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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 해탈을 위한 모든 수행인의 마음가짐(學佛通途)-2.귀의삼보(歸依三寶)-삼보에 돌아가 의지함

by 이初心 2023. 1. 25.



    생사 해탈을 위한 모든 수행인의 마음가짐(學佛通途)
    2. 귀의삼보(歸依三寶)-삼보에 돌아가 의지함.

    세 곳에 돌아간다 함에서 귀 자는 歸, 또는 皈라고도 쓰오. 皈(귀)라는 글자는 白(속인)으로부터, 나쁜 것에 물듦으로부터 그 반대(反)의 깨끗함을 취한다는 의미오.

    첫째 귀의불
    둘째 귀의법
    셋째 귀의승

    귀라는 것은 던져서 돌아감이오, 의라는 것은 의지하여 맡김의 뜻이오. 사람이 바다에 떨어진 경우 문득 배가 오게 되면 배를 향해 헤엄쳐 가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던져서 돌아감이오, 배에 올라 편안히 앉으니 이것이 기대어 맡김의 뜻이오, 생사가 바다가 되고, 삼보가 배가 되는 것이오.

    중생이 귀의함으로 피안에 오를 수 있는 것이오.
    이미 부처님께 귀의하였으니 부처님을 스승으로 삼고 오늘부터 목숨을 마칠 때 까지 천마 외도, 삿된 귀신, 삿된 신령에 귀의하지 않아야 되오. 이미 불법에 귀의하였으니, 불법을 스승으로 삼고 오늘부터 목숨을 마칠 때 까지 외도전적에 귀의하지 않아야 되오. 이미 스님에게 귀의하였으니 스님으로 스승을 삼고 오늘부터 목숨을 마칠 때 까지 외도 무리들에게 귀의하지 않아야 되오.3)

    너희들은 어찌해서 귀의하였는가?
    서방극락에 태어나 생사를 완전히 벗어남을 구하고자 하는 외에는 결코 바라는 것이 없어야 될 것이오. 어떠한 단계를 밟아야 극락사토에 도달할 수 있는가? 모름지기 즉 삼보에 귀의해야 하나니, 이른바 귀의불, 귀의법, 귀의승이오, 삼보에 귀의해서 여실하게 닦아 지닐 수 있어야 서방에 왕생하여 완전히 생사를 벗어나게 되오.

    또한 이른바 삼보에는 자성, 주지 두 가지가 있소. 부처는 깨달음을 뜻하오. 자성불이란 곧 마음에 본래 갖추어진 망념을 여읜 신령한 지각의 진여불성을 말함이오. 법이란 것은 표준(본보기)을 의미하오. 자성법이란 곧 마음 바탕에 본래 갖추어진 도덕, 어짐(자애), 의리의 아름다운 모범을 말함이오.

    스님이란 청정을 의미하오. 자성승이란 곧 마음 바탕에 본래 갖추어진 물들지 않은 청정한 정행을 일컫소. 주지 삼보란 것은 석가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때가 곧 불보가 되오. 부처님 입멸 후에는 금불, 동불, 석불, 목불, 물감으로 그린 불상 등 모두가 불보가 되오. 부처님이 설한 바 탐욕을 여의는 모든 청정한 법 및 모든 대장경이 다 법보가 되오. 출가하여 물들인 옷을 걸치고 청정한 행을 닦음이 모두 승보가 되오.

    귀라는 것은 돌아간다는 것이니, 물이 흘러 바다로 돌아감과 같고 백성이 왕에게 돌아감과 같소. 의라는 것은 의지하여 맡김이니 아들이 모친에게 의지함과 같고, 건너가려면 배에 의지하는 것과 같소. 사람이 생사의 큰 바다에서 만약 자성삼보와 주지삼보에 귀의하지 않으면 곧 생사를 벗어날 방법이 없소. 만약 수긍한다면 지성심을 발하여 삼보께 귀의해야 곧 생사고해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니 생을 마치면 죽음에서 벗어나는 것이오.

    마치 사람이 발을 헛디뎌 바다에 떨어져 미친 파도가 용솟음쳐 죽을지도 모른다는 근심이 가득차 이러한 위기일발을 당해 생사가 왔다 갔다 할 때 갑자기 배가 다가오니 배를 향해 나아가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던져서 돌아간다는 의미요, 자성삼보를 앎으로써 자기를 성찰하여 절제하게 되고, 두려워 근신하게 되며 다시 주지삼보 및 시방삼세 일체삼보를 추구하면 악업을 없애고 선근이 증장되어 도업을 판단함을 이루어 영원히 생사윤회를 벗어나게 되오.

