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사경 회향게-七十三卷 廻向偈(칠십삼권 회향게)
不依此岸生死海 (불의차안생사해)
不着彼岸生死海 (불착피안생사해)
不住中流生死海 (부주중류생사해)
逍遙自在生死海 (소요자재생사해)
※ 태어나고 죽음의 바다에서 이 언덕(금생)에 의지하지 말 것이며
※ 태어나고 죽음의 바다에서 저 언덕(다음 생)에 집착하지 말 것이며
※ 태어나고 죽음의 바다에서 흐르는 물결의 중간에도 머물지 말고
※ 태어나고 죽음의 바다에서 (소요자재)이리 저리 놀기를 자유자재하라
【彼岸(피안)】
번뇌의 흐름을 넘어선 깨달음(涅槃)의 세계를 피안(pāra)이라 부른다.
도피안(到彼岸)으로 산스크리트어로는 pāramitā라고 하며 바라밀다(波羅密多)라고 음역되고 있다.
강 저쪽 둔덕이라는 의미에서 종교나 철학에서 이쪽의 둔덕, 곧 차안(此岸: 현세를 가리키는 말)의 상대어로, 진리를 깨닫고 도달할 수 있는 이상적 경지를 나타내는 말이 되었다.
특히 일상적인 세속(世俗)으로부터 초월한다는 뜻을 표현하는 말로 많이 쓰인다.
무명 번뇌를 해탈한 열반 보리의 세계를 피안(彼岸)이라 하며, 현실 세계의 번뇌 망상을 해탈하고 열반 세계에 도달하는 것. 또는 그러한 경지를 나타내는 말이다.
【차안(此岸)】
인간 존재는 미혹(迷惑)과 번뇌(煩惱)의 세계에서 생사유전(生死流轉)하는 상태라고 보는 불교의 교의(敎義)에서는 미혹한 생존을 차안(此岸)이라 한다.
나고 죽는 생사의 고통이 있는 이 세상을 차토(此土)라고도 하며, 고통이 많은 인간이 사는 현실세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열반의 세계 즉 생사해탈의 세계를 저 언덕을 피안(彼岸)이라고 하고, 생사 윤회하는 고통의 현실세계를 이 언덕을 차안(此岸)이라고 한다.
☆丁酉年 陰 二月 四日
☆發願文 (발원문)
得神足通 隨所應化(득신족통 수소응화)
種種示現 廣度群生 (종종시현 광도군생)
※ 신족통의 신통력을 얻어 곳에 따라 응하여 변화해서
※ 가지가지로 나타내 보여서 널리 많은 중생을 제도하기를 발원한다.
☆장수 41장
----- 정유 2월 27일
七十四卷 廻向偈(칠십사권 회향게)
前際後際衆生界 (전제후제중생계)
前際後際衆生業 (전제후제중생업)
前際後際四劫海 (전제후제사겁해)
菩薩誓願無邊際 (보살서원무변제)
※ 중생계가 과거에도 끝이 없고 미래에도 끝이 없기에
※ 중생의 업이 과거에도 끝이 없고 미래에도 끝이 없으며
※ 사겁의 바다도 과거에도 끝이 없고 미래에도 끝이 없으므로
※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서원도 그 끝이 없느니라.
【四劫(사겁)】
불교의 세계관에서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는 항상 성겁(成劫)·주겁(住劫)·괴겁(壞劫)·공겁(空劫)의 네 시기를 되풀이하고 있다고 말한다.
불교의 시간 단위로서 가장 짧은 것은 찰나(刹那), 즉 75분의 1초이며, 계산할 수 없는 무한한 시간을 겁(劫)이라고 한다.
사겁은 우주의 생성·소멸의 과정을 시간의 단위로 설명한다. 네 단계를 1주기로 하는 변화를 영원히 되풀이한다.
어떠한 단계도 20소겁(小劫)으로 되어 있어 네 단계를 일주하는 데는 80겁이 걸린다.
(1) 성겁(成劫) 세계가 성립되는 지극히 긴 기간.
(2) 주겁(住劫) 세계가 성립되어 머무르는 지극히 긴 기간.
(3) 괴겁(壞劫) 세계가 파괴되어 가는 지극히 긴 기간.
(4) 공겁(空劫) 세계가 파괴되어 아무 것도 없는 상태로 지속되는 지극히 긴 기간.
