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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과 동행을/💕대각교단세불법륜

2차 사경 회향게-六十二卷 廻向偈 (육십이권 회향게)

by 혜명(해인)스님 2020. 6. 16.

2차 사경 회향게-六十二卷 廻向偈 (육십이권 회향게)

善哉善哉問善財 (선재선재문선재)
滅衆生苦菩薩行 (멸중생고보살행)
爲諸世間菩薩行 (위제세간보살행)
不厭生死普賢道 (불염생사보현도)
※ 착하도다! 멋지도다! 법을 묻는 선재동자여!
※ 보살의 행이란 중생의 고뇌를 멸하는 것이며,
※ 보살의 행이란 모든 세상을 위하여 사는 것이고,
※ 삶과 죽음을 싫어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 것이 보현보살의 도이니라.

☆丙申年 陰 十二月 二十五日

☆發願文 (발원문)
得善說一切諸法門(득선설일체제법문)
一切衆生悉到彼岸(일체중생실도피안)
※ 설하신 일체의 모든 법문을 잘 얻어서
※ 일체 모든 중생이 피안의 세계에 이르기를 위하여 발원한다.

☆장수 39장

----- 정유 1월 21일

六十三卷 廻向偈(육십삼권 회향게)
不斷佛種菩提心 (부단불종보리심)
了達法性菩提心 (요달법성보리심)
圓滿諸行菩提心 (원만제행보리심)
一切平等菩提心 (일체평등보리심)
※ 보리심이란 부처의 종자를 끊어버리지 않는 것이며
※ 보리심이란 법의 성품을 요달하는 것이고
※ 보리심이란 모든 행동을 원만하게 하는 것이라
※ 일체 모든 것에 평등하게 하는 것이 보리심이니라.

【菩提心(보리심)】
불도의 깨달음을 얻고 그 깨달음으로써 널리 중생을 교화하려는 마음으로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려는(上求菩提 下化衆生) 마음.

이 마음의 내용은 “한없는 중생 다 제도하리라, 끝없는 번뇌 다 끊으리라,
한량없는 법문 다 배우리라, 위없는 불도 모두 다 증득하리라(衆生無邊誓願度, 煩惱無盡誓願斷, 法門無量誓願學, 佛道無上誓願成)”는 네 가지 큰 서원(四弘誓願)을 세우고 그것을 성취하려는 마음이다.

보살은 광대한 자리이타의 서원을 세우고 오랜 세월 동안 육바라밀을 닦아 보리심을 길러야만 마침내 성불할 수 있다.

【法性(법성)】
항상 변하지 않는 법다운 성(性).
모든 법의 체성(體性),
곧 만유의 본체,
진여(眞如)·실상(實相)·법계(法界) 등 이라고도 한다.

☆ 丙申年 陰 十二月 二十八日

發願文 (발원문)
得百福身相 (득백복신상)
常諸佛供養 (상제불공양)
※ 백복의 몸과 상호를 얻어서
※항상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기를 발원한다.

☆장수 41장

----- 정유 1월 24일

六十四卷 廻向偈(육십사권 회향게)
依善知識免三途 (의선지식면삼도)
敎善知識見諸佛 (교선지식견제불)
語善知識開覺路 (어선지식개각로)
人天眼目善知識 (인천안목선지식)
※ 선지식을 의지하면 삼악도를 면하고
※ 선지식의 가르침을 받으면 모든 부처를 볼 수가 있고
※ 선지식의 말씀은 깨달음의 길을 열어주니
※ 사람과 하늘의 눈동자가 선지식이다

【善知識(선지식)】
산스크리트 칼리아니미트라(kalyamitra)에서 유래한다.
불법의 이치를 알고 행하는 사람으로, 다른 이에게 널리 가르쳐서 고(苦)의 세계를 해탈하고 이상의 세계로 가게 하는 지도자를 말한다.