    구호됨을 만나 배에 올라 편안히 앉아 해안에 도달하면 예전의 험난함은 이미 지나버려 지금은 다시 살아나 축하를 받는 것과 같소. 이로 말미암아 무한한 이익을 얻었으니 이것이 의지하여 맡긴다는 뜻이오. 세상일이 어지럽고 번잡하고, 번뇌가 많아 고통스러우니 이러한 생사바다에 처해서 마땅히 삼보로 배를 삼아야 하리다. 중생이 귀의할 곳을 얻어 노를 젓고 돛을 달아 게으르지 않고 물러나지 않으면 저절로 피안에 오를 것이오.

    만약 이미 삼보에 귀의하고서 외도를 믿고 삿된 마와 귀신을 존경하여 받든다면 비록 날마다 염불을 닦아 놓치지 않더라도 또한 진실한 이익을 얻기는 어렵소. 삿됨과 바름을 분간하지 못하면, 결정코 생사를 마칠 희망은 없소. 그러니 각자 그것을 두려워해야 하오.4)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일체 중생은 모두 마땅히 부처가 될 수 있다. 비유하면 한장의 흰 종이에 여래를 그리면 여래가 되고, 거지를 그리면 거지가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마땅히 이를 삼가하여 처음부터 다만 위로는 고독한 부처됨에 다다르지 않아야하고 아래로는 자기의 신령함을 저버림에 이르지 않아야 되오.5)

    일체 중생의 일념심성은 곧장 삼세제불과 둘이 아니며 차별도 없소. 다만 깨닫지 못함으로 수용하지 못할 뿐이오. 따라서 [화엄경 여래 출현품]에 이르기를 "일체 중생은 여래의 지혜를 갖추고 있다. 단지 망상 집착으로 증득하지 못할 뿐이다. 만약 망상을 여의게 되면 일체지, 자연지, 무애지가 현전하게 될 것이다." 모름지기 지혜와 망상 집착은 원래 두가지 물건이 아님을 알아야 하오.

    이에 미혹하면 곧 전체 지혜가 망상 집착을 이루게 된다오. 이것을 깨달으면 곧 전체 망상과 집착은 지혜를 이루게 된다오. 비유하면 말아 쥐면 주먹이요 펴면 손바닥이니 원래 한 손인 것과 같소. 응결되면 얼음이고 녹으면 풀어지니 원래 하나의 물인 것과 같소. 심체(心體 일념심성)는 변하지 않음을 따르지만 작용은 항상 인연을 따르는 것이오.

    체가 불변이기에 범부라 해서 줄어듦이 없고 성인이라서 늘어남이 없으며, 속진에 살아도 물들지 않고 더러운 때를 여의게 되면 생사에 있어 윤회고를 받지 않게 되오. 열반을 증득해도 적멸에 예속되지 않으며 무상(無象)으로 삼라만상의 주(主)로 삼으며, 비법(非法)으로 만법의 종(宗)으로 삼으며, 근본을 쫓아 지금에 이르기까지 항상 스스로 여여부동하여 범부와 성현이 부처가 되면 조금도 차이가 없다오.

    이것을 깨달으면 현인이라 부르며, 이것을 증득하면 성인이라 이름하는 것이오. 만약 단지 결코 조금도 수덕이 없으면 단지 육도윤회하는 범부가 되는 것이라오. 작용(수용)은 인연을 따르는 고로, 즉 사성육범이 있게 되고 괴로움 즐거움 오르고 내림이 다르다오. 따라서 인연은 오염과 깨끗함이 있으며 반드시 그 하나를 따르는 것이오. 오염의 인연을 따르면 즉 미혹을 일으켜 업을 짓고 육도를 윤회하게 되오.

    청정함의 인연을 따르게 되면 즉 미혹을 끊고 진리를 증득하게 되어 항상 열반에 머무르게 되오. 혹업으로 말미암아 가볍고 무거움이 있게 되고 인, 천, 선도 및 아수라의 선악의 섞임의 길이 있게 되는 것이며, 아울러 축생, 아귀, 지옥의 삼악도가 있게 되는 것이오.

    미혹으로 말미암아 미혹을 일으키고, 업으로 말미암아 업을 짓고, 혹은 선 혹은 악, 조금도 결정되어버린 길이 없소. 생명을 받아 이르게 되는 곳을 전전하며 옮기게 됨이 마치 수레 바퀴와 같아 시작과 끝이 없이 문득 올랐다 문득 내렸다 하는 것이오. 이미 번뇌혹을 갖추게 되면 모두 업의 속박을 입게 되고 업에 따라 생명을 받게 되어 스스로 주인 노릇을 못하게 되오.

