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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삼계(三界)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까?

by 이初心 2023. 3. 6.



    어떻게 해야 삼계(三界)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까?

    【질문】 어떻게 해야 삼계(三界)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까?

    【서산대사】 선(善)과 악(惡)을 모두 사량(思量)하지 않으면 곧바로 삼계(三界)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그대가 만약 부처는 각(覺)이요, 중생은 망((妄))이라고 말하면서 이와 같은 견해를 지어 간다면 백겁을 수행한다 하더라도 육도(六道)를 윤회하여 쉬 때가 없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본원(本原)인 자성불(自性佛)을 비방하기 때문이다. 그대가 만약 생각마다 밖으로 치달려 구하는 마음을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바로 조사(組師)나 부처와 다르지 않게 될 것이다.

    부처와 조사를 알고 싶은가?
    그대의 면전에서 불법을 듣는 이가 바로 그이다.
    학인은 이를 믿지 않고 밖으로만 치달려 구하려 하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설령 구해서 얻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모두 문자상의 일일 뿐이다.
    살아 있는 조사의 뜻은 끝내 얻을 수가 없다. 지금 깨닫지 않으면 만겁을 윤회할 것이다.

    한 생각의 청정한 빛이 법신불(法身佛)이요,
    한 생각의 분별없는 빛이 보신불(報身佛)이요,
    한 생각의 차별 없는 빛이 화신불(化身佛)이다.
    산승의 견처(見處)는 보신물과 화신불의 머리를 앉아서 끊어 버리고, 10지(十地)의 만위(滿位)를 객(客)으로 여기며 등각(等覺)과 묘각(妙覺)을 똥통을 짊어진 귀신으로 보는 것이다.

    오대산에 문수(文殊)는 없다.
    그대가 문수를 알고 싶은가.
    오직 그대 목전의 용처(用處)에서 시종 의심하지 않는 이것이 바로 살아 있는 문수이다. 또 보현(普現)과 관음(觀音)의 경우도 이와 같다.

    일법(一法)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앞에 드러나는 일념(一念)이다.
    만약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 비춰 보며 조금 그 빛을 돌이키는 노력을 한다면, 일념의 연기(緣起)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믿게 될 것이다. 단지 일념에 있을 뿐이니 그다지 많은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그러므로 “지금 범부가 연려(緣慮:思量)하고 분별하는 작용은 모두 진성(眞性) 안에서 일어나는 것으로서 일어나도 일어난 것이 없으니, 당처(當處)에 바로 고요해지게 된다.”라고 말해는 지는 것이다.

    이것은 “홀연히 광기(狂氣)가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이니, 머리가 밖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연야달다(演若達多)의 머리는 본래 그대로인데 혼자서 득실의 생각을 지어낸 것이니 이것은 모두 광기가 발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망(眞妄) 득실의 견해는 단지 망상에서 나온 것으로 그가 발광한 것과 같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은 망(妄)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진(眞)을 가지고 망(妄)을 고치려 하지만 망성(妄性)을 끝까지 캐보면 망성은 본래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또 진(眞)을 찾을 수 있겠는가? 만약 진망(眞妄)을 얻을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알고, 얻을 것이 없다는 그것도 얻을 것이 없음을 안다면 그 동안 명(名)을 인식하고 상(相)에 집착해 온 폐단이 당장에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연야달다(演若達多)의 머리 : 능엄경(楞嚴經) 권4에 나오는 인도 실라성(室羅城)의 연야달다가 거울 속에 비친 자기 머리의 미목(眉目)을 보고 몹시 기뻐하다가 다시 머리를 돌려 바라보려 해도 보이지 않자 몹시 화를 내면서 도깨비의 장난이라고 여기고는 미친 듯 질주했다는 미두인영(迷頭認影)의 비유가 실려 있다.

    출처 : 청허당집(淸虛堂集)/이상현 옮김 p648

어떻게 해야 삼계(三界)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까.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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