지식(知識), 성우(善友), 친우(親友), 선친우(善親友), 승우(勝友)라고 번역하가도 한다.
《대반열반경》<고위덕왕보살품>에 따르면 중생에게 나쁜 업을 버리고 선한 업을 쌓게 하는 이를 가리키며, 진실한 선지식은 부처와 보살이다.

선지식에 관하여서는 《화엄경》의 선재동자(善財童子)를 빼놓을 수가 없다.
《화엄경》에서는 '사람들을 인도하여 일체지(一切知)로 가게 하는 문이며 수레이며 배이며 횃불이며 길이며 다리다'라고 하였다.

선재동자(善財童子)는 문수보살을 선지식으로 삼고 53선지식을 만나, 결국 자신도 보살이 되었다. 선재동자가 여러 선지식을 만나는 이유는 선지식이 어떤 일을 판단하거나 실천하는 데 본보기가 되고, 수행자의 모범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53은 인간이 성불하는 단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又>
중아함경에 이르길,
부처님이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생문(生聞)바라문이 찾아와 악지식과 선지식에 대해 물었다.

“부처님!”
어떤 사람을 악지식이라 하는지요.
악지식은 마치 그믐으로 향하는 달과 같은 사람이다. 그믐으로 향하는 달은 날로 모양이 점점 어그러지고 광명도 점점 약해진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모양이 아주 없어져 볼 수도 없고 빛도 없어진다.

악지식도 또한 그와 같아서 처음에는 여래의 바른 가르침을 받아 그 법을 믿지만 점점 따르지 않고 공경하지 않으며 소행은 순하지 않으며 바른 지혜를 세우지 않는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문득 믿음을 잃고 계와 믿음과 서원과 지혜도 또한 잃어버린다. 마지막에는 마치 달이 모양을 잃듯이 모든 것을 잃고 만다.

“이것이 악지식이 가는 길이다!”

“그러면 어떤 사람을 선지식이라 하는지요!”
선지식은 마치 보름으로 향하는 달과 같은 사람이다.
보름으로 향하는 달은 처음 생길 때 산뜻하고 밝고 깨끗하며 날로 그 모양을 키워간다.

그리하여 보름이 되면 그 모습이 둥글고 풍만해지며 밝은 빛을 발한다.
선지식도 또한 그와 같아서 처음에 여래의 바른 가르침을 받은 이후 바른 믿음을 견고하게 하여 소행은 순종하며 바른 지혜를 세운다.

믿음을 더욱 증장시키며 계와 서원과 지혜 또한 늘려나가며 마지막에는 선법을 구족하기가 보름달과 같다.
“이것이 선지식이 가는 길이다!”
“악지식을 가까이하는 것과 선지식을 가까이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요!”
악지식을 가까이 하면 마치 허공의 달이 간탐의 그늘에 가려 세간의 모든 별들이 광명을 잃는 것처럼 될 것이다.
그러나 선지식을 가까이 하면 간탐의 그늘이 사라져 허공의 모든 별이 빛나듯이 지혜의 광명이 빛나게 될 것이다.
중아함 36권 148경 〈하고경(何苦經)〉

☆ 丁酉年 陰 一月 一日

☆發願文 (발원문)
得具足大人身 (득구족대인신)
持福德端莊嚴 (지복덕단장엄)
※ 점잔하고 의젓하며 엄숙하고 대인의 몸을 얻고
※ 복과 덕으로 장엄하고 단정함을 지니기를 발원한다.

☆장수 38장

----- 정유 1월 27일

六十五卷 廻向偈(육십오권 회향게)
般若諸法陀羅尼 (반야제법다라니)
三世諸業陀羅尼 (삼세제업다라니)
直入心體陀羅尼 (직입심체다라니)
華嚴妙海陀羅尼 (화엄묘해다라니)
※ 반야의 모든 법이 대다라니이요
※ 삼세의 모든 업이 대다라니이며
※ 마음의 본체에 바로 들어감도(즉신성불) 대다라니이라
※ 화엄의 오묘한 바다도 대다라니이다.

