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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과 동행을/💕불교자료실

유마경 19

by 혜명(해인)스님 2019. 2. 28.


-유마경 19-
    부처님은 또 부루나 에게 네가 유마힐에게 가서 병을 위문하여라. 부루나= 설법제일존자 인데 부처님의 교화를 도와서 미혹한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자비심으로 막힘없이 설법을 하였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도 제자 중에 가장 설법을 잘한다고 칭찬했다 합니다. (원문) 부루나는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사람에게 가서 병을 위문 할 수 없나이다. 왜냐하면 제가 옛적에 큰 숲속 어떤 나무 아래에서 새로 도를 배우는 비구들을 위하여 설법을 할 적에 유마힐이 와서 저에게 말하기를, 여보시오. 부루나님, 설법하려거든 먼저 정(定)에 들어서 우선 자기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설법을 들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관찰하여 알고 난 뒤에 설법하는 것이니 더러운 음식을 보배 그릇에 담지 마시요, 더러운 음식을 보배 그릇에 담지 말라 = 보배그릇은 새로 발심한 사람들 나중에 부처가 될 사람들이라서 보배라 했고 소승의 설법을 더러운 음식에 비유를 한 것입니다. (원문) 마땅히 이 비구들의 생각하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니 유리를 가지고 수정과 같다고 하여서는 아니 되오. 당신이 중생의 근본을 알지 못하면서 소승 법으로서 인도하지 마시오. 저들이 본래 탈이 없는데 상처를 내지 마시오. 큰길을 두고 좁은 길을 가리키지 말며 바닷물을 소발자국에 넣으려 하지 말며 햇빛을 반딧불과 같다고 하지 마시요. (설명) 왜 소승 법으로 인도하지 말라하는고 하면 소승 법에 만족해서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공부를 할까봐서 그럽니다. 부처님께서 중생근기에 맞추어서 20년 정도 소승 법을 설하다가 대승 법을 설 한지 얼마 안 된 시기에 유마경을 설하게 되었는데 부처님께서 유마경을 설하는 이유가 바로 소승법의 설법에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유마힐이라는 거사를 앞세워서 설법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른 말이 나오는 겁니다. 지난시간에 승문연각을 설명했는데 공덕을 짓거나 마음을 깨끗이 해서 극락 가는 것은 좋아요 그런데 자기혼자만 가면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 말이지요. 부처님의 주장은 자타일시성불도 나도 너도 우리 다 같이 성불하자. 그래서 널찍한 큰길로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함께 다 같이 가도록 해야지 좁은 길로 한둘 지나가게 하면 안 된다. 소발자국 폭 파인 조그마한 그른 곳에다 바닷물을 담으려고 하느냐 햇빛을 반딧불과 비교하지 말라고 나무라는 말을 하는 겁니다. (원문) 부루나님, 이 비구들은 오래전에 대승 마음을 내었다가 중간에 잠시 잊어버린 것이거늘 어찌하여 소승 법으로 지도 하리까. (설명) 누구든지 불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기를 바라야 하는 것이지마는 세속 일을 계속하다보니 개인적인 욕심이라든가 하는 적은 일에 마음이 끌리어 불성을 발전시키려고 하지 않아서 중간에 잠시 잊어버렸다고 한 겁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빠르고 느린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은 부처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원문) 내가 보니 소승들은 지혜가 미천하여 중생들의 근기가 영리하고 어둔함을 분별하지 못하더군요. 하면서 유마힐이 삼매에 들어서 그 비구들로 하여금 지나간 세상(속명)을 알게 하였으니 그들은 일찍이 오백 부처님처소에서 온갖 공덕의 씨앗을 심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로 회향한 인연을 알게 하니 비구들은 즉시에 본래 마음을 환히 깨닫고 본심으로 돌아와서 유마힐의 발에 경례하니 유마힐이 그들에게 법문을 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다시 물러나지 않게 하였나이다. 제가 그때에 성문들은 중생의 근기를 관찰하지 못하고는 법문을 말하지 않아야 할 줄을 알았기에 그이에게 가서 병을 위문 할 수 없나이다. (이야기) 법화경 신해품에 비유설화가 있는데 그기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어떤 장자께서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어릴 때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습니다. 일부러 집을 나간 것이 아니고 유괴당한 것도 아니고, 어린애니까 집밖으로 놀로 나갔다가 그만 길을 잃고 집을 못 찾아오는 겁니다. 그래서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겨우 목숨을 지탱하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장자는 잃은 아들을 찾으려고 무진 애를 섰지마는 결국 못 찾고 차차 늙어갈수록 더욱 아들 생각이 간절합니다. 아 내가 재산을 모은 것은 내가 죽고 난 뒤에라도 아들 잘 살게 하려고 모은 것인데 이 재산을 누구에게 물러주나? 이러면서 밤낮 걱정 속에 삽니다. 이 이야기는 장자는 부처님으로 아들은 우리범부중생으로 비유하는 겁니다. 부처님께서 우리 중생들로 하여금 다함께 번뇌를 제하고 바른 깨달음을 얻게 하려고 애쓰심에 비유를 하는 겁니다. 부처님께서야 정각을 이루었으니 아무런 번뇌도 괴로움도 없으시지마는 범부중생을 위해서 근심하시고 우리가 부처님 같은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즐거움으로 삼으신다. 이겁니다. 