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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바닷따(Devadatta)에 대하여

by 혜명(해인)스님 2019. 2. 25.


-데바닷따(Devadatta)에 대하여-
    -데바닷따(Devadatta)에 대하여- 부처님은 진리를 펴는 과정에서 수많은 반대자들과 부딪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처님은 다른 종교 지도자들이 받아보지 못한 심한 비난과 근거 없는 모략과 심지어 잔인한 공격까지도 받아야했다. 주요한 반대자는 상대 종파의 스승들이었고, 부처님이 비판한 전통 교리와 미신의 의식과 제례를 행하던 전통파들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반대자는 부처님을 죽이려다 결국 실패한 사촌형제 데바닷따였다. 데바닷따는 숩파붓다 왕과 부처님의 이모인 빠미따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싯다르타의 부인 아쇼다라는 그의 누이동생이었다. 그래서 부처님과는 사촌이면서 처남인 관계였다. 데바닷따는 일찍이 아난다를 비롯해서 다른 석가부족 왕자들과 함께 부처님의 승가에 들어갔다. 그는 어느 성인의 경지에도 오를 수 없었지만, 세속적인 신통력에는 남다른 소질이 있었다. 그의 후원자 중에 하나가 아자따삿뚜왕이었으며, 왕은 그에게 절을 지어주었다. 처음에는 사리뿟따가 그를 칭찬하러 라자가하에 갈 정도로 모범적이었다. 그런데 나중에는 세속적인 부와 명예에 지배되어서 점점 부처님을 질투하게 되었다. 데바닷따는 성품이 아주 과격하게 변해서 부처님의 가장 큰 적이 되고 말았다. 부처님에 대해 나쁜 마음이 일어나자 동시에 신통력도 자동적으로 사라져버렸다. 삿된 길과 타락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많은 추종자, 숭배자를 거느리고 있었으며,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사리뿟따 존자보다도 그를 더 좋아했다. 한번은 그가 부처님께 가서, 부처님은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자기에게 승가의 통치권을 넘겨달라고 요구했다. 부처님은 단호히 거절하면서 말했다. "사리뿟따나 목갈라나에게도 나는 승가를 물려주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너에게 넘겨줄 것 같은가?" 그는 거절당한데 앙심을 품고서 복수하겠다고 다짐했다. 부처님은 승가의 권위를 보존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데바닷따가 불, 법, 승의 이름을 팔아 한 짓은 모두다 저 혼자 한 짓이고 그에게만 책임이 있을 뿐이라고 선언하셨다. 그래서 그는 부처님을 죽이려고 아자따삿뚜 왕과 공모하였다. 자기는 부처님을 죽여서 승가를 장악하고, 아자따삿뚜는 부왕을 죽여서 왕권을 찬탈하도록 사주했다. 배은망덕한 아자따삿뚜는 자기에게 헌신적이었던 아버지를 죽이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데바닷따는 부처님을 살해하려고 궁수를 샀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궁수들이 모조리 부처님을 따르게 되어 버렸다. 그 시도가 좌절되자 자신이 직접 부처님을 죽이기로 결심하였다. 부처님께서 기자꾸따산 기슭을 걷고 있을 때 산꼭대기로 올라가서 바위를 굴렸다. 다행히 바위는 다른 바위에 부딪쳐서 깨졌고, 그 파편이 부처님의 발에 가벼운 상처를 내어 피가 흘렀다. 의사인 지바카가 부처님을 돌보면서 치료했다. 데바닷따는 또 다른 시도를 했다. 코끼리 날라기리에게 술을 먹여서 난폭하게 만들어서 부처님이 걸어오는 방향으로 내보냈다. 사나운 코끼리가 부처님을 향해서 돌진해 올 때 아난다 존자가 앞에 나서서 자기 목숨을 희생하여 스승을 구하려 하였다. 그러나 부처님은 자비심으로 코끼리를 순종시켰다. 이 마지막 사악한 행동 때문에 데바닷따는 완전히 인심을 잃어버렸다. 대중의 여론이 완전히 돌아 서자, 왕은 그에 대한 후원을 중단해야 했다. 데바닷따가 평판이 나빠지자 그의 모든 추종자가 떠나갔다. 이제 그는 사기를 쳐서 살아남기로 했다. 그 좋은 머리로 평화로워 보이는 또 다른 계획을 짜냈다. 그와 같이 사악한 마음을 가진 꼬깔리까 같은 비구들의 도움을 받아 승가를 분열시킬 생각을 하였다. 그는 부처님에게 비구들이 다음의 다섯 가지 계율을 시행토록 못 박으라고 요구하였다. 1) 승려는 일생 내내 숲 속에 머물러야 한다. 2) 승려는 걸식으로 살아야 한다. 3) 승려는 분소의(쓰레기와 묘지에서 모은 넝마로 만든 승복)를 입어야 한다. 4) 승려는 (지붕 있는 집에 살지 말고) 나무 밑동에 살아야 한다. 5) 승려는 일생 내내 물고기와 육 고기를 먹지 않아야 한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부처님이 여기에 동의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부처님의 거부를 비난의 구실로 삼아서 무지한 대중의 지지를 얻으려고 생각했다. 이 요구에 대해 자비롭고 도량이 넓은 부처님은 제자들이 이 계율을 받아들이던 않든 자유이지만 모두에게 그것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하셨다. 데바닷따는 이 거부를 가지고서 승가의 분열을 야기시켰다. 그는 비구들에게 외쳤다. "형제들이여! 누구 말이 더 거룩한가? 여래의 말인가? 아니면 내 말인가? 누구든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하는 자는 나를 따르라!" 아직 가르침에 익숙하지 않은 풋내기 승려들은 그의 요구가 그럴듯해서 그에게로 넘어갔다. 데바닷따는 그들을 데리고 가야시사로 갔다. 그러나 사리뿟따와 목갈라나 존자가 부처님의 지도를 받고 그곳으로 가서, 그들에게 설법을 해서 그들을 도로 데려 오는데 성공하였다. 그 이후에는 데바닷따에게 안 좋은 나날이었다. 그는 심하게 앓아누웠다. 그가 죽기 전에 진실로 참회하면서 부처님을 뵙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의 악업이 방해해서 부처님을 뵙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어가야만 했다. 그렇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에 부처님에게 귀의했다. 비록 그는 극악한 죄 때문에 비참한 상태에서 고통을 받고 있지만, 처음에는 거룩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먼 훗날에 앗티사라라는 벽지불이 될 것이라고 한다. ― Narada, "The Buddha and his teachings", Buddhist publication society, (Kandy, 1988). pp.90-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