【五種般若(오종반야)】
법계(法界)를 비추어 보고 진리에 도달하는 5종의 반야(般若).

1. 실상반야(實相般若)
2. 관조반야(觀照般若)
3. 문자반야(文字般若)
4. 경계반야(境界般若)
5. 권속반야(眷屬般若)

【陀羅尼(다라니)】
총지(摠持)·능지(能持)·능차(能遮)’라고도 한다.

두 가지 뜻으로 풀이되는데,

첫째는
지혜 또는 삼매(三昧)를 뜻한다.
우주의 실상(實相)에 계합하여 수많은 법문(法門)을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하나의 다라니를 기억함으로써 다른 모든 것을 연상하여 잊지 않게 하며, 선법(善法)을 가지게 되고 악법을 잘 막을 수 있게 된다.

보살이 타인을 교화하려면 반드시 다라니를 얻어야 하며, 다라니를 얻으면 무량한 불법(佛法)을 잊지 않고 자유자재로 설교할 수 있다고 한다.

둘째는
진언(眞言)을 뜻한다. 범어를 번역하지 않고 음 그대로를 적어서 외우는 것으로, 번역하지 않는 이유는 원문 전체의 뜻이 한정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것과, 밀어(密語)라고 하여 다른 사람에게 비밀로 하려는 뜻이 있다. 밀교에서는 주다라니(呪陀羅尼)라 하여, 재난을 없애는 힘이 있다고 보고 있다.

원시불교에서는 세속의 주술이나 밀법(密法)을 행하는 것을 엄금하였으나, 실제로는 원시불교 경전에서 이미 호신주(護身呪)가 쓰였고, 대승불교 초기에 부분적으로 다라니가 채택되어 차차 증대되어갔다.

4세기경부터는 주법(呪法)만을 역설하는 독립적인 경전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뒤에 이 다라니를 중심으로 하여 대일여래(大日如來)의 설법이라고 자칭하는 밀교가 나타나게 되었다.

내용은 본존(本尊)의 범어이름[梵號], 본존의 덕을 찬탄하는 구절, 교리를 설명하는 것, 자의미상(字義未詳)의 구절을 열거한 것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범문(梵文)의 짧은 구절을 진언 또는 주(呪)라 하고, 긴 구절로 된 것을 다라니 또는 대주(大呪)라고 하여, 악을 없애고 복을 빌 때나 죽은 이의 명복을 빌 때, 불보살을 공양하거나 참회할 때 등의 일반의식에 대부분 사용되고 있다.

【삼세(삼세)】
과거·현재·미래, 전세(前世)·현세(現世)·내세(來世)를 말한다.
또한 이(已)·금(今)·당(當)이라고도 하며, 전제(前際)·중제(中際)·후제(後際)의 3제로도 표현하기도 한다.

삼세에 관한 논의는 일종의 시간론(時間論)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사상(思想)에서는 상당히 복잡하게 변천하고 있다.

① 원시불교시대에는 우리의 삶을 무명(無明)·행(行)·식(識)·명색(名色)·육입(六入)·촉(觸)·수(受)·애(愛)·취(取)·유(有)·생(生)·노사(老死)로 분석하여 십이연기설(十二緣起說)을 확립하여 넓게는 자연계의 인과관계,

즉 시간적인 선후의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였으나, 그것은 논리적 또는 윤리적·종교적 가치를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 후 부파불교(部派佛敎:소승불교)시대에는 이를 삼세에 배당하는 태생학적(胎生學的)인 설명이 성행하였다.

②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서는 주체·객체의 모든 현상을 면밀히 분석하여 많은 법(法:dharma)을 말하였는데, 그 법체(法體)는 삼세를 통하여 실유(實有)라고 하였다[三世實有 法體恒有].