이렇게 하여 우주의 성·주·괴·공의 1주기가 끝나며, 이 1주기에 필요한 시간을 1대겁이라고 한다.
인간 수명이 8만 세에서 100년에 한 살씩 줄어 10세에 이르고 다시 10세에서 100년에 한 살씩 늘어 8만 세에 이르는 긴 시간을 중겁(中劫)이라 하는데, 사겁(四劫)은 각각 20중겁에 해당한다.
☆丁酉年 陰 二月 八日
☆發願文 (발원문)
得漏盡通 現證眞實(득누진통 현증진실)
無障煩惱 起菩薩行(무장번뇌 기보살행)
※ 누진통의 신통력을 얻어 진실을 증득해 나타내고
※ 번뇌에 장애가 없이 보살행을 일으키기를 발원한다.
☆장수 28장
----- 정유년 3월 4일
七十五卷 廻向偈(칠십오권 회향게)
不惜身命修寫華 (불석신명수사화)
爲世明燈滅除暗 (위세명등멸제암)
求佛菩提心淸淨 (구불보리심청정)
普爲濟衆無上覺 (보위제중무상각)
※ 몸과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화엄경을 사경하며 수행하는 것은
※ 밝은 등불이 되어 세상의 어둠을 제거하고 멸하고자 함이요
※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하여 부처님의 보리를 구함은
※ 위없는 진리를 깨달아 널리 중생을 제도하고자 함이니라.
☆丁酉年 陰 二月 十二日
☆發願文 (발원문)
紺目澄淸似大海 (감목징청사대해)
目煥重瞳放光明 (목환중동방광명)
※ 감청색의 눈은 맑고 맑아 큰 바다와 같고
※ 빛나는 눈에 눈동자는 두개가 있어 광명을 내기를 발원한다.
☆장수 52장
----- 정유 3월 8일
七十六卷 廻向偈(칠십육권 회향게)
所有色身無生滅 (소유색신무생멸)
無相色身無生滅 (무상색신무생멸)
所有夢心無所住 (소유몽심무소주)
無所住心天眞佛 (무소주심천지불)
※ 소유한 색신이 생멸이 없음은
※ 색신에 무상이면 (사상산이 무너지면) 생멸상이 없고
※ 소유한 꿈같은 마음이라도 머문바가 없으면
※ 머문바가 없는 마음 그 자체가 천지불(본래의 부처)이니라
☆丁酉年 陰 二月 十五日
☆發願文 (발원문)
得妙脣艶朱紅色 (득묘순연주홍색)
持玄瞼透丹霞雅 (지현검투단하아)
※ 오묘한 입술 주홍빛 같이 곱게 얻었고
※ 그윽한 뺨 노을 같이 투명하기를 발원한다.
☆장수 45장
----- 정유 3월 11일
七十七卷 廻向偈(칠십칠권 회향게)
幻境法界不思議 (환경법계부사의)
幻境三世不思議 (환경삼세부사의)
幻境生死不思議 (환경생사부사의)
幻境自性不思議 (환경자성부사의)
※ 변화하는 법계의 경계를 사람의 생각으로는 헤아려 알 수가 없고
※ 변화하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경계를 사람의 생각으로는 헤아려 알 수가 없으며
※ 변화하는 나고 죽는 경계를 사람의 생각으로는 헤아려 알 수가 없고
※ 변화하는 자성의 경계를 사람의 생각으로는 헤아려 알 수가 없도다.
【自性(자성)】
산스크리트 스바하바(svabhāva)를 번역한 말이다.
다른 것과 혼동되지 않으며, 변하지도 않는 독자적인 본성을 의미한다.
해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할 수 있다.
첫째,
변계자성(遍計自性)·의타자성(依他自性)·원성자성(圓成自性)의 삼성(三性)이 있다.
또는 《능가경》의 집성자성(集性自性)·성자성(性自性)·상성자성(相性自性)·대종성자성(大種性自性)·인성자성(因性自性)·연성자성(緣性自性)·성성자성(成性自性)의 칠종자성을 말한다.
《중론》에서는 일체의 현상계는 인연을 따라 이루어지므로 무자성(無自性)이라고 해서 자성을 부정하기도 한다.
칠종자성은 다음과 같다.
① 집성자성(集性自性)은 모든 선(善)의 원인이 되는 자성이고,
② 성자성(性自性)은 앞의 제1의심(第一義心)에 의해 생긴 선의 원인에 내재하는 자성이다.