그 장자는 아들을 찾기 위해 본국을 떠나서 다른 나라까지 가서 아들을 찾게 됩니다. 이 장자는 원체 부자이니까 다른 나라에 가서도 아주 좋은 집을 한 채 싸놓고 호화롭게 살면서 그 나라 대신들과 사귀면서 아들을 찾고 있었어요. 그런지만 아들은 떠돌이 생활을 하다 보니 점점 마음이 비열해져서 공부를 한다거나 인간답게 잘 살아보려고 하는 그런 생각은 내지를 못합니다. 거저 오늘은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하고 한 끼 끼니를 때울까 내일은 어디가면 일거리가 있을까 그저 밥 굶지 않으려고 하는 생각뿐입니다. 이아들이 오늘날 아버지가 사는 집 앞에 오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사는 집인지도 모른 채 집안을 기웃거리면서 이집에서 내가 일할 만한 일거리가 없을까 하고 안으로 들어가 볼까 하면서 집을 기웃 꺼리면서 살펴보니 보통집이 아니거든, 이집에 사는 사람은 큰 세력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나 같은 처지로는 이집에서 일할만 것이 없겠다. 차리리. 가난한 동네에 가서 일감을 구해보는 것이 낳지 이런 생각을 하고는 돌아서려고 합니다. 이것도 우리범부들의 모습입니다. 장자가 그 아들을 찾기 위해 본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 간 것과 같이 부처님께서는 일부러 우리들 범부중생들의 세계에 들어오셔서 우리들과 함께 살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마음을 쓰시는데 우리는 이른 줄도 모르고 있는 것과 같이 아들이 아버지의 집인 줄도 모르고 다만 그 호화로운 만 보고 놀라서 “이런 곳에서는 일자리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어물거리고 있다가는 무슨 안 좋은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그 자리를 떠나려고 합니다. 우리도 이와 마찬가지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도저히 가까이 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는 범부의생활에 깃들어서 항상 요정 도에 만족 하고 마는 것이 부처님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어리석은 짓으로 보이는 것이지요. 이때 장자는 문 앞에서 서성이든 젊은이가 아들인줄을 알았습니다. 아들을 찾게 된 장자는 하인에게 명해서 그를 집안으로 들어오도록 했으나 들어오려고 하질 않습니다. 그래서 장자는 급히 서둘러서는 안 되겠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우선 그냥 돌아가게 하고는 다른 하인을 뒤따라가도록 해서 그 집 주인은 인심이 후해서 누구라도 찾아오면 알맞은 일감을 주고 품삯도 후하게 주니 우리 함께 가서 일자리를 부탁 해 보자 이렇게 달래서 장자의 집으로 와사 일하게 됩니다. 장자는 일부러 초라한 옷으로 바꾸어 입고 궁한 아들을 찾아가서 좋은 말로 격려를 합니다. 불쌍한 사람아 너는 심성이 착하게 생겼고, 일도 열심히 잘 하면서 어찌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고생을 하느냐 이제 다른 곳에 가지 말고 여기서 일해라 내가 너를 도와주겠다. 이렇게 안심을 시키고는 매일 좋은 말을 건넵니다. 부처님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중생들이 몹시 불쌍하게 보일 것입니다. 부처님과 똑같은 불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번뇌에 이끌려서 천박한 생활을 하고 있는 모양을 부처님은 보시기에는 몹시 불쌍하게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방편 설을 하신 것이지요. 이아들은 장자의 집에 고용되어서 처음에는 천한 일을 했지마는 차츰 집안형편도 알게 되고 해서 점점 장자의 거처 가까이 까지 일을 하게 되고 글 공부도하고 해서 나중에는 금전 출납까지도 맡아보게 됩니다, 그래서 오래지 않아서 장자는 전에 어디서 살았고 아들이 집을 나가 못 찾아왔다 이런 것 까지 알게 됩니다. 이렇게 세월이 어느 정도 흐른 후에 장자는 본집으로 아들을 동행하여 돌아와서는 친척들을 모이 놓고 두 사람이 부자 사이임을 밝히는 중대 발표를 합니다. 아들을 찾아왔다 이 아이는 실제 나의 아들이다. 이제 나의 모든 재산과 집안 살림을 이 아이에게 맡기노라, 부처님께서는 일생하신 설법은 듣는 사람의 근기에 따라 혹은 일상생활에 맞게 설하시고 혹은 높은 이치를 설하셨는데 그 목적이 범중 생들로 하여금 다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기위한 방편 이였습니다. 이것은 바로 장자가 아들을 훈련해서 차차 집안 형편에 익숙하도록 하여 마침내 부자임을 밝히고 모든 재산을 물러준 것과 같습니다. 범부 중생들이 생각하기를 우리의 처지와 부처님의 경지는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우리가 부처님 같이 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라고 지례 겁을 먹고 노력을 포기하고 마는 경우가 많지마는 절대로 스스로 포기하거나 가벼이 여길 것이 아니라 꾸준히 노력하면 한걸음씩 나아가더라도 마침내는 부처의 경지에 도달 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장자의 아들이 아버지 장자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 곤궁한 생활을 계속해서 초라한 일생을 마쳤을 것입니다. 우리도 불성을 갖추고 있다고는 하지마는 불법을 배울만한 인연이 없으면 영원히 범부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없어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온 것에 대해 깊이 감사하면서 부지런히 공부해야 되요. 그런 마음이 있으면 유마일이 말하는 이 대승의 가르침을 세상에 펴서 나와 남이 다 같이 빨리 범부의 처지에서 벗어나서 부처님 같은 경지에 이르도록 힘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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