이것은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법의 해석이 실재론적(實在論的) 경향을 갖고 있음을 말한다.

③ 이러한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학설(學說)에 비해 같은 부파불교의 하나이면서 수정적이던 경량부(經量部)에서는 현재법만의 실재성을 인정하고 과거법은 이미 있었던 것, 미래법은 아직 있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무(無)라고 하였다[現在有體 過未無體].

④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를 소승이라고 하여 비판하였던 대승불교 최대의 논사(論師)인 용수(龍樹)는 연기(緣起)를 상대성, 상호의존성으로 해석하여 무자성(無自性)·공(空) 사상을 확립하였다.

이것은 일체의 실재론적 사상을 부정하는 것이다.

⑤ 대승 후기의 유식학파(唯識學派)에서는 삼세를 인정하지만 그것은 이론상 요청된 것이며 실은 마음의 표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⑥ 대승불교의 철학적 발전이 최고점에 달하였던 화엄종(華嚴宗)에서는 삼세의 하나하나를 다시 삼세로 나누어 9세를 상정하고, 그 9세를 초월한 10세는 서로 상즉(相卽)하며 일념(一念)에 내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九世十世互相卽].

【業(업)】
범어 karman의 번역. 갈마(羯磨)라 음역(音譯)한다.
조작(造作)의 뜻. 행위(行爲)ㆍ소작(所作)ㆍ의지(意志)에 의한 신심(身心)의 활동. 의지(意志)에 의한 신심(身心)의 생활을 의미한다.

①일반으로 업(業)을 신(身)ㆍ어(語)ㆍ의(意)의 삼업(三業)으로 나눈다.

유부(有部)의 해석에 따르면, 이러 이러한 것을 하려고 하는 뜻이 의업(意業)이고, 그 의지를 신체적 행동과 언어적 표현으로 나타낸 것이 신업(身業)과 어업(語業, 구업(口業)이라고도 한다)이라고 한다.

또 업(業)을 의지(意志)의 활동인 사업(思業)과 사업(思業)이 끝나고서 행하는 사이업(思已業)의 이업(二業)으로 나누는데 이 경우, 사업(思業)은 의업(意業)이고, 사이업(思已業)은 신(身)ㆍ어(語)ㆍ이업(二業)이다.

삼업(三業)으로서의 작용의 본체(本體, 업체(業體)ㆍ업성(業性))에 대해서, 유부(有部) 등에서는 의업(意業)은 사(思, 의지(意志))라고 한다. 불교 본래의 입장은 후자라고 생각된다.

②유부(有部)에서는 물질적(物質的)인 것을 본체(本體)로 하는 업(業, 색업(色業)) 곧 신업(身業)과 어업(語業)으로, 표(表, 작(作)ㆍ교(敎))와 무표(無表, 무작(無作)ㆍ무교(無敎))가 있다고 하며, 이것들은 또 표업(表業)ㆍ무표업(無表業)이라고도 한다.

표업(表業)은 밖으로 표현되어 타인에게 보일 수 있는 것이며 무표업(無表業)은 타인에 보일 수 없는 것이다.

무표업(無表業)은 무표색(無表色)이라 이름 지어지는 일종의 색법(色法), 보통의 물질과 같이 조잡하지 않음을 본체(本體)로 하고, 강한 선악(善惡)의 업(業)에 의해서 일어나는데, 그 업(業)은 신표업(身表業)과 어표업(語表業)과 및 정(定) 등이다.

이 무표업(無表業)에 3종이 있다.
수계(受戒)와 정(定, 어느 것이나 다 선(善))에 의해서 일어난 율의(律儀)와, 습관적이고 특히 강한 결단을 가지고 한 악업(惡業)에 의해서 일어난 바의 불율의(不律儀)와 그 이외의, 때에 따라서 선악의 업에 의해서 일어난 비율의비불율의(非律儀非不律儀, 처중(處中)의 무표(無表))의 3종이 그것이다.