③ 상성자성(相性自性)은 보아서 분별할 수 있는 자성이다. 제1의심에 의해 생긴 선의 원인이 밖으로 나타나는 자성을 말한다.
④ 대종성자성(大種性自性)은 지·수·화·풍 사대(四大)가 각각 지니고 있는 자성이다. 이 사대가 각각 자성이 있음을 말한 것으로, 대종은 본래 범인이나 성인 모두에 통하나 여기에서는 성(聖)에 준하여 말한 것이다.
⑤ 인성자성(因性自性)은 대종의 결과에 의해 생기는 인(因)의 자성을 말한다. 여기서 인은 능생(能生)의 뜻으로 무엇인가를 생기게 하는 것이다.
⑥ 연성자성(緣性自性)은 첫 번째 자성이 과덕(果德)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조연(助緣)이 필요한데, 이때 조연에 내재되는 자성을 말한다.
⑦ 성성자성(成性自性)은 인연이 화합하여 이룩한 자성이다. 여래의 첫 번째 과덕을 성취하는 자성이다.
둘째,
법상종(法相宗)이나 구사종(俱舍宗)의 자상(自相)을 말한다.
만유의 모든 법이 지닌 본성 또는 본체를 뜻하며 차별이나 공상(共相)에 대비되는 뜻을 지닌다.
예를 들어 무탐(無貪)·무진(無瞋)·무치(無癡)와 같은 삼선근이나 참회·부끄러움과 같은 마음의 작용은 그 자성이 선하므로 자성선(自性善)이라 하고, 본성은 늘 깨끗한 진여(眞如)이므로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이라 하는 것과 같다.
수론파(數論派)에서는 25체(諦)의 하나로 본다. 이에 따르면 현상 세계를 개발하는 물질적인 본체로 기쁨[喜]과 근심[憂]·어리석음[闇]의 세 성질이 있으며, 정신적인 본체인 신아(神我)의 작용이 미칠 때 물질계가 전개한다.
한편 “이 꽃은 붉은 꽃이다.”라고 할 때 앞의 ‘이 꽃’은 꽃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므로 자성이라 하고, 뒤의 ‘붉은 꽃’은 꽃에 대한 차별 또는 구별이라 한다.
셋째,
사물 자체의 정해진 본질, 즉 사물을 사물답게 하는 까닭의 근본을 말한다.
선종에서는 모든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불성(佛性)을 뜻하기도 한다. 불의 진신, 진여의 법성, 대일여래 법신 자신을 뜻하는 말로도 쓰이며, 우리들이 본래 갖추고 있는 진성(眞性)을 말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자성에서 파생된 어휘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① 자성법신(自性法身)은 진각종의 교주 비로자나불을 뜻한다. 자성신과 같은 말이다.
② 자성본불(自性本佛)은 본래부터 갖추고 있는 불성을 뜻한다.
③ 자성삼보(自性三寶)는 자성의 각(覺)인 불(佛), 자성의 정(正)인 법(法), 자성의 정(淨)인 승(僧)을 말한다.
④ 자성유심(自性唯心)은 마음 밖에 법이 따로 없고 일체 만유는 자기 본성으로서의 마음뿐이라는 뜻이다.
⑤ 자성일(自性日)은 진각종 불공법 중 하나로 일주일 중 자신의 성품을 돌이켜 보고 본심을 찾는 하루를 말한다.
⑥ 자성진여(自性眞如)는 자성이 변하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절대적인 진리라는 뜻이다.
{又偈曰 (우게왈)}
一切諸劫卽一劫 (일체제겁즉일겁)
一劫卽是一切劫 (일겁즉시일체겁)
一切諸刹卽一刹 (일체제찰즉일찰)
一刹卽是一切刹 (일찰즉시일체찰)
※ 일체 모든 겁이 즉 일겁이요,
※ 일겁이 즉 일체겁이다.
※ 일체 모든 세계가 곧 한 세계이고,
※한 세계가 곧 모든 세계이다.
【刹(찰)】
산스크리트어kṣetra의 음사. 토(土)·국(國)·처(處)라고 번역. 국토. 세계. 땅. 장소. 영역을 말한다.
산스크리트어 ksetra는 찰(刹)이라고 음역되는데 음역한 찰과 번역한 토가 반복되어 찰토(刹土)라고도 한다. 국토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비야리성에 사는 장자의 아들 보적이 칠보로 꾸민 일산을 부처님께 받들어 올리는 인연으로 부처님께서 여러 부처님의 청정한 국토를 나타내 보이고 보살의 청정한 국토의 행에 관해 설하고 있다.
