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경 22-
부처님은 또 [라후라]에게 이르셨다. 네가 유마힐에게 가서 병을 위문하여라.
라후라는 부처님께서 태자로 계실 때에 태어난 아들입니다.
부처님은 어머니를 일찍 여이고(7일 만에) 서모(교담비 왕비)밑에서 자랐어요.
그래서 인지 어릴 때부터 고독을 즐겼다 네요. 청년이 되어서도 조용히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명상을 즐겨 하신 것이지요.
그런데 아버지 정반왕은 그런 아들이 안쓰러워 던지 장가를 일찍 보내셨어요,
그래서 부인이 아들을 낳았다고 하니까 부처님께서는 기뻐하기는커녕 라후라가 태어낫구나 했답니다.
그래서 이름이 라후라가 되었다 네요.
라후라라는 말이 부처님 당시에 인도말로 장애라는 뜻이라네요.
부처님은 진작부처 출가할 색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들이 생기니까 아이고 방해물이 하나 생겼구나.
이렇게 생각이 드신 것이지요. 그래서 29세 때 부인도 아들도 남겨두고 출가를 했는데 (음력 2월 8일)
나중에 아들도 출가를 하고 서모도 출가를 하고 부인(아수다라) 도 출가를 해서 부처님 제자가 되기도 합니다.
라후라가 출가 하겠다고 하니 부처님께서는 다른 제자들과 차별을 두지 않고 같은 사문으로 대할 것인데
그래도 하겠느냐 그래도 하겠다고 해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라후라가 출가하기 전까지는 모든 출가자들은 하루에 한 끼만 먹었다고 합니다.
아침에 탁발을 나가서 얻은 음식을 사시에 (11시) 한번 만 먹고는 다음날 사시가 될 때까지는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라후라가 어린나이에 출가해서인지 자고 나서는 아침에 운단 말입니다.
그래서 왜 우는가? 살펴보니 배가고파서 우는 거라
그래서 얻은 온 음식을 조금 남겨서 죽을 쑤어서 아침에 먹도록 했습니다.
이게 절집에서 아침에 죽 먹는 습관으로 전래가 되어서 우리나라에도 이어져 왔어요,
지금도 남방불교에서는 아침에 죽 먹는 곳이 있고 우리나라는 요즘은 이른 풍습도 거의 다 없어졌지만
지금도 송광사만은 옛날처럼 아침에 죽을 먹습니다.
라후라는 공부를 하는데 어떻게 하느냐 다른 사람이 잘 모르도록 했어요,
왜 그러느냐 하면 부처님 아들이니까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이 좀 다르게 볼 수 있잖겠어요,
유달리 관심 있게 살펴보게 되거나,
특별히 잘 봐 주려고 한다든지,
그래서 라후라는 스스로 다른 사람 눈에 잘 뜨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를 자랑하고 싶어 하고 해서
다른 사람보다 돋보이려고 하고 대접을 받고 싶어 하는 그른 심리가 있잖아요.
또 높은데 아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 사람 이름을 들먹이면서
내가 누구와 어떻게 되는 사이다하고 또 자기보다 나은 사람한데 기대려고 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부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이라고 다르게 봐주려고 하는 것이 없이 똑같이 대했습니다.
그래서 라후라는 공부가 성숙한 뒤에도 행동에 특별히 조심을 해서
다른 이 눈에 잘 뜨이지 않도록 해서 밀행 제일이라는 칭호가 붙었습니다.
밀행이라는 말은 선행을 쌓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는 지혜도 밝고 덕도 높지마는 그것을 일체 겉으로 나타내지 않고 마치 범부처럼 꾸미고
세상 사람들과 섞여서 그들을 선을 권하고 인도해서 함께 도에 들어가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원문) 라후라는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사람에게 가서 병을 위문 할 수 없나이다.
그 까닭은 옛적에 비야리성에 있는 여러 장자의 아들들이 저에게 와서 예배하고 말하기를,
여보시오, 라후라님, 당신은 부처님의 아들로서 전륜왕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닦고 있으니
출가하는 것이 무슨 이익이 있나이까?
부처님의 아들로서 전륜왕의 지위를 버렸다는 것은 부처님은 태자로 있었는데 출가를 했으니
라후라가 부처님 뒤를 이어 정반왕의 자리를 이어 왕이 될 것이라서 한말입니다.
전륜왕이라 말은 옛날 인도 사람들은 아주 훌륭한 이상적인 왕이 나타날 것을 영원했는데
그 이름이 전륜왕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아들이니까 훌륭한 왕이 될 수도 있었다. 이말 이지요,
그런데 왕의 자리를 버리고 출가를 한 것은 일반사람들이 볼 때는 이해가 안 간다 말입니다.
출가는 부귀와 영화를 다 버려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출가해서 도 닦는 것이 무슨 이익이 있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원문) 그렇게 묻기에 제가 법과 같이 출가한 공덕을 말하였다.
출가하여 도를 배워서 그 마음에 모든 번뇌가 깨끗이 없어지면 마음은 항상 평화롭고 사람들을 감화시켜서
그 미혹을 없애 줄 수도 있으므로 그 공덕이 매우 크다 그러나 이것은 남에게 말로 자랑할 것은 아니다.