율의무표(律儀無表)는 계(戒)를 버리고 정(定)에서 나오기까지 계속되고, 그밖에 무표(無表)는 특별한 장해(障害)가 없는 한 일생동안 계속한다.

이들 무표(無表) 중에서 선(善)한 무표(無表)에는 악(惡)을 방해하는 작용이 있고, 악(惡)한 무표(無表)에는 선(善)을 방해하는 작용이 있어서 각기 그 사람의 후천적(後天的) 성격을 형성한다고 한다.

또 신(身)ㆍ어(語)의 각 표업(表業) 및 무표업(無表業)에 의업(意業)을 더하여 오업(五業)이라고 한다.

③선악의 업을 지으면, 그것에 의해서 그에 상응한 고락의 갚음(과보(果報)ㆍ이숙(異熟)이 생기는데, 이것을 업인(業因)에 의해서 업과(業果)가 생긴다고 한다.

비선비악(非善非惡)의 무기업(無記業)은 과(果)를 끄는 힘이 없다. 이 업인(業因)과 업과(業果)의 관계를, 유부(有部)에서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업(業) 그것은 삼세(三世)에 실재(實在)하는 것으로서, 업이 현재에 있을 때 이것이 인(因)이 되어서 어떠한 미래(未來)의 과(果)를 끌 것인가가 결정되고, 이것을 취과(取果)라고 한다.

업이 지나가 버림으로부터 과(果)에 힘을 주어서 과(果)를 현재에 이끌어 내는데 이것을 여과(與果)라고 한다.

또한 경량부(經量部)에서는, 업(業)은 순간에 없어져 버리는데, 그 업(業)은 과(果)를 생하는 종자를 식(識) 위에 심어 주어, 그 종자가 과(果)를 끌어 일으킨다고 한다.

이 종자의 사상(思想)은 유부(有部)의 무표업설(無表業說)과 같은 것이다.

④업(業)을 여러가지로 분류한다. 총체(總體)로서의 일생의 과보(果報, 갚음)를 이끄는 업(業), 곧 인간계(人間界)라든가 축생계(畜生界) 등에 태어나게 하는 강한 힘이 있는 업(業)을 인업(引業, 견인업(牽引業)ㆍ총보업(總報業)ㆍ인인(引因))이라 하고, 인간계(人間界) 등에 태어난 자에 대해서 개개의 구별을 주어서 개체를 완성시키는 업을 만업(滿業, 원만업(圓滿業)ㆍ별보업(別報業))이라고 한다.

인업(引業)의 갚음을 총보(總報), 만업(滿業)의 갚음을 별보(別報)라고 하여, 이 이업(二業)을 총별이업(總別二業)이라고 한다.

더욱 유부(有部)에서는 하나의 인업(引業)에 의해서 일회(一回)의 생을 받아 다시 그 위에 많은 만업(滿業)에 의해서 이생이 완성된다고 설(說)하고, 다업(多業)이 일생을 이끌거나, 일업(一業)이 다생(多生)을 끌거나 하는 것은 없다고 한다.

또 업에는, 산하대지(山河大地, 기세문(器世問))와 같은, 많은 생물(生物)에 공통하는 과보(果報)를 끌어 일으키는 공업(共業)과, 개개의 생물의 신체와 같은, 개개의 생물에 고유한 과보(果報)를 인기(引起)하는 불공업(不共業)이 있다.

⑤선심(善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선업(善業, 안온업(安穩業))과, 악심(惡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불선업(不善業, 악업(惡業)ㆍ불안온업(不安穩業))과, 선악(善惡) 어떤 것도 아닌 무기심(無記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무기업(無記業)의 셋을 삼성업(三性業)이라고 한다.