“보살이 그의 정직한 마음을 따라서 곧 행(行)을 발하게 되고 그의 중생을 성취함에 따라서 곧 부처님의 국토가 청정하게 되고, 부처님의 국토가 청정함을 따라서 법을 말씀함이 청정하게 되고 곧 지혜가 청정하게 되며 그 지혜의 청정함을 따라서 그의 마음이 청정해지고 그의 마음을 따라서 온갖 공덕이 청정해지느니라.” 에 관한 무아(無我)의 소(疏)에서는 부처님의 국토를 가로 세로의 2가지 뜻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 안을 또 4가지의 국토로 나누는데 범부와 성인이 함께 사는 국토, 미혹됨을 끊고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의 인(因)을 닦은 사람이 사는 국토, 무명혹(無明惑)을 끊은 사람이 사는 국토, 법신이 머무는 국토가 그것이다.
마음이 청정함에 따라 국토가 청정하여진다. 고 했다. 끝없이 깨달음을 추구하는 구도심으로, 이웃과 더불어 고통을 나누고 기쁨을 더하는 보살행으로 자리이타행(自利利他行)을 실천할 때 이 땅이 곧 보살의 국토, 청정 불국토가 될 것이다.
[다른 설명]
불교에서는 국토를 불신(佛身)과 하나로 본다. 모든 존재가 그 존재 의의를 십분 발휘하는 것이 곧 그 자체의 성불이며 또 그러한 것이 인간의 올바른 삶의 방식이라는 것이 대승불교의 이상이다.
이런 국토에는 다음과 같은 4가지가 있다고 한다.
(1) 범부와 성인이 함께 어울려 사는 국토 ㅡ 이 국토는 다시 예토와 정토의 두 가지로 나뉜다.
(2)나한(羅漢)이 죽은 뒤에 태어난다는 국토, 나한은 아직 완벽한 열반에 이르지 못하여 중도실상(중道實相)을 가리고 있는 무명이라는 근본적인 미혹이 남아 있는 국토.
(3)무명을 완전히 끊지 못한 보살이 태어나는 국토, 무여열반(無餘涅槃)에는 이르지 못했으나 도를 지극하게 닦은 과보로 아무 걸림이 없이 산다는 국토.
(4)모든 무명을 완전히 끊은 부처가 사는 국토, 이곳은 상주, 적멸, 광명의 국토이다.
☆丁酉年 陰 二月 十九日
☆發願文 (발원문)
百福莊嚴得妙身 (백복장엄득묘신)
持身玄香常淸潔 (지신현향상청결)
※ 백가지 복으로 장엄한 오묘한 몸을 얻고
※ 그윽한 향기 나는 맑고 깨끗한 몸을 가지기를 발원 한다.
☆장수 60장
----- 정유 3월 14일
七十八卷 廻向偈(칠십팔권 회향게)
菩提心者破無明 (보리심자파무명)
菩提心者絶愚痴 (보리심자절우치)
菩提心者皆成就 (보리심자개성취)
究竟解脫都菩提 (구경해탈도보리)
※ 보리심은 무명을 깨트리고
※ 보리심은 어리석음을 끊으며
※ 보리심은 모든 것을 성취하고
※ 구경에 해탈케 하는 모든 것도 보리심이니라.
【菩提心(보리심)】
깨달음의 마음. 깨달음을 향한, 혹은 이미 깨달은 마음을 말한다.
일반적으로는 일체 중생을 위해 성불하기를 열망하는 대승불교도의 첫 동인(動因), 초발심(初發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을 가리킨다.
이런 열망 또는 보리심을 발하는 순간, 그리고 보살행을 완성하기 위해 정식 서원을 세우는 순간, 그는 이미 보살로 간주된다.
보리심이란 단어가 의미하고 함축하는 바는 극도로 넓고 광범위 하며, 보리심은 대승불교의 본질을 나타내는 것이다.
또 보리심은 첫 깨달음의 마음을 뜻할 뿐 아니라, 십지(十地)에서의 깨달은 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無明(무명)】
무명은 무지를 뜻하는 것으로, 불교의 여러 경전에서 갖가지 심오한 해설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일체 사물에 대한 도리를 밝게 알지 못한다는 뜻으로 사용되거나 진리에 대한 무지로 통용되고 있다.