그래서 법과같이 법이다 말하였더니
그때에 유마힐이 와서 나에게 여보시요,
라후라님. 출가한 공덕의 이익 되는 것을 그렇게 말하지 마시요
왜냐하면 이익 된다, 공덕 된다 할 것 없는 것이 출가입니다.
그렇지요 아무리 높은 덕을 갖추고 아무리 큰 도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을 세상 사람들과 차별되게 생각해서
자랑스럽게 생각해서는 출가한 보람이 없다 이말 이지요.
그래서 원문에 이 세상의 법은 이익이 있다,
공덕이 있다고 말할 수 있거니와 이 세속을 벗어나는 법은 이익이 있다,
공덕이 있다고 할 수 없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세상 법을 그렇습니다.
빈부귀천의 구별이 있고 대소 강약의 차이기 있어서 우승자를 칭찬하고
패한 자는 배척해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노력 하도록 권장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공덕의 대소라든가
이익이 크고 적음을 논하지마는 출가자는 부처님의 마음과 일치하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고 모든 차별에서
초월해야하기 때문에 공덕이 있고 없고 는 따질 필요가 없다 이말 입니다.
(원문)라후라여, 출가하는 것은 저것도 없고 이것도 없으며 또한 중간도 없으며
깨달음의 경지는 모든 중생들을 평등한 마음으로 보고 대하기 때문에
이것저것 차별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육십이견을 여의고 열반에 머물러 있으니
(해설)육십이견을 여의고 열반에 머물러 있으니 라고 했는데
62견 = 중견(中正)을 잃은 견해를 말하는데
(사람이 중심이 바로 서야지 줏대가 없으면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게 되고 변덕을 부리게 됩니다.
이렇게 중정을 잃은 견해를 크게 62가지로 나누어 보는 것인데 근본이 되는 것에 두 가지요
세밀해서 60가지이니 합쳐서 62 가지라함) 두 가지는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입니다.
단견 이라는 것은 모든 사물이 다 끊임없이 변화하여 하나도 항상 그대로 있는 것이 없다고 보는 견해.
이 견해는 현상계에서는 진실 같지마는 그 변화하는 가운데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진리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아이고 죽고 나면 섞어 문드러질 몸뚱이 아무렇게나 하면 어때 그러면서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있어요. 몸이 늙으면 죽는다는 것은 알면서 지은 죄가 없어지지 않는 다는 것은 모르는 것,
그래서 너 그른 짓하면 지옥 간다. 하니까
아무도 모르게 했는데 뭐! 내가 죽고 난 뒤에야 지옥이 있든지 말든지 내 알게 뭐냐.
선업이 되었든 악업이 되었던 한번 지어 놓은 업은 과보로 돌려받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는 다는 것을 모르는 기라.
업은 누가 알고 모르고 관계없이 내 마음 영혼을 따라다닙니다.
상견 = 이렇게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계를 어느 것이나 다 항상 그대로 있는 것처럼 생각해서 집착하는 것
예를 자기가 죽는 다는 것은 생각 안 해 백 살 천살 살줄알고 재물을 모아가지고는
쓸 줄 모르고 평생 쥐고 있는 사람 있잖아요.
어떤 사람이 장사를 하면서 벌은 돈에서 얼마씩 떼어서 감추는데
부뚜막에 항아리를 묻어놓고 그 속에 돈을 숨겼습니다.
그런데 병이 들어 죽게 되었는데도 자식들한테 애기 안했어요.
그가 죽고 난 뒤에 자식들은 그른 줄도 모르고 그 집을 팔고 이사를 갔습니다.
새로 이사 온 사람이 집수리를 하는데 그 돈이 나왔거든,
그 사람이 양심적이 사람이라 집 팔고 이사 간사람 찾는다고 방송에 나왔고 했잖아요.
이런 일이 부처님 당시에도 있었든가 부처님께서 하신 법문 중에
육방예경이 있는데 그기에 이른 법문이 있어요.
부모는 적당한 시기가 되면 재산을 자식에게 물러주라는 대목이 있어요.
범부중생은 단견과 상견 둘 다 가지고 있는 것을 아시고 하신 법문입니다.
60견 = 색수상행식 오온이 있는데
이것 하나하나 마다 좋다, 나쁘다 가진다, 버린다, 하는 4가지 견해를 일으킵니다.
그래서 20 견이 되고, 이것이 안이 비설신의로 분별 심을 일으켜서 여기에 상과 무상 여겁 불 여겁
유번 무변 하는 복잡한 말이 붙어요, 이렇게 해서 일으키는 견해가 60가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속으로 온갖 생각을 일으키는 것을 말하는데.
배대하는 계산법이 복잡하니까 생략 하고 넘어갑니다.
108번뇌도 안의비설신의에 생성 향 미 촉 법을 배대하고
이것을 다시 과거현제미래로 곱하면 108이 됩니다.