악업(惡業)은 벌(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업(業)이기 때문에 벌업(罰業)ㆍ벌(罰)이라 하고, 신(身)ㆍ구(口)ㆍ의(意)의 삼벌업(三罰業) 또는 삼벌(三罰)이 있다.

중아함경(中阿含經) 권32에는, 신(身)ㆍ구(口)ㆍ의(意)의 삼업(三業)중에서 의업(意業)이 가장 중하다고 설(說)하여, 불교가 동기론(動機論)에 입각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대해서 자이나교(敎)에서는 신(身)ㆍ구(口)ㆍ의(意)의 삼벌(三罰)중 신벌(身罰)을 가장 중(重)하다고 하여, 결과론에 빠져 있다.

또 숙려(熟慮)한 뒤에 결단하여 일부러 한 고사업(故思業, 고작업(故作業))과 그렇지 않고 뜻밖에(무의식적(無意識的)) 잘못한 불고사업(不故思業)은 그것만으로는 갚음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고사업(故思業) 중에 적극적으로 한 강하고 중대한 업(業)을 증장업(增長業)이라 하고, 소극적으로 한 약하고 가벼운 고사업(故思業)은 불증장업(不增長業)이라고 한다.

점점 강하게되는 업(業)을 증상업(增上業) 혹은 증장업(增長業)이라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조작업(造作業)이라 한다.

욕계(欲界)의 악업(惡業)과 같이 안(眼)ㆍ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의 오식(五識)으로 받는 고(苦)만을 수(受)의 과보(果報)로 가져오는 업(業)을 신수업(身受業). 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 초선천(初善天)을 제함)의 선업(善業)과 같이 제육의식(六意識)으로 받는 락(樂)만을 수과보(受果報)로 가져오는 업(業)을 심수업(心受業)이라 하고, 합하여 이수업(二受業)이라 한다.

또 고수(苦受)와 락수(藥受)와 사수(捨受,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의 과모(果報)는 각기 욕과(欲界)의 악업(惡業)과 욕계(欲界)에서 색계(色界) 제삼선(三禪)까지의 선업(善業)과, 색계(色界) 제사선(四禪) 이상의 선업에 의해서 오기 때문에, 이 세 업(業)을 각기 순고수업(順苦受業)ㆍ순락수업(順樂受業)ㆍ순불고불락수업(順不苦不樂受業)이라 하고, 합하여 삼수업(三受業)이라고 한다.

또 욕계의 선업은 행복을 가져오기 때문에 복락(福樂), 욕계(欲界)의 악업은 불행을 가져오기 때문에 비복업(非福業), 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의 선업(善業)은 그 선정(禪定)의 힘에 의해서 갚음(보(報))이 정해져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부동업(不動業)이라 하고, 합하여 복(福) 등의 삼업(三業), 또는 삼행(三行))이라고도 한다.

또 악업은 혹업(黑業), 선업은 백업(白業)이라고도 하고, 여기에 이숙(異熟)의 좋아함직(백(白))한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흑(黑))에 배당하면, 욕계(欲界)의 불선업(不善業)은 성질이 불선(不善)하여 이숙(異熟)도 좋아하지 않는 흑흑이숙업(黑黑異熟業), 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의 선업(善業)은 성질은 선(善)하고, 이숙(異熟)도 좋아하기 때문에 백백이숙업(白白異熱業), 욕계(欲界)의 선업(善業)은 성질도 이숙(異熟)도 흑백상잡(黑白相雜)하여 있기 때문에 흑백흑백이숙업(黑白黑白異熟業), 번뇌와의 관계가 단절(斷折)된 무루업(無漏業)은 상대적인 흑백(黑白)을 초월하여 이숙(異熟)을 초래(招來)하지 않기 때문에 비흑비백무이숙업(非黑非白無異熟業)이라 하고, 이것들을 합하여 사업(四業)이라 한다.

