다. 마음 가운데 죄업을 제거하는 작업은 한번만 하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집안 대청소 했다고 다음날 할 것이 없는 게 아니잖아요. 먼지가 생길마다 해야 하고 틈틈이 하야 하잔 아요. 염불 기도도 하룻밤 꼬박 세우고 했다고 다했다 가 아니다 말입니다. 쉬지 않고 꾸준히 해 나가다 보면 천룡중성동자호 (天龍衆聖同慈護) 천룡들과 성현님들 보호하여주신다. 천룡은 신장 중에 서열로 치면 첫째가 천이고 두 번째가 용 입니다. 말하자면 대장들이다, 이렇게 서열을 매겨서 신장들 중에서 천 용 야차 아수라 가루라 건달바 긴나라 마후라가 요렇게 8신장을 대표로 두목이랄까 대장으로 친다 말입니다. 그래서 팔부신장이라 합니다. 이 뒤에도 104-8= 96신장이 더 있어요. 팔부신장님들은 천신만 제외하고는 전부 험악한 상호를 가지고 있고 그들의 행위도 무지막지한 것이 없지 않지만은, 불법을 옹호할 때만은 자비심이 충만한 선신으로 변하기 때문에 천룡중성동자호 입니다. 동자호 라는 글 뜻이 같은 모습을 한 자비한 모습이란 말이거든요. 시골에 마을 동구 밖에 서 있는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하는 장승도 우리 선조들이 신장을 보고 생각해서 영감과 슬기로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모습은 우랄부락 무섭게 생겼지만 그 무서운 모습 때문에 동네에 잡신이 오지 못하게 하고 동네사람들을 지켜 준다고 보면 사람들한테는 그 모습이 오히려 자상한 모습이라 신장들은 불법을 헤치려는 일에는 아주 무섭게 나타나서 벌을 주고 하는 악신 역할을 하지만은 좋은 일에는 자비한 선신으로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천수경을 읽고 경전을 읽으면 신장들이 내 주위를 감싸서 보호 해 주는 겁니다. 천수경을 꾸준히 독송하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는 몸과 마음이 됩니다. 왜 바로 화엄성중님들 천룡팔부 신장님들이 옹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천수경을 모시는 분들은 호법 신장들이 가호를 합니다. 천수경이 있는 곳에는 호법 신장들의 가호 지묘력이 항상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집에서도 천수경을 독송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허공에는 선신보다 악신이 훨씬 많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를 않아서 그렇지 그 많은 악신 중에는 저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가 죄가 크거나 내가 잘못하거나 나하고 무슨 감정이 있어서 벌을 줄려고 헤치려고 내려오다가 천수경을 독경하면요 악신이 선신으로 변하는 수도 있습니다. 이게 바로 천수경의 공덕입니다. 생남불공에도 천수 생일잔치에도 천수 초상집에서도 천수를 외우는 이유가 바로 호법선신들로 하여금, 악신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고, 선신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 입니다. 기도하는 마음이 있으면 이상스레 일이 잘 풀려갑니다. 마음이 평안하기 때문입니다. 또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이 작용합니다. 호법신장님들과 불보살님의 가피력 때문입니다. 부처님 앞에서 기도 하고 발원할 때, 나에게 일체 마장 장애를 소멸시켜 삼재팔난 사백사병 사백사병은 업병을 사백사병이라 합니다. 이러한 무수한 환난이 나의 주변으로 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하고 부처님께 기원하는 말을 했지만은 실지로 이런 일을 해결해주시는 분은 부처님이 아니라 불법을 옹호하는 신장들이 해결해준다, 이말 입니다. 그래서 절마다 정초에 신중기도하고 매달 초하루에도 신중기도를 하는 겁니다. 어때요 우리가 매달 초하루마다 부처님 전에 천수치고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음정근하고 신중단에 대고 화엄성중, 화엄성중 하고 기도하는 이유를 아시겠지요. 또 천수경을 독송하는 사람은 불변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불변의 진리를 갈무리한 천수경이기에 변덕스럽지 않은 불변의 마음을 양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용주사에 오시는 여러분들은 용주사에 다니신 지가 오래되었고, 용주사, 용주사 하면서 오시잖아요. 멀리 이사를 가도 용주사 비가와도 눈 이와도 오로지 용주사, 초하루마다 용주사 와서 천수경한번 읽고 화엄성중 몇 번 부르고 가야 마음이 안정이 되지, 절에 못가면 왠지 찝찝하고 그렇죠, 우리 용주사 신도님들은 집 가까운 곳에 큰절도 있고 훌륭한 스님이 계신절도 있지만은 그래도 처음 발들인 곳이 용주사라고 계속 용주사만 오시는 것은 바로 마음에 변덕이 없기 때문입니다. 실지로 천수경을 독송하는 사람은 마음이 변덕스럽지 않고 몸과 마음을 잘 갈무리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천마외도(天魔外道)가 해치지 못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허공계에는 천마외도 악신이 많습니다. 허공계에는 항상 여러분들을 노리고 있는 악신들이 많지만, 천수경을 독송하게 되면 그 위신력으로 방패가 쳐져서 천마외도가 침투해 들어올 때 막아내는 힘이 양성됩니다. 허공계에 갖가지 마군(魔軍)이가 가득하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착하고 선한 사람들만 존재하는 세상이 아니거든요. 