인간 생사의 근원을 밝히는 12연기(緣起)의 첫머리에 나오는 무명은 ‘나’가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요 ‘나’를 범부이게끔 하는 근원이며, 모든 번뇌의 근본이요 일체 악업(惡業)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 ≪본업경 本業經≫에서는 “무명은 일체법(一切法)을 밝게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고, ≪대승의장 大乘義章≫에서는 “진리를 요달하지 못하는 것을 무명이라고 한다. 무명은 어리석고 어두운 마음이다. 그 본체에는 지혜도 밝음도 없다.”고 하였다.
≪구사론≫에서는 “무명의 모습은 사제(四諦)와 삼보(三寶) 및 업(業)의 원인과 결과를 모르는 데 있다.”고 하였으며, ≪유식론 唯識論≫에서는 “무명은 모든 사물과 이치에 대하여 미혹되고 어리석은 것을 본성으로 삼고, 능히 지혜를 결박하여 일체를 잡되고 물들게 하는 것으로서 그 업을 삼는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채택하고 있는 것은 ≪기신론 起信論≫에서의 무명에 대한 해설이다.
≪기신론≫에서는 무명을 두 가지로 나누었는데, 법계(法界)의 참 이치에 어둡게 된 최초의 한 생각을 근본 무명(根本無明)이라 하고, 그 근본 무명으로 말미암아 가늘게 또는 거칠게 일어나는 모든 허망한 생각들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고 하였다.
무명은 불교의 기본 교리로서 불교가 여러 부파(部派)로 나누어진 뒤에도 인간의 괴로움을 설명하는 근본 교설로 채택되었고, 2종무명·5종무명·15종무명 등으로 무명을 세분하여 해석하였다.
그러나 석가모니 당시부터 무명은 원래 실체가 없는 것으로 설명되었고, 선종에서는 독자적인 개체로서가 아니라 세계의 본성을 뜻하는 법성(法性)과의 일체로 파악되었다.
무명법성일체설(無明法性一體說)에서 볼 때 법성과 무명은 마치 얼음과 물의 관계와 같다. 무명이라는 얼음의 본성은 원래가 물이다. 얼음이라고 하지만 물의 성품을 벗어 버리지 못한다. 사람의 심성은 본래 얼음이 아니나 법성의 물이 얼어서 얼음이 된 것일 뿐, 어느덧 홀연히 생겨난 무명은 곧 근본 깨달음인 본각(本覺)의 법성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이 무명법성일체설은 우리나라 선종에서도 뿌리를 내려 무심선(無心禪)을 정립하기에 이르렀고, 번뇌와 고통을 피하려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생활하라는 실천적 규범을 낳기도 하였다.
신라의 원효(元曉)는 ≪대승기신론소≫에서 일심(一心)을 설명하면서, 일심 이외에 별다른 법이 없으나 무명으로 말미암아 일심을 미(迷)하게 되어 갖가지 번뇌를 일으키고 육도(六道)를 윤회하게 된다고 하였다.
원효는 이 무명을 잠재적인 충동력이라고 보았다. 곧 이 충동력 때문에 어리석은 마음이 동요하게 되지만, 무명 자체는 아직 주관과 객관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라고 하였다. 즉, 무명은 일심을 동요하게 하는 원초적인 힘으로 파악하였고, 이 무명의 충동력이 계속해서 일심의 바다에 물결을 일으키게 될 때 고통스러운 결과를 낳게 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무명은 모든 고통스러운 결과의 가장 원초적인 원인이 되며, 이 무명을 없앨 때 일심의 원천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解脫(해탈)】
결박이나 장애로부터 벗어난 해방, 자유 등을 의미하는 말이다.
원래 인도 바라문교에서 사용하던 말이었는데 후에 불교에 도입되었는데 불교에서의 해탈은 수행을 통해 도달하는 궁극적인 경지로, 업과 윤회를 벗어난 상태를 일컫는다.
업(業)은 인간의 행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인과(因果)의 법칙이 절대적으로 적용되어 선업(善業)인지 악업(惡業)인지에 따라 낙과(樂果)와 고과(苦果)가 따른다. 즉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다른 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윤회(輪廻)는 마치 수레바퀴가 굴러서 끝이 없는 것과 같이 인간이 번뇌와 업에 따라 생사(生死)의 세계를 거듭하며 그치지 않는 것을 말하는데, 해탈은 이러한 인간의 상태에서 벗어나 열반(涅槃)의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열반(nirvana)은 원래 '불어끈다'는 뜻을 가진 말로, 불교에서는 탐(貪), 진(瞋), 치(痴)의 세 가지 독심(毒心)을 끊고 고요해진 평정의 경지를 뜻하는데, 깨달음을 얻어 해탈한 마음은 번뇌의 불꽃이 모두 사그라진 재와 같아서,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하게 된다고 본다.
불교에서 해탈은 신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지혜, 즉 반야(般若)를 증득(證得)함으로써 스스로 이루는 것이다. 불교의 수행법 가운데 사제설(四諦說)에 의하면 무명(無明)을 멸하면 생사의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한다고 한다.
무명은 인간의 번뇌를 생성하는 원인으로 이는 곧 무지(無知)를 뜻한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열반에 이르기 위한 방법으로 삼십칠조도품(三十七助道品)을 제시한다.
도품은 실천하는 방법의 종류를 뜻하고, 삼십칠은 사념처(四念處), 사정근(四正勤), 사여의족(四如意足), 오근(五根), 오력(五力), 칠각지(七覺支), 팔정도(八正道) 등의 일곱가지 수행 방법을 합친 것이다.
이러한 수행에 의해 번뇌의 속박을 떠나 삼계(三界:俗界, 色界, 無色界)를 탈각(脫却)하여 무애자재(無碍自在)의 깨달음을 얻는 것이 수행의 목표이며 이것이 곧 해탈의 경지이다.
【三解脫門(삼해탈문)】
3해탈문(三解脫門, 산스크리트어: trīni vimoksa-mukhāni) 또는 3삼매문(三三昧門)은 3계의 고통의 원인이 되는 번뇌에서 해탈하여 열반을 득하는 방편[門]인 공해탈문(空解脫門)·무상해탈문(無相解脫門·무원해탈문(無願解脫門)의 3가지 선정을 말한다.
공(空: 空寂, 실체가 없음)·무상(無相: 차별이 없음)·무원(無願: 원함 즉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 없음)을 관조하는 3가지 선정이 해탈 즉 열반에 들어가는 문(門, 방법, 방편)이 되기 때문에 3해탈문이라고 이름 한 것으로, 3해탈(三解脫)·3탈문(三脫門)·3문(三門)·3공문(三空門)·3공관문(三空觀門) 또는 3삼매(三三昧) 또는 3공(三空)이라고도 한다.
공해탈문(空解脫門)은 일체법이 공하다는 것, 즉 실체[自性]가 없다는 것을 관조하는 선정이고, 무상해탈문(無相解脫門)은 일체법에 차별[相]이 없다는 것을 관조하는 선정이고, 무원해탈문(無願解脫門)은 공용(功用, 願)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관조하는 선정 즉 무공용(無功用, 無願)을 성취하는 선정이다.
공해탈문은 공삼매(空三昧) 또는 공삼마지(空三摩地)라고도 하며, 무상해탈문은 무상삼매(無相三昧), 무상삼마지(無願三摩地), 무상심삼매(無相心三昧), 무상심삼마지(無相心三摩地) 또는 무상정(無相定)이라고도 하며, 무원해탈문은 무작해탈문(無作解脫門), 무원삼매(無願三昧), 무원삼마지(無願三摩地) 또는 무원심삼마지(無願心三摩地)라고도 한다.
이 가운데 무상해탈문의 다른 말인 무상정(無相定)은 무상정(無想定) 과 혼동하지 않아야 하며, 또한 무상해탈문의 다른 말인 무상삼매(無相三昧)는 힌두교의 무상삼매(無想三昧)와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화엄경》 계통의 대승불교 경전인 《보살영락본업경》에서 고타마 붓다는 모든 부처가 모두 6명염(六明焰) 즉 6종성(六種性)과 3삼매문(三三昧門), 즉 3해탈문(三解脫門)을 가르치는데 자신도 다른 모든 부처와 동일하게 이것들을 가르친다고 말하고 있다.
☆丁酉年 陰 二月 二十三日
☆發願文 (발원문)
得了解辯才法 (득료해변재법)
持演說無邊言 (지연설무변언)
※ 말하는 재주의 법을 얻어 완벽하게 알고
※ 언어를 끝없이 알아서 자유자재로 연설하는 재주를 지니기를 발원한다.
☆장수 49장
----- 정유 3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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