사업(四業)중에 앞의 3은 유루업(有漏業)으로, 이것들은 최후의 무루업(無漏業)에서 단감(斷減)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내심(內心)을 남모르게 감추고 아첨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업(業)을 곡업(曲業)이라고 하고, 또한 성냄에 의해서 일어나는 업을 예업(穢業)이라 한다.

탐냄으로 의해서 일어나는 업을 탁업(濁業)이라고 하고, 이것들을 합하여 곡예탁(曲穢濁)의 삼업(三業)이라고 한다. 팔성도(八聖道)의 제 사지(四支)는 정업(正業)으로, 그 반대는 사업(邪業)이다.

⑥업에 의해서 그 갚음을 받는 시기에 다름(異) 있기 때문에, 순현업(順現業), 순현법수업(順現法受業)ㆍ순생업(順生業), 순차생수업(順次生受業)ㆍ순후업(順後業), 순후차수업(順後次受業)의 삼시업(三時業)을 나누어, 각각 이 세상에서 지은 업(業)에 응해서, 그 갚음을 이 세상에서 받는 것, 다음 태어난 세상에서 받는 것, 제3생(生) 이후에 받는 것으로 구분한다.

이 삼시업(三時業)은 갚음을 받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업(定業)이라 하고, 여기에 대해서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 부정업(不定業), 순부정수업(順不定受業)이라 하고, 거기에 삼시업(三時業)을 더하여 사업(四業)이라고 한다.

또 부정업(不定業)을 갚음의 내용(이숙(異熟)의 정(定)ㆍ부정(不定)에 의해서 시부정이숙정업(時不定異熟定業)과 시부정이숙부정업(時不定異熟不定業)의 둘로 나누고, 여기에 삼시업(三時業)을 더하여 오업(五業)으로 하며 또 삼시업(三時業)을 각기 시정이숙정(時定異熟定)과 시정이숙부정(時定異熟不定)으로 나누어 6으로 하고, 둘의 부정업(不定業)을 더히여 팔업(八業)이라고도 한다.

⑦업이 작용할 또는 의지할 곳이 되는 것, 혹은 유정(有情)을 고락(苦樂)의 과보(갚음)에 인도하는 통로(通路)가 되는 것을, 업도(業道, 근본업도(根本業道))라 하는데, 여기에 십선업도(十善業道)와 십악업도(十惡業道)가있다.

유부(有部)에서는 십선(十善)ㆍ십악(十惡)에는 업(業)인 것과 업(業)이 아닌 것(무빈(無貧)ㆍ무진(無瞋)ㆍ정견(正見), 빈(貧)ㆍ진(瞋)ㆍ사견(邪)이 있는데, 어느 것이나 의지(意志), 사(思)가 거기에 작용하는 바의 의지할 곳이 되기 때문에 업도(業道)라 한다고 했다.

경량부(經量部)나 대승(大乘)에서는, 십선(十善)ㆍ십악(十惡)은 모두 업(業)이어서 의지(意志), 사(思)를 체(體)로 하는데, 처음의 칠업도(七業道)에 있어서는 신(身)ㆍ구(口)를 발동(發動)하는 의지(意志, 사(思)가, 사유(思惟)하여 결정하는 의지(意志), 사(思)의 작용하는 바가 되기 때문에 업도(業道)라 한다.

또 그 발동(發動)의 생각에 의해서 생긴 생각의 종자도 업도(業道)라 한다. 뒤의 셋 곧 빈(貧)ㆍ진(瞋)ㆍ치(癡) 등은 순차(順次)로, 또 교호(交互)로 생기기 때문에, 앞의 것은 뒤의 것 때문에 업(業)의 도(道)가 되고, 또 유정(有情)을 지옥 등의 악취(惡趣) 등에 인도되는 도(道)가 되기 때문에 업도(業道)라고 설(說)함,

또 업(業)에는, 준비적 행위(行爲), 가행(加行)과 목적을 수행하는 그 순간의 행위(根本)와 완수(完遂)한 뒤의 종속적(從屬的)인 행위(후기(後起))가 있는데, 이 가운데 근본만을 업도(業道)라고 한다.