(원문) 지혜 있는 분의 수용하는 것이고 성인의 나갈 곳이며 모든 마군을 항복받고 오도 중생을 제도하고
(오도 = 지옥 아귀 축생 수라 그리고 인도를 말함)
다섯 가지 눈을 깨끗이 하며 (금강경에 오안 나오지요. 육안 천안 혜안 법안 불안)
다섯 가지 힘을 얻고 (信力 근력-노력, 念력 定력 慧력)
다섯 가지 근기를 세우며 (五根 : 眼耳鼻舌身)
(원문)다른 이를 시끄럽게 하지 않고 온갖 나쁜 짓을 여의었으며 외도를 굴복시키고
헛된 이름에서 초월하여 진흙 창에서 벗어 나와서, 온갖 결박됨이 없으며,
(해설)이 말은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내세우기를 좋아해서 자기이름을 아무 곳에나 들어내는데
이런 짓은 다 실속 없는 헛된 짓이다. 이것을 가지가지욕망에 비유를 해서 진흙창이라 했습니다.
이러한 것에서 뛰어넘는 것을 결박이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원문에)
내 것 이랄 것이 없고 받아들일 것도 없으며 마음에 시끄러운 것이 없어서 안으로 기쁨을 품으며
남의 뜻을 잘 보호하고 선정을 따라 모든 허물을 여의는 것이니
능히 이렇게 하면 이것이 참말 출가하는 것이외다.
라 하고 또 유마힐이 여러 장자의 아들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은 정법 가운데 함께 출가할 것이니
왜냐하면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할 때를 만나기가 어려운 때문이니라.
(이 말을 할 때는 부처님께서 생존해 계실 때라서 요런 말을 한 겁니다. 지금은 부처님은 안계시지만
다행이 불법이 전해오고 있으니 우리는 그래도 복 받은 중생입니다)
(원문)장자의 아들들이 말하기를, 부처님 말씀에
부모가 허락하지 않으면 출가 할 수 없다 하지 않았습니까?
유마힐이 대답하되 그렇다. 너희들이 만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되면
그것이 곧 출가하는 것이며 그것이 곧 구족계를 받는 것이니라. 고 하더이다.
(해설) 스님들처럼 머리 깎고 절에서 사는 것은 형식출가이고, 신도님들처럼 보리심을 발해서
불법을 마음 가운데 간직하고 계를 잘 지키면 구족계를 받은 거와 같다는 뜻입니다.
출가라는 것을 형식으로 하는 출가하는 거와 이처럼 법으로 출가하는 것이 있는데
보리심을 발하는 것을 법 출가라 합니다.
보통 불가에서 출가라 하면 집을 떠나 절에 들어가서 머리를 깎고 계를 받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에 반드시 행해야 하는 의식이 수계의식 입니다. 그러니까 수계를 해야 정식 출가이지
수계를 하지 않았을 때는 출가자라고 하지 않습니다.
수계는 반드시 스님들만 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재가자도 합니다. 즉 집에서 살림 사는 신도 청신사 청신녀는
누구나 수계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계를 하는데 그 종류가 다릅니다.
스님들은 정식으로 스님이 되는 계를 구족계라 합니다. 구족계를 받아야만
그때부터 정식으로 스님으로 취급을 해서 비구승이라 하고 법납(절집나이)을 먹기 시작합니다.
신도들은 보살계 받는 것이 구족계에 해당됩니다. 보살계를 받아야 그때부터 정식으로 불자가 됩니다.
몸 출가 마음 출가라는 말이 있어요
몸 출가라는 말은 스님은 반드시 계를 주는 스승에게서 계를 받습니다.
계를 주는 스승을 화상과 아사리라 하는데 이분들은 계목과 그 내용을 환희 알고계시고
그 계목대로 수행을 하시는 덕 높은 스님들 이십니다.
하지만 신도들은 계를 주는 스승이 없이도 계를 받을 수 있다 했어요. 마음출가입니다,
법망경 대승경에 만약 천리안에 수계해줄 스승이 없으면 부처님이나 보살상 앞에서 스스로 맹세하여
수계 할 수 있다 했습니다. 이것을 호상계라 합니다.
호상이란 말은 아무데서나 아무렇게 생긴 것에 대고
그냥 마음속으로 지금부터 내가 착하게 살겠습니다. 하는 것이 아니고,
거룩하게 잘 조성된 불상이나 불화 앞에서 부처님 앞에서 부처님에게 약속하듯이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 법대로 살겠다고 맹세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그렇잖아요. 부처님께서는 돌아가시고 안계시지만 그렇지만 불상만 보고도 내 마음으로
내 앞에 부처님이 계시다고 생각하고 공손히 예배를 하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집에서 기도 하는 것 하고 절에 와서 법당에서 기도하는 것하고 다르다고 하는 말이 이말 입니다.
아무리 많이 배우고 많이 알고 있다 하더라도 마음이 범부 그대로 있어서는 진정 불법에 귀의했다고
할 수 없고 아무른 보람도 없을 것입니다.
(원문)그렇게 말할 적에 장자의 아들 서른 두 명이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였으므로
저는 그에게 가서 병을 위문 할 수 없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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