탁하고 불순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어떻게 되겠어요. 마군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당나라 때 염광선사라는 훌륭한 스님이 계셨는데 이 스님이 도력이 높다는 소문이 나서 스님 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절에 와서 스님들과 같이 공부하는 일이 더러 있었습니다, 염관스님이 어느 날 점심공양을 하고나서 마루에 앉아 쉬고 있는데 그때 나라에서 벼슬하는 젊은 두선비가 마침 이절에 와서 며칠 묵고가기로 하고 와 있었는데 큰 나무 아래에서 애기를 하고 있는데, 하늘에서 찬란한 광명이 무지개같이 비치고 하늘 음악이 들리더니 문수보살이 나타나서 두 선비를 내려다보고 하는 말이, 선재 선재라 참으로 거룩하도다. 부디 그 마음 변치 말고 대도를 깨달아서 미혹한 백성들을 제도할지어다. 하고 사라지는 모습이 다른 사람 눈에는 안보이지만 염관산사의 눈에만 보이는 거라 이상타 저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일까 불러 말을 붙어봐야 갰다 하고 생각하면서 지켜보고 있는데 조금 지나니까 갑자기 시커먼 구름이 일어나면서 마왕파순이가 무리들을 이끌고 내려와서 두 사람을 에워싸고는 이상한 춤을 추면서 나쁜 길로 인도하려는 모습이 보이거든 그래서 얼른 두 사람을 불렀습니다. 그대들이 조금 전 저 나무 아래에서 무슨 애기를 나누었는가. 하고 물으니 우리는 비록 출가는 안했지만 스님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서 큰 깨달음을 얻어서 목민한 백성들이 잘살 수 있도록 해보세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 말 뿐이었는가. 다른 말은 없었는가 하니. 머ant거리면서 하는 말이 그러다가 나중에는 참선공부는 밑도 끝도 없는데 어느 세월에 우리가 도를 얻을 수 있겠으며, 누구는 도는 고사하고 위장병을 얻어 고생만 하더라. 이런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럼 그렇지 그대들이 불법문중에 들어 도를 얻어 백성을 제도하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문수보살님이 그대들을 지켜보았지만 나태심을 내었을 때는 보살은 떠나가고, 생사와 지옥의 길로 인도하는 마왕이 그대들을 유혹하였느니라. 이른 애기가 기록으로 전해지는 것이 있는데 우리가 좋은 생각을 내고 남을 돕겠다는 생각을 내면 선신이 돕고 보호를 하려고 하지만은 악심을 내면 선심이 떠나버려 자연 악신이 침범하게 되어서 나쁜 일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거라, 더러 나뿐일 하고 하는 말이 그때는 내정신이 아니었다, 내가 왜 그른 실수를 저질렀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런 말 하잔 아요. 악하고 탁한 생각을 내면 혼탁한 기운이 둘러싸게 되니까 탁한 기운을 좋아하는 마왕 같은 악신이 침범해서 정신을 흐리게 하니까, 말이고 행동이고 선악을 구분 할 줄을 모르고 악신이 유혹하는 데로 하는 거라 이른 혼탁한 기운을 물리치고, 선한 기운으로 둘러싸이도록 하는 것이 이천수경입니다. 천수경을 외우면 화엄성중이 호법 신장으로 보호를 하기 때문에 악신이 가까이 오지를 못한다. 그래서 천룡중성동자호 (天龍衆聖同慈護) 천룡과 팔부신장님들이시여 한마음 한뜻으로 그러한 마군으로 부터 보호하여 주십시오. 우리가 부처님 전에 불공을 하거나 기도를 하고난 뒤에 신중 전에 옮겨서 공양을 드시라는 염불을 하고 화엄성중 명호를 부르는 이유가 내주위에 우리 가정에 악신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팔부신장님들께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도 여호아 같은 신도 화엄 신중단에 모셔질 그런 신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중국도 그렇지만 불교에서 챙기는 신들을 보면 산신도 있고 칠성도 있고, 용왕도 있는데 애당초 불교에서는 없는 무관한 것들인데 불교를 유포하고 중생들한테 교화하는 과정애서 받아들이진 것 들 이거든요, 그래서 불교는 대단히 표용 적이고 관용적이다 합니다. 그래서 인천에 우리 사형스님은 불교가 대단히 표용 적이고 관용적이라는 것을 강조 하기위해서인지 다른 종교인들한테도 알게 하기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시내 여는 시내 포교당 신중단에 걸 신중탱화를 새로 조성하면서 탱화 속에 예수님을 그려 넣었어요, 그래 탱화를 모셔놓고는 그기에 진언을 한마디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염불을 한마디 해야죠. 예수님만 모셔놓으면 뭐 합니까. 예수진언 : 옴 할렐루야 사바하, 옴 할렐루야 사바하 옴 할렐루야 사바하 실지로 예수는 13년간 스님생활을 했습니다. 도를 얻어가지고 자기나라 중생들 교화하려고 이스라엘에 돌아가서 그 나라에 맞게 정법을 유표한 것이 오늘날의 예수교의 시작입니다. 인도불교와 한국불교가 다르듯이 동양의 불교가 서양에 가서는 그렇게 다르게 변한 겁니다. 민족적 정서적 차이가 달라서 그렇게 달라진 것뿐이지 뿌리를 찾아가보면 같은 종교래요, 서양 사람들이 불효막심한 것이 기독교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어요, 예수가 부처님의 아들이 되면 부처님은 할아버지벌이 되잖아요. 그런대 할아버지를 부정하거든 그 영향을 받아서 한국 사람이면서도 기독교 믿는다는 핑계로 조상 안 챙기잖아요, 효사상은 동양에서는 큼직하리. 만큼 크게 챙기지만, 서양에서는 별로 크게 생각지를 않기 때문에 그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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