⑧번뇌도(煩惱道)ㆍ업도(業道)ㆍ고도(苦道).

⑨업(業)은 갚음(과보(果報), 이숙(異熟)을 내는 인(因)이 되기 때문에 업인(業因)ㆍ인업(因業)이라 하고, 업(業)에 의한 갚음을 업과(業果), 업보(業報)라 한다.

또 업인(業因)에는 업(業)을 일으키는 원인(번뇌 등)이라고 하는 의미도 있고, 인업(因業)에는 인(因)과 업(業), 주인(主因)과 조연(助緣))이라고 하는 의미도 있다.

☆ 丁酉年 陰 一月 五日

發願文 (발원문)
得體解大佛道 (득체해대불도)
持發無上眞意 (지발무상진의)
※ 부처님 대도의 본체를 확실하게 알아 얻어서
※ 위없는 참뜻을 내어 지니기를 발원한다.

☆장수 40장

----- 정유 1월 30일

六十六卷 廻向偈(육십육권 회향게)
♡云何稱善知識 (운하칭선지식)
大佛法海能普入 (대불법해능보입)
大乘奧義能開闡 (대승오의능개천)
一切惡道能救護 (일체악도능구호)
普賢行願能示明 (보현행원능개명)
♡始善知識耶 (시선지식야)
♡ 무엇을 일러 선지식이라 칭하는가.
※ 큰 불법의 바다에 능히 들어가야 하며
※ 대승의 깊은 뜻을 능히 하늘처럼 열어야 하고
※ 일체의 모든 악한도를 구제하여 보호하여
※ 보현보살의 십대행원을 밝혀 보여주어야
♡ 비로소 선지식이라 한다.

【普賢十願(보현십원】
보현보살이 세운 열 가지 큰 서원.

1. 예경제불원(禮敬諸佛願)이니,
항상 부처님을 예경하고 공경하는 것이며,

2. 칭찬여래원(稱讚如來願)이니,
모든 부처님을 칭찬하고 찬탄하는 것이며,

3. 광수공양원(廣修供養願)이니,
이웃을 위하여 널리 공양을 베푸는 것이며,

4. 참회업장원(懺悔業障願)이니,
스스로 지은 업장을 참회하는 것이며,

5. 수희공덕원(隨喜功德願)이니,
남이 짓는 공덕을 함께 기뻐하는 것이며,

6. 청전법륜원(請轉法輪願)이니,
훌륭한 설법을 자주 청해 듣는 것이며,

7. 청불주세원(請佛住世願)이니,
부처님 같은 분과 늘 가까이 하는 것이며,

8. 상수불학원(常隨佛學願)이니,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우는 것이며,

9. 항순중생원(恒順衆生願)이니,
항상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며,

10. 보개회향원(普皆廻向願)이니,
모든 좋은 일을 널리 나누겠다는 것이다.

위 열 가지 공통된 점은 남을 위해 살겠다는 것이다.
자기를 위해 어떻게 하겠다는 말은 한마디도 보이지 않는다.

철저하게 이기주의를 버리고 완벽하게 이타주의를 실천하여 마침내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겠다는 것이기도 하다.

♡보현보살이 생각하는 모든 부처는 모든 중생이며 따라서 보현보살의 부처는 일체중생이다.

일체중생에게 예불하고 일체중생을 찬탄하고 일체중생에게 공양하는 것이 보현의 행원이다.

☆ 丁酉年 陰 一月 九日

☆ 發願文 (발원문)
得佛十力 (득불십력)
持佛辯才 (지불변재)
※ 부처의 열 가지 능력을 얻고
※ 부처의 말하는 재주를 지니기를 발원한다.

☆장수 47장

----- 정유 2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