    끊고 증득함에는 깊고 얕음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견사혹을 끊는 자는 성문과를 증득한다오. 습기가 남아있는 자는 연각의 과보를 증득하게 되오. 무명을 깨뜨리는 자는 보살의 과보를 증득하게 되오. 만약 무명이 깨끗이 다하면 복혜가 원만하고 수덕의 공력이 지극해지고, 성덕이 온전히 드러나는 자는 곧 불과를 증득하게 되며 또한 철저하게 구경을 증득하지만 범부의 지위에서 본래 갖추고 있는 심성의 공덕력을 작용하여 친히 전체를 수용함을 얻지만 실제로는 그 처음에서(본각) 털끝만큼도 더하지는 않는데 불과하오.

    만약 성문, 연각, 보살이라면 비록 단지 증득하는 바 높고 낮음이 같지 않지만 모두 성구공덕 전체를 수용하지는 못한다오. 따라서 일체 범부는 도리어 이러한 부사의한 심성의 공덕을 육진경계에서 탐진치를 일으켜 살도음을 지어 삼악도에 떨어져 영겁토록 침륜하게 되니 모두 이것과 비교하면 슬프지 아니하리오.

    가령 오계 십선을 닦아 인천의 몸을 얻었다 합시다 하지만 인간의 복락이 타락의 근본이 되는 것이오. 천상이 비록 인간의 맹렬한 번뇌 미혹에 비할 바가 못되지만 천복이 한번 다하면 결정코 밑으로 내려와 태어나게 되오. 쌓인 복이 다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복을 누린다오.

    향복(享福)으로 인해 업을 짓게 되오. 이미 업을 지었으니 곧장 순식간에 악도에 떨어지게 되오. 하물며 천명을 마치고 숙세의 악업이 이미 성숙된 힘을 입어 즉시 악도에 떨어지는 자랴 그러므로 고덕께서 수행하는 사람이 만약 바른 생각으로 정업을 수지함이 없으면 오직 인천의 복보를 얻을 뿐이니 이름하여 삼세의 원한이라 하셨소. 법화경에 이르기를 "삼계는 편안한 곳이 없으니, 마치 불타는 집과 같고 여러 고통이 충만하니 매우 두려울만 하다." 좋고 나쁨을 아는 자는 마땅히 급히 벗어남을 구하여 안온함을 꾀해야 제일 좋은 계책이라 할 것이오.6)

    일체 중생은 모두 불가사의한 심력을 갖추고 있지만 불력 법력의 가지해 주는 힘이 없으므로 다만 업을 짓게 되고 그것을 받아 쓸 수가 없다오. 단지 불성을 구비했을 뿐 전혀 이익되는 바가 없소. 일단 선지식의 일깨워줌을 듣고는 목숨을 던져 정성을 다해 귀의하게 되면 부처님의 자비로운 서원력과 더불어 감응의 길이 교차되어 부처님의 자비력에 기대어 서방극락에 왕생하게 될 것이오. 되돌아와서 (중생들이) 육도윤회하는 것을 보게되면 위아래 수레바퀴와 같아 불쌍하고 가련함을 이기지 못할 것이오.7)

    귀의라는 명칭은 매우 쉽게 얻을 수 있지만 귀의를 실천하여 닦는 것은 지극히 어렵소. 모름지기 불살생, 불투도, 불사음, 불망어, 불음주의 오계를 지녀야 되오. 아울러 모름지기 마음 속에 허망하게 나타난 탐진치를 제거해야 하오. 수덕과 성덕 속에는 본래 계정혜가 구비되어 있소.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뭇 선(십선, 육바라밀)을 받들어 행하시오.

    진실한 믿음, 간절한 원, 성실하게 염불하여 서방극락에 왕생함을 구해야 하오. 위로는 부모님께 권하고 중간에는 형제에게 권하며, 아래로는 처자, 비복에게 권하여 같이 정토업을 닦아야 하오. 이와 같이 하면 곧 이것이 자기와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요, 자기와 남의 도덕(도리)을 세우는 것이니 항상 생활하는 가운데 인간의 도리를 지키면서 행해야 되오. 그러한 공덕 이익을 무엇으로 칭량할 수 있으리오.8)

생사 해탈을 위한 모든 수행인의 마음가짐(學佛通途)-2 귀의삼보(歸依三寶)-삼보에 돌아